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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3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김만중] - 김만중, 구운몽_ 전문, 해설 <1>
낙양 땅에 이르니 낙양은 천자가 머무는 수도(首都)이다. 번화한 풍경을 구경코자 하여 천진교(天津橋)에 이르니 낙숫물은 동정호를 지나 천리 밖으로 흐르고, 다리는 황룡이 굽이를 편 듯한데 다리 가에 한 누각이 있으니 단청은 찬란하고 난간은 층층하였다. 금안장을 한 좋은 말들은 좌우에 매어 있고 누각의 비단 장막은 은은한 가운데 온갖 풍류 소리가 들리거늘 생이 누각 아래에 다달아 물어 말하였다.
“이 어떠한 잔치인가?”
다 이르되,
“모든 선비가 일대 이름난 기생을 데리고 잔치합니다.”
양생이 이 말을 듣고 취흥을 이기지 못하고 말에서 내려 누각 위에 올라가니, 모든 선비가 미인 수십 사람을 데리고 서로 좋은 자리 위에 앉아 떠들썩하며 담소가 단란하다가 양생의 거동과 풍채가 깨끗함을 보고 다 일어나 읍하여 맞아 앉았다. 성명을 통한 후에 노생이라 하는 선비가 물어 말하였다.
“내 양형의 행색을 보니 분명 과거를 보러 가십니까?”
생이 말하였다.
“과연 재주는 없지만 굿이나 보러 가거니와 오늘 잔치는 한갓 술만 먹고 노는 일이 아니라 문장을 다투는 뜻이 있는 듯합니다. 소제(小弟)와 같은 사람은 먼 지방 미천한 사람으로 나이가 어리고 견식이 심히 천하고 비루하니 용렬한 재주로 여러 공의 잔치에 참여함이 극히 외람됩니다.”
모든 선비가 양생이 나이가 젊고 언어가 겸손함을 보고 오히려 쉽게 여겨 말하였다.
“과연 그러하지만 양형은 후에 왔으니 글을 짓거나 말거나 하고 술이나 먹고 가시오.”
하고, 이어서 잔 돌리기를 재촉하고 온갖 풍류를 일시에 울리게 하였다.
비루하다 :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용렬하다 : 사람이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하다.
외람되다 : 하는 짓이 분수에 지나치다.
물론, 과거 시험 잘 봐서 출세해서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 말대로 잘해서 장가 잘 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좋은 자리를 만나면 룰루랄라 같이 노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선비들과 같이 놀려고 다가간 양소유. 비루에 용렬에 외람까지, 말을 겸손하니 예쁘게 하는데, 선비들은 진짜 양소유가 실력이 없다고 생각해 버린다.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술 자리 문화는 비슷비슷한 것 같다. 잔 돌리기를 재촉한다니.... ㅎㅎ
생이 눈을 들어보니 모든 창기는 각각 풍악을 가지고 즐겼지만, 한 미인이 홀로 풍류도 아니하고 말도 아니 하며 앉았는데 아름다운 얼굴과 얌전한 태도가 정말로 국색(國色)이었다. 한번 보자 정신이 황홀하여 정처가 없고, 그 미인도 자주 추파를 들어 정을 보내는 듯하였다.
국색(國色) :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국향 國香)
창기 : 몸을 파는 천한 기생 / 하지만 여기서도 굳이 몸을 파는 천한 기생이라는 뜻으로 썼는지는 모르겠다. 나름 전생 선녀 출신에 훗날 높은 신분이 되는 양소유의 첩이 되는, 구운, 즉 아홉 구름 중 하나인데 말이다.
양소유가 여러 기생 중 가장 새침한 기생을 보니 완전 예뻐서 한눈에 반했는데.....진채봉은? 응? 아..아무튼 그런데 보니 그 기생도 양소유에게 끼를 부리는데....
생이 또 바라보니 그 미인의 앞 흰 옥으로 된 책상에 글 지은 종이가 여러 장 있거늘, 생이 여러 선비를 향하여 읍하고 말하였다.
“저 글이 다 모든 형들의 글입니까? 주옥 같은 글을 구경함이 어떠합니까?”
여러 선비가 미처 대답하지 못 할 때, 그 미인이 급히 일어나 그 글을 받들어 양생 앞에 놓거늘, 양생이 차례로 보니 그 글이 놀라운 글귀가 없고 평범하였다. 생이 속으로 말하였다.
'낙양은 인재가 많다 하더니 이것으로 보면 헛된 말이로다.'
그 글을 미인에게 주고 여러 선비께 읍(揖)하여 말하였다.
“궁벽한 벽지의 미천한 선비가 상국의 문장을 구경하니 어찌 즐겁지 아니 하겠습니까?”
이때 여러 선비가 술이 다 취하여서 웃으며 말하였다.
“양형은 다만 글만 좋은 줄 알고 더욱 좋은 일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는 구려.”
양생이 말하였다.
“소제가 모든 형의 사랑함을 입어 함께 취하였는데 더욱 좋은 일을 어찌 말하지 아니하십니까?”
왕생이라 하는 선비가 웃으며 말하였다.
“냑양은 예부터 인재의 고장이오, 이번 과거의 방목(榜目) 차례를 정하고자 하는데, 저 미인의 성은 계요, 이름은 섬월이오, 한갓 얼굴 아름답고 가무 출중한 뿐 아니라 글을 알아보는 슬기 또한 신통하여 한번 보면 과거의 합격과 낙제를 정하기에, 우리도 글을 지어 계랑과 오늘밤 연분을 정하고자 하니 어찌 더욱 좋은 일이 아니겠소, 양형 또한 남자라 좋은 흥이 있거든 우리와 함께 글을 지어 우열을 다툼이 어떠하오?”
글을 지어서 누가 계랑과 밤을 지낼지를 결정한다는 얘긴데.... 아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아무리 기생, 그중에서도 앞서 말했듯 창기라고는 하지만, 아, 진짜,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이 녀석들아!
생이 말하였다.
“여러 형들의 글은 지은 지 오래니 누구의 글을 취하여 읊었습니까?”
왕생이 말하였다.
“아직 불만족해 하고 붉은 입술과 흰 이를 열어 양춘곡조(陽春曲調)를 아뢰지 아니하니 분명히 부끄러운 마음이 있어 그러한가 하오.”
그래 계랑이 오늘밤 함께 지낼 남자의 글을 골랐냐고 하니까... ㅋㅋㅋ 계랑이 부끄러워서 못 골랐다는 이 선비들.... 글도 사람도 마음에 안 들었다잖니!!!
양생이 말하였다.
“소제는 글도 잘 못하거니와 하물며 국외인(局外人)이라 여러 형과 재주를 다투는 것이 미안 합니다.”
왕생이 크게 말하였다.
“양형의 얼굴이 계집 같지만, 어찌 장부의 기품이 아니오. 다만 양형이 글 지을 재주가 없다면 할 수 없겠지만 재주가 있다면 어찌 사양하려 하시오.”
얼굴이 계집 같다 - 꽃미남이다
장부의 기품이다 - 어깨가 넓다?
생이 처음 계랑을 본 후에 시를 지어 뜻을 시험코자 하였지만, 여러 선비가 시기할까 주저하였는데 이 말을 듣고 즉시 종이와 붓을 들어 거침없는 필체로 순식간에 세 장의 시를 쓰니, 바람 돗대가 바다에서 달리는 것 같고 목마른 말이 물에 닿은 것 같았다. 여러 선비들이 시 글귀가 민첩하고 필법(筆法)이 매우 생생함을 보고 크게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양생이 여러 선비를 향해 읖하여 말하였다.
“이 글을 먼저 여러 선비께 드려야 마땅하나, 오늘 좌중의 시관(試官)은 곧 계랑입니다. 글 바칠 시각이 미치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즉시 시 쓴 종이를 계랑에게 주니 계랑이 샛별 같은 눈을 뜨며 옥 같은 소리로 높이 읊자, 그 소리는 외로운 학이 구름 속에 우는 듯, 짝 잃은 봉황이 달밤에 우지지는 듯하여 진나라의 쟁과 조나라의 거문고(칠현금,七絃琴)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
초객(楚客)이 서유로입진(西遊路入秦)하니
주루래취낙양춘(酒樓來醉洛陽春)을.
월중단계(月中丹桂)를 수선절(誰先折)고?
금대문장(今代文章)이 자유인(自由人)을.
뜻은 다음과 같다.
초나라 손이 서쪽에서 놀다가 길이 진나라에 드니,
술집에 와 낙양춘 술에 취하였도다.
달 가운데 붉은 계수나무를 누가 먼저 꺽을고,
오늘날 문장이 스스로 사람이 있도다.
여러 선비가 처음에 양형을 쉽게 여겨 글을 지으라 하다가 양형의 글이 섬월의 눈에 든 것을 보고 낙담하여 계랑을 돌아보며 아무 말도 못하였다. 양생이 그 기색을 보고 갑자기 일어나 여러 선비에게 하직하고 말하였다.
섬월의 성이 계, 그러므로 계랑과 섬월은 같은 사람이다.
고전소설을 읽을 때 가장 어려운 것, 호칭과 지칭의 다양함 ㅜㅜ
극복하려면 꼼꼼히 읽고, 모르는 건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고, 읽으며 답을 찾고, 그게 정답입니다.
“소제가 여러 형의 가엾게 여겨 돌보심을 입어 술이 취하니 감사하거니와 갈 길이 멀어 종일 담화치 못하겠습니다. 훗날 곡강연(曲江宴)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하고 내려가니 여러 선비가 만류치 아니하였다.
중국 당나라에서 장원 급제 발표는 봄에 이루어졌다. 발표가 나면, 탐화연을 시작으로, 문희연, 앵도연, 곡강연, 안탑제명 등 많은 잔치가 열렸다. 그 수많은 잔치 중 최고는 당나라 수도 장안 동남쪽 연못인 곡강에서 열린 곡강연이었다.
곡강연에서 다시 만나자는 것은 장원급제하고 만나자, 과거가 끝나고 만나자, 정도의 뜻이 되겠다.
생이 누각에서 내려가자 계랑이 바삐 내려와 생에게 말하였다.
“이 길로 가시다가 길 가 분칠한 담장 밖에 앵두화가 성한 곳이 바로 첩의 집입니다. 원컨대 상공께서 먼저 가시어 첩을 기다리십시오, 첩 또한 곧 따라 가겠습니다.”
생이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갔다.
섬월이 누각에 놀라가 여러 선비께 고하여 말하였다.
“모든 상공이 첩을 더럽게 아니 여기시어 한 곡조 노래로 연분을 정하셨으니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계랑의 말은, "시 잘 쓰는 사람과 계섬월이 하룻밤 지낸다고 규칙을 정했지? 그런데 이제 저 낯선 선비(양소유)가 시를 제일 잘 썼네? 이 일을 어쩌면 좋지? (오늘밤 내가 너희들말고 저 낯선 선비와 지내도 괜찮을까?)" 라는 뜻이다.
여러 선비가 말하였다.
“양생은 객이라서 우리와 약속한 사람이 아니니 어찌 거리낄 것 있겠는가?”
그러나 선비들은 계섬월을 포기하고 싶지 않고, 양소유에게 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입을 모아,
"하지만 양소유는 손님이야. 우리와 규칙을 약속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까 계섬월 너는 양소유에게 약속을 지킬 필요는 전혀 없어. 절대로 없어. (양소유와 오늘밤을 지내지 말아 줘어어!!!)"
라며 구질구질하게 미련을 떨고 있다.
섬월이 말하였다.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어찌 옳다 하겠습니까? 첩이 병이 있어 먼저 가오니, 원컨대 상공들은 종일토록 즐기십시오.”
하고, 하직하고 천천히 걸어 누각에서 내려가니 여러 선비가 앙심을 품었지만 처음에 이미 언약이 있었고, 또 그 냉소하는 기색을 보고 감히 한 말도 못하였다.
그러나, 그 동네 선비들의 심정이야 어찌 되었든, 계섬월의 마음은 이미 양소유에게로 갔으니, 신의가 있어야 사람이다! 주장하는 계섬월. 그래도 말은 점잖게 컨디션이 안 좋아 먼저 간다, 해브 어 굿 타임 가이즈!! 이래가며 양소유와 밤을 보내려 떠나는데...... 선비들의 마음은 찌질해져서 앙심을 품지만 계섬월이 자신들을 냉소하는 모습에 가슴앓이만 할 뿐, 차마 말리지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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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6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김만중] - 김만중, 구운몽_ 전문, 해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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