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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3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김만중] - !김만중, 구운몽_ 전문, 해설 <1>
부인이 즉시 들어가 물으시니, 소저의 병이 이미 나았다.
소저가 침소에 가 시녀에게 물어 말하였다.
“춘랑의 병이 어떠하냐?”
시녀가 말하였다.
“오늘은 잠깐 나아 소저가 거문고 소리를 희롱하심을 듣고 일어나 세수하였습니다.”
춘운이 소저를 모시고 밤낮 함께 거처하니 비록 주인과 종의 분수는 있으나 정은 형제 같았다.
이날 소저의 방에 와 물어 말하였다.
“아침에 어떤 여관이 거문고를 가지고 와 좋은 소리를 탄다 하여 병을 억지로 참고 왔는데 무슨 까닭으로 그 여관이 속히 갔습니까?”
정경패(소저)는 도교의 여자 사제(여도사)로 변장하고 온 양소유의 거문고 연주와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아프다며 방으로 돌아왔다. 이유는... 그 노래가 '봉구황'이었기 때문... 그러니까 프로포즈송이어서....
정경패의 침실에는 춘운이 와 있다. 춘운은 정경패를 모시는 여종인 모양이다. 아무튼 현재까지는 그렇다.
소저가 낯빛이 붉어지며 가만히 대답하여 말하였다.
“내가 몸 가지기를 법대로 하고 말씀을 예대로 하여 나이가 십륙 세 되었지만 중문(中門) 밖에 나가 외인(外人)을 대면치 아니하였는데, 하루 아침에 간사한 사람에게 평생 씻지 못할 욕을 입으니 무슨 면목으로 너를 대면하겠는가.”
춘운이 크게 놀라 말하였다.
“무슨 일이기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소저가 말하였다.
“아까 왔던 여관이 얼굴이 아름답고 기상이 준수하였단다. 처음에 <예상우의곡>을 타고 나중에 <남훈곡(南薰曲)>을 타기에 내가 ‘진선진미(盡善盡味)하니 그만하라.’ 하였지만 또 한 곡조를 타니 이는 사마상여가 탁문군을 꼬이던 <봉구황곡(鳳求凰曲)>이었다. 그제서야 자세히 보니 그 여관이 얼굴은 아름다우나 기상이 호탕하여 아마도 계집이 아니었다. 분명 간사한 사람이 내 허명(虛名)을 듣고 춘색을 구경코자 하여 변복(變服)을 하고 온 것이니, 다만 춘랑이 병들어 보지 못한 것이 애닯구나. 춘랑이 곧 한번 보았으면 남녀를 구별하였을 것이다. 춘랑은 생각해 보라. 내 규중 처녀로서 평생에 보지 못하던 사내를 데리고 반나절을 서로 말을 주고 받았으니 천하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아무리 부모라도 차마 아뢰지 못하였는데 춘랑에게 말하노라.”
춘운이 웃으며 말하였다.
“소저는 여관의 <봉황곡>을 듣고 사마상여의 <봉황곡>은 아니었으니 어찌 그리 과하게 생각 하십니까. 옛날 사람이 잔 가운데 활 그림자를 보고 병들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또 그 여관이 얼굴이 아름답고 기상이 호방하며 음률을 능통하니 참으로 사마상여인가 합니다.”
소저가 말하였다.
“비록 사마상여라도 나는 탁문군이 되지 아니할 것이다.”
⁎ 옛날 클라쓰.... 크... 처음 보는 남자랑 반나절 말을 주고 받으면 천하에 있을 수 없는 일.... 크....그런데 그런 집 여자를 보겠다고 여장하고 들어간 양소유는 진짜 여자에 진심인 편이구나... 장차 여덟 명의 아내를 둘 싹수가 이미 노릇노릇 보인다고 하겠다.
⁎사마상여와 탁문군 이야기는 끝이 없구나.... 10회에서도 링크를 넣었음요.... 혹시 필요한 분들, 맨 아래에 링크 넣겠습니다.
⁎배중사영(杯中蛇影) : 쓸데없는 두려움.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 클릭!
2021.06.15 - [수능국어/국어 용어들] - [고사성어] 배중사영(杯中蛇影)
하루는 소저가 부인을 모시고 중당에 앉았는데 사도가 과거 방목(榜目)을 가지고 희색이 만연하여 들어오며 부인에게 말하였다.
“내 아기의 혼사를 정하지 못하여 밤낮으로 염려하였는데 오늘날 어진 사위를 얻었소.”
부인이 말하였다.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가 말하였다.
“이번 장원한 사람은 성은 양씨요 이름은 소유요, 나이는 십륙 세요, 회남 땅 사람이오. 그 풍채는 두목지(杜牧之)요, 그 재주는 조자건(曹子健)이니 진실로 이 사람을 얻으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소.”
부인이 말하였다.
“열 번 듣는 것이 한번 보기만 못하다 하니 친히 본 후에 정하십시오.”
⁎ 과거 방목 : 과거 합격자 명부.
⁎ 남편감 구하는 딸을 아기라고 부르는 정사도. ㅎㅎ 옛날 딸바보들의 모습인 듯.
⁎ 두목지 : 중국 당나라 후기의 시인. 이름은 두목. '목지'는 자이다. 감성적인 시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유명한 미남으로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한다.
⁎ 조자건 : 조조의 아들, 시인으로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차후 포스팅 예정.
소저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즉시 일어나 침소에 가 춘운에게 말하였다.
“저번에 거문고 타던 여관이 초 땅 사람이라 하더니 회남은 초 땅이다. 양장원이 분명히 부친께 뵈오려 올 것이니 춘랑은 자세히 보고 나에게 이르라.”
춘운이 웃으며 말하였다.
“나는 여관을 보지 못하였사오니 양장원을 본들 어찌 알겠습니까. 소저가 주렴 사이로 잠깐 보시면 어떠하겠습니까?”
소저가 말하였다.
“한번 욕을 먹은 후에 다시 볼 뜻이 있겠는가.”
이때 양장원이 회시(會試) 장원하고 이어서 급제 장원하여 한람학사를 하니 이름이 천하에 가득하였다. 명문 귀족의 딸 둔 집에서 매파를 보내어 구혼하는 집이 구름 모이 듯 하였다.
생이 정사도와의 혼사를 생각하여 다 물리쳤다. 하루는 한림이 정사도를 뵈오려 가 통하자 사도가 즉시 화당을 청소하고 맞는데, 한림이 머리에 계수나무 꽃을 꽂고 홍패(紅牌)와 한림 유지(諭旨)를 드리고 화동(花童)과 악공(樂工)이 각색 풍류를 울리며 사도께 뵈니, 풍채가 아름답고 예의를 지키는 태도나 행동이 거룩하여 사도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 여자에게만 신경을 곤두세우던 양소유, 어찌나 똑똑한지 그래도 장원급제!
장원급제한 양씨이시므로, 양장원이라고 불림.
⁎ '욕을 먹었다', '욕을 봤다'..... 지금이랑 어휘의 사용처가 달라진 것일까, 하지만 진짜 대화 좀 나눴다고 저러는 거.... 아오... 옛날 사람들.
⁎ 장원급제 후 '한림학사'라는 벼슬을 맡아, 또 순식간에 지칭이 '한림'이 되었다.
고전 소설에서 젊은 남주들은 흔히 한림학사이다. 얼마나 좋은 벼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에도 고려에도 한림학사는 있었는데 당대 정치 엘리트임을 보증하는 자리임은 분명하다.
고려의 경우, 한림학사는 정 4품의 벼슬이다. 왕명을 받들어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과거를 관장하며 서적을 편찬하고, 서연관(書筵官)으로서 왕에게 강의하고 시종관(侍從官)으로서 왕의 거둥에 시종하는 등의 임무를 맡았다. 관원 중 정예 가운데 정예로 이후의 벼슬길도 대개는 탄탄대로였다.
원래 여기서 끊을 생각이 아니었으나 너무 길어지는 고로 일단 끊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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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7 - [분류 전체보기] - 김만중, 구운몽 <12> / 정사도, 양소유를 사위로 픽업 / 전문, 해설
전편에서 탁문군 스토리 아직 안 보신 분 혹시 계신가요? ㅎㅎ
2021.05.12 - [이것은 상식인가 잡소리인가] - 탁문군과 사마상여의 사랑이야기, 봉구황, 백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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