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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문과 해설/현대시

김영랑, 집 (전문 해설, 시 읽는 법)

by 뿔란 2021.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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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법

1. 제목부터 읽는다.

2. 그냥 또박또박 잘 읽는다.

3. 화자가 누구인지, 어떤 처지인지 등등 상황 팍악.

4. 화자가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대상 파악.

5. 화자 대상에 대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는지, 분위기 파악.


 

 집

                              김영랑

 

 내 집 아니라 

 늬 집이라

 날르다 얼른 돌아오라

 처마 난간이

 니들 가여운 속삭임을 지음(知音)터라

 

 내 집 아니라

 늬 집이라

 아배 간 뒤 머언 날

 아들 손자 잠도 깨우리

 문틈 사이 늬는 몇 대째 설워 우느뇨

 

 내 집 아니라

 늬 집이라

 하늘 날던 은행잎이

 좁은 마루 구석에 품인 듯 안겨 든다

 자고로 맑은 바람이 거기 살았니라

 

 오! 내 집이라

 열 해요 스무 해를

 앉았다 누웠달 뿐

 문 밖에 바쁜 손[客]이

 길 잘못 들어 날 찾아오고

 

 손때 살내음도 저뤘을 난간이

 흔히 나를 안고 한가하다

 한두 쪽 흰 구름도 사라지는디

 한 두엇 저질러 논 부끄러운 짓

 파아란 하늘처럼 아슴푸레하다


 시를 볼 때 처음부터 문제 풀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일단 내용만 잘 읽으면 된다. 무엇보다 시도 사람의 말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주의깊게 듣듯이 시를 읽으면 된다. 어떤 표현법이 쓰였다, 어떤 상징이다, .... 이런 건 시를 읽을 때 필요 없다. 시를 잘 읽어 둔 뒤, 문제에서 표현법, 상징, 기타 이론적인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가 말이 되는지 아닌지만 판단하면 된다. 

 

그럼 각 연별로 도대체 이 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살펴 보자. 


1연

내 집 아니라

 늬 집이라

 날르다 얼른 돌아오라

 처마 난간이

 니들 가여운 속삭임을 지음(知音)터라


 화자는 '내 집이 아니라 늬(너의) 집이라'고 말한다. 너는 누굴까? '날르다 얼른 돌아오라'고 하는 거 보니, 너는 날아다니는 존재다. '돌아오라'는 걸로 보아 현재 너는 집을 비운 모양이다. '처마 난간이 니들 가여운 속삭임을 지음터라'는 걸 보니 너는 처마 난간에서, 혹은 그 근처에서 속삭이는 존재다. 날아다니고 처마 난간에서 속삭인다면 이제 대충 너가 누군지 알 것도 같다. 처마에 집을 지은 새가 너일 것이다. '가여운'이라는 단어에서 '니들'에 대한 화자의 감정도 알 수 있다. 

 

'지음'은 고사성어다. 거문고의 명인 백아. 백아의 음악을 잘 이해해주던 벗 종자기. 어느 날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내 음악을 이해해주던 이(지음)'가 죽었다며 거문고의 줄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전에는 '지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몇 가지 뜻이 있는데, 그 뜻 모두 이 고사,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처마 난간과 새의 관계를 짐작하면 된다.


2연

 내 집 아니라

 늬 집이라

 아배 간 뒤 머언 날

 아들 손자 잠도 깨우리

 문틈 사이 늬는 몇 대째 설워 우느뇨


 '아배 간 뒤 머언 날', 아버지가 죽고 아주 나중에 그 아들과 손자의 잠도 깨워 줄 것이다. 누가? 새가. 어떻게? 지저귐으로. 새는 아버지때도 있고, 그 아들, 손자대까지 내내 그 집의 처마에 있을 것이다. '몇 대째 설워 우느뇨'로 알 수 있다. '설워'로 역시 화자의 감정, 작품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몇 대에 걸쳐 처마에 새 둥지가 있는 오래 된 집에 어쩐지 슬프게 들리는 새소리를 상상하면 된다. 

 

머릿속에 작품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를 살려서 풍경을 그려보고 소리를 들어야 한다. 작품의 언어가 말해주는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내고 느끼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3연

 내 집 아니라

 늬 집이라

 하늘 날던 은행잎이

 좁은 마루 구석에 품인 듯 안겨 든다

 자고로 맑은 바람이 거기 살았니라


 하늘을 날던 은행잎이 마루에 떨어지는 것을 '품인 듯 안겨 든다'고 표현했다. 그 집은 맑은 바람이 살았다고 한다. 2연에서 그려 낸 집에 더 긍정적인 이미지가 추가된다. 몇 대째, 그러니까 퍽 오래 처마에 새 둥지가 있는 집인데, 누군가의 집처럼 포근하고, 맑은 바람이나 하늘 날던 은행잎처럼 맑고 깨끗하고 좋은 것들이 깃들어 살던 집이다. 


4연

 오! 내 집이라

 열 해요 스무 해를

 앉았다 누웠달 뿐

 문 밖에 바쁜 손[客]이

 길 잘못 들어 날 찾아오고


갑자기 화자가 사실을 말한다. '내 집이라'고. 그렇다 그 집은 사실 화자의 집이다. 왜 자기 집이 아니라 새의 집이라고 말했었을까? 화자는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앉았다 누웠다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의미 없이 밥 먹고 자고만 반복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찾아오는 손님도 없다. 화자와는 달리 바쁘게 살아가는 (더 가치 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문 밖에 있고, 그들은 화자를 찾아 오지 않는다. 혹 찾아 온다면 '길 잘못 들어' 온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우리에게 털어놓는다. 


5연

 손때 살내음도 저뤘을 난간이

 흔히 나를 안고 한가하다

 한두 쪽 흰 구름도 사라지는디

 한 두엇 저질러 논 부끄러운 짓

 파아란 하늘처럼 아슴푸레하다

 


그 집에 난간이 있는데, 오래 된 집이니만큼 그 나무 난간은 손때가 잔뜩 묻었다. 사람 손때가 많이 묻은 낡은 나무 난간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손때와 살내음이 배어든 나무 난간과 그 냄새를 상상해야 한다. 나는 자주 그 난간에 기대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난간이 흔히 나를 안고 한가하다'가 그말이다. 난간에 기대 하늘을 보니 파아란 하늘에 한두 쪽 흰 구름이 흘러간다.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구름들이 마침내 사라지는데, 화자가 과거에 저지른 부끄러운 짓이 두어 개 떠오른다. 아슴푸레하게. 

 

2020.10.30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김영랑] - 김영랑, 멋진 남자

 

김영랑, 멋진 남자

김영랑의 본명은 김윤식으로 1903년 전라남도 강진군 대지주집 5남매의 맏이입니다. 열다섯에 결혼했으나::: 일 년 여만에 사별하고, 1917년 휘문의숙에 입학! 휘문의숙이라함은... 다 아시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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