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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물, 기타 문학 관련 이야기

김영랑, 멋진 남자

by 뿔란 2020.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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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김영랑 생가에 있는 김영랑 초상화 (사진_학국교육방송공사)

 

김영랑의 본명은 김윤식으로 1903년 전라남도 강진군 대지주집 5남매의 맏이입니다.

열다섯에 결혼했으나::: 일 년 여만에 사별하고,

1917년 휘문의숙에 입학!

 

휘문의숙이라함은... 다 아시듯이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현재의 휘문고등학교 (사진_한국학중앙원)

 

 최근 회계부정으로 자사고 취소되었다 재판 걸어서 취소가 보류된 그 휘문고등학교.

 

휘문고 내에 있는 민영휘 동상 (사진_한국학중앙원)

 

'휘문'이라는 교명은 '아름다울 휘'에 '글월 문'자로 뜻도 아름답고, 고종이 자신의 이름인 '휘'자를 써서 지어준 이름이라 의미도 깊습니다만........ 창립자가 유우명한 친일파 민영휘라서 좀.... 

 

그러나 휘문의숙에서는 정지용, 김유정 등 많은 훌륭한 문학가를 배출했고, 1919년 3.1 운동에서도 빠지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 조선어학회의 설립에 많은 공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립자의 반민족 행위와는 별도로 휘문고는 유서깊은 명문 사학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아무튼, 김영랑은 휘문의숙 학생으로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됩니다. ㅜㅜ

다행히 어린 나이라 기소되지 않고 석방되었습니다만,

우리의 영랑 학생은 바로 독립선언서를 신발 깔창에 숨겨 강진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강진의 다른 청년들과 함께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습니다만,

사전에 발각되어 체포 ㅜㅜ, 다행히 이번에도 어린 나이가 참작되어

6개월여만에 석방됩니다.

 

이후 김영랑은 국외로 나가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싶어했습니다만,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로 일본으로 유학을 갑니다.

일본 아오야마(청산) 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같은 하숙집에 머물던 아나키스트 박열 등 뜻있는 청년들과 우정을 나눕니다.

 

 

오른쪽이 진짜 박열과 그의 부인 후미코. 왼쪽은 영화 포스터

 

박열

 

박열과 후미코. 점잖은 버전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고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학살했습니다.

 

김영랑은 이 학살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김영랑의 행보 중 유명한 것은 바로 무용가로 유명한 최승희와의 사랑입니다.

당시 숙명여학교에 다니던 열세 살의 최승희는 그녀의 오빠 최승일을 통해 8년 연상의 김영랑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만....

최승희 집안에서는 김영랑의 고향 지방이 문제가 되었고

김영랑의 집안에서는 신여성은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다고 해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

 

1935년 도쿄 최승일, 최승희 남매
1936 하계올림픽 마라톤 우승 직후 손기정과 최승희

 

 

최승희와 헤어지고 크게 실의에 빠진 김유정은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승희와의 사랑을 생각하며 창작했다는 시가 바로 '모란이 피기까지는'입니다만....

이 시는 다음 기회에 보도록 하고요..

 

이후 김영랑은 26세에 재혼을 하고, 

1930년대에 시문학파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자, 여러분, 친구를 잘 사귀셔야 합니다.

김영랑이 원래 음악에도 조예가 깊고 문학도이기도 했습니다만,

1930년에 사재를 털어 <시문학>이라는 문예지를 창간한 박용철과 친구였습니다.

박용철의 시 '떠나가는 배'는 가수 김수철씨가 노래로 만들어 크게 히트하기도 했었습니다.

'나두야 간다' 라는 김수철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한 건 저 뿐입니까? ㅜㅜ

 

아무튼 김영랑은 박용철과 함께 시문학 창간 동인이 되어 다수의 시를 <시문학>지를 통해 발표하게 됩니다. 

 

 

24세의 박용철(우)과 한 살 많은 김영랑

 

이번 포스팅은 여기까지,

김영랑의 작품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 보겠습니다. 

 

 

30년대 모더니즘 소설가이자 시인이었던 이상이 본 김유정이 궁금하시다면, 

2021.05.08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이상] - [전문] 이상, 김유정론

 

[전문] 이상, 김유정론

 암만해도 성을 안 낼 뿐만 아니라 누구를 대할 때든지 늘 좋은 낯으로 해야 쓰느니 하는 타입의 우수한 견본이 김기림이라.  좋은 낯을 하기는 해도 적이 비례(非禮)를 했다거나 끔찍이 못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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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의 시 포스팅 링크를 모아 보았습니다.

 

2021.04.27 - [문학, 전문과 해설/현대시] - 김영랑, 집 (전문 해설, 시 읽는 법)

 

김영랑, 집 (전문 해설, 시 읽는 법)

시 읽는 법 1. 제목부터 읽는다. 2. 그냥 또박또박 잘 읽는다. 3. 화자가 누구인지, 어떤 처지인지 등등 상황 팍악. 4. 화자가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대상 파악. 5. 화자 대상에 대해 어떤 생각과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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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9 - [문학, 전문과 해설/현대시] - 김영랑, 북

 

김영랑, 북

김영랑 시인은 1930년대 시문학파 동인으로, 순수 서정시인으로 유명합니다. 혹자는 김영랑 시인의 퍽이나 남성적인 외모를 생각하면, 그의 서정, 서정한 시가 뜻밖이라고 하더군요.. ㅎㅎ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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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5 - [문학, 전문과 해설/현대시] - 모란 거시기,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 거시기,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항간에는 김영랑이 무용하는 최승희와 헤어진 아픔을 잊지 못해 오래 오래 잊지 못해 헤어지고도 몇 년이 지난 1934년에 최승희에 대한 사랑을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로 아름답게 표현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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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 - [문학, 전문과 해설/현대시] -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마음을 아실 이  - 김영랑 -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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