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더 하얗게 빛나는 수염을 펄럭이며 노인이 걸어간다. 노인의 손에는 웬 낡은 책이 한 권 들려 있다. 책에는 붉은 실들이 있다. 무슨 일인가?
누가 누구를 만나 살며, 내가 왜 하필, 어쩌다가 그만, 에고 내 팔자야, ...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였을까?
부부의 인연을 묶어주는 신에 대한 이야기는 북인도에서 흘러들어왔으리라 추측된다.
처음으로 책에 그 이야기가 기록된 건, 중국 당나라에서 9세기 중엽의 일이다. 이야기는 몹시 재미있다. 이복언의 <속현괴록>이라는 책에 실린 '정혼점' 이야기를 살펴보자.
우리 한국사람에게는 '당나라 군대'라는 우스개말로 더 유명한 그 당나라, 거기에 위고라는 남자가 있었다. 위고는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으나 어째서인지 뜻대로 되지 않는 중이었다. 위고가 노인을 만난 건 집을 떠나 한 객점에 머물던 밤이었다. 객수에 취한 밤 산책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환한 달빛 아래 책을 보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붉은 실 꾸러미를 잔뜩 가진 노인, 바로 월하 노인이었다.
노인이 붉은 실로 남녀의 손가락을 묶으면, 절대로 부부가 된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은 위고.
위고는 "제 아내는 태어나기는 한 겁니..." 노인을 따라 갔다. 어느 가게 앞에서 애꾸눈의 초라한 여인이 세 살 가량 된 여자아이를 안고 있었다. 노인이 말했다. "저 아이가 자네 아낼세."
위고는 몹시 화가 났다. 집에 오자 아이를 죽이라고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계속 장가를 가려고 노력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무려 14년이 흘러, 드디어 위고도 장가를 가게 되었다. 높은 분의 귀한 따님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신부가 이마를 꽃무늬로 가린 채 절대 이마를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신부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세 살 무렵 어떤 남자가 그녀의 이마를 칼로 찌르고 달아나 흉터가 남았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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