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에 도달하니 수양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작은 누각이 있어 단청은 밝게 빛나고 향기 진동하니 이 땅은 화주 화음현(華州 華陰懸)이었다. 소유가 춘흥을 이기지 못하여 버들을 비스듬히 잡고 <양류사(楊柳詞)>를 지어 읊으니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
김홍도, 춘한맥맥_ 여인의 옆에 버드나무가 있다.
버드나무 푸르러 베 짠 듯하니,
긴 가지 그림 같은 누각에 드러웠구나.
원컨대 부지런히 심으세요.
이 버들이 가장 멋지다오.
또 하였으되,
버드나무 어찌 이리 푸르고 푸를까?
긴 가지 비단 기둥에 드리웠구나.
원컨대 그대는 잡아 꺽지 마오.
이 나무가 가장 다정하다오.
하고 읊으니 그 소리 청아하여 옥을 깨치는 듯 하였다.
양류 : 수양버들
화주땅에 온 우리 남주 양소유. 수양버들 푸르고 경치가 좋으니 '춘흥'(봄이라 신나는 기분)이 올라서 노래를 좀 하였다. 잘생긴 남자가 혼자 노래를 하면 누가 들어줘야 할까? 당연히 예쁜 여자가 들어줘야한다.
이때 그 누각 위에 옥 같은 처자가 있으니 이제 막 낮잠을 자다가 그 청아한 소리를 듣고 잠을 깨어 생각하되,
‘이 소리는 필연 인간의 소리가 아니다. 반드시 이 소리를 찾으리라.’
하고, 베개를 밀치고 주렴을 반만 걷고 옥난간에 비껴서서 사방을 두루 볼 때, 갑자기 양생과 눈이 마주치니 그 처자의 눈을 초생달 같고, 얼굴은 빙옥 같으며, 머리 구비가 헝클어져 귀밑에 드리워졌고, 옥비녀는 비스듬히 옷깃에 걸친 모양이 낮잠 자던 흔적이었다. 그 아리따운 거동을 어디 다 헤아리겠는가.
옛날 소설 주인공들은 다 잘났다. 잘난 건 알겠는데 서술을 보면 참..... 시를 읊으면 그 목소리가 '옥을 깨'뜨릴 때 나는 소리랑 비슷하단다. 옥도 돌인데 그냥 돌 깨는 소리나 옥 깨는 소리나 거기서 거기 아닐까? 그래도 꼭 '옥을 깨치는 듯'하다고 한다. 여자도 '옥 같은 처자'다. 그녀가 누각 위에서 바깥을 보면 물론, 누각은 높으니까 안전펜스.. 아니 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 난간도 '옥난간'이라고 구라를 친다. (이런 구라를 '미화법'이라고 한다.)
뭐.. 아무튼! 양소유와 옥 같은 처자의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맞은 것이다! 초생달 눈, 빙옥 얼굴, 전형적인 미인 묘사에 ... 오오, 미인이 낮잠 자던 모양새라니, 약간 헝클어진 차림의 미인이 아리땁다는 것이다. 상상은 독자의 몫.
이때 서동이 객점(客店)에 가 묵을 것을 잡고 와 양생께 고하여,
“저녁밥이 다 되었으니 행차하십시오.”
라고 하자, 그 처자가 부끄러워 주렴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양생이 홀로 누각 아래에서 속절없이 바라보니, 지는 날 빈 누각에 향내뿐이었다. 지척이 천리되고 약수(弱水)가 멀어지니 양생이 할 수 없이 서동을 데리고 객점으로 돌아와 애만 태웠다.
양소유가 집에서부터 데리고 온 키 66센티미터의 어린아이가 숙소를 잡고, 저녁밥을 주문하고는 양소유를 데리러 왔다. 여자는 사라지고, 양소유는 안타깝기만 한데.... '지척이 천리되고 약수가 멀어지니'는 눈 앞에 보이던 미녀가 보이지 않게 된 고통(?)..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다.
엄마한테는 과거 급제해서 출세해서 집안을 일으켜세우고 엄마 호강시켜준다고, 그러기 위해 출가한다며 집을 나온 우리 양씨...... 여자 한 번 보고나니 숙소로 돌아와서도 애만 태울 뿐이다.
(과거 시험 공부 안 하냐!!!)
고전소설에서는 허구헌날 주렴이 나온다. '수정렴'은 수정으로 만든 주렴이다. 사진처럼 구슬을 꿰어 만든 발을 주렴이라 한다.
대개 이 처자의 성은 진씨요, 이름은 채봉이니 진어사의 딸이다. 일찍이 자모를 잃고 동생이 없어, 그 부친이 서울 가 벼슬하는 까닭에 소저가 홀로 종만 데리고 머물렀는데, 뜻밖에 꿈 밖에서 양생을 만나 그 풍채와 재주를 보고 심신이 황홀하여 말하였다.
우리 미인 언니의 정체는 진어사의 외동따님 진채봉 되시겠다. 양소유를 보고 한눈에 반하셨구나....
“여자가 장부를 섬기기는 인간의 대사요 백년고락이라. 옛날 탁문군(卓文君)이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찾아갔으니 처자의 몸으로 배필을 청하기는 가하지 않지만, 그 상공의 거주지와 성명을 묻지 아니 하였다가 후에 부친께 고하여 매파를 보내려 한들 어디 가서 찾겠는가?”
하고, 즉시 편지를 써 유모를 주어 말하였다.
“객점에 가 나귀를 타고 이 누각 아래에 와 <양류사>를 읊던 상공을 찾아 이 편지를 전하고 내 몸이 의지하고자 하는 뜻을 알게 하라.”
우리 채봉이 언니 성격이 뜨거우시다. 중국 한나의 탁문군도 사마상여를 처음 만난 날 밤 바로 사마상여를 찾아갔다고 한다. 채봉은 여자가 남자가 프로포즈하는 것은 안될 일('가하지 않지만'=허락되지 않지만)이라고 하면서도 뒷날을 걱정한다.
채봉이 원하는 것은 이렇다. 1. 아빠에게 버드나무 노래 부르던 남자(즉, 양소유)와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2. 아빠가 매파(중매인)을 양소유네 집에 보낸다. 3. 결혼한다.
그런데 매파를 보내려면 그 남자의 이름과 주소가 필요하다. 그러니 그 남자에게 연락을 하자. 내가 너에게 마음이 있으니 거주지와 성명을 내놓고 내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라고 하자. 이것이 채봉의 생각이다.
“불행히도 배필을 정하였으면 이 상공의 소첩됨이 부끄럽지 아니할 것이다. 또 그 상공을 보니 소년이어서 취처(娶妻)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니 의심 말고 가라.”
미모의 언니, 첫눈에 불 같은 사랑에 빠지셨다.
아빠가 화내면 내가 혼나면 된다. 양소유가 유부남이면? .......... 으음, ............... 그럼 나는 첩이 되어도 좋다. 근데 그 남자, 아직 젊던데? 미혼일 걸. ............. 뭐, 이런 식이다.
유모가 객점으로 가니, 이때 양생이 객점 밖에서 두루 걸으며 글을 읊다가 늙은 할미가 <양류사>읊은 나그네를 찾는 것을 보고 바삐 나아가 물어 말하였다.
“<양류사>는 내가 읊었는데 무슨 일로 찾는가?”
유모가 말하였다.
“여기서 할 말씀이 아니오니 객점으로 들어가십시오.”
양생이 유모를 이끌고 객점에 들어가 급히 물으니 유모가 말하였다.
“<양류사>를 어디서 읊으셨습니까?”
양생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나는 먼 지방 사람으로 지나다가 마침 한 누각을 보니 양류 춘색(楊柳春色)이 볼만하기에 흥에 겨워 시 한 수를 읊었는데 어찌 묻는가?”
유모가 말하였다.
“낭군께서 그때 상면한 사람이 있으십니까?”
양생이 말하였다.
“마침 하늘의 신선이 누각에 있어 아리따운 거동과 기이한 향내가 이제 까지 눈에 있어 잊지 못한다.”
양씨도 채봉씨에게 한 눈에 반하셨다. '하늘의 신선'이란다.....
유모가 말하였다.
“그 집은 진어사댁이요, 처자는 우리 소저인데 소저가 마음이 총명하고 눈이 밝아 사람을 잘 알아 잠깐 상공을 보시고 몸을 의탁고자 하되, 어사께서 바야흐로 경성에 계시니 이후로 매파를 통하고자 한들 상공이 한번 떠난 후에는 종적을 찾을 길이 없어 노첩(老妾)으로 하여금 사시는 곳과 성명과 취처 여부를 알고자 하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