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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3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김만중] - !김만중, 구운몽_ 전문, 해설 <1>
각설이라.
양생이 장안에 들어가 숙소를 정한 후에 주인에게 물어 말하였다.
“자청관이 어디에 있는가?”
주인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저 춘명문 밖에 있습니다.”
생이 즉시 예단(禮緞)을 갖추고 두련사를 찾아가니 연사는 나이 육십이 넘었다. 생이 들어가 재배하고 그 모친의 편지를 드리니 연사가 그 편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네 어머니와 이별한 지 이십여 년이 되었구나. 그후에 낳은 자식이 이렇듯 컸으니 세상 일월이 헛된 것이로다. 나는 세상 번화(繁華)를 버리고 세상 밖에 와 있거니와, 네 모친 편지를 보니 네 배필을 구하라 하였지만 네 풍채를 보니 진실로 신선이다. 아무리 구하여도 너 같은 사람은 얻기 어렵거니와 다시 생각할 것이니 훗날 다시 오너라.”
생이 말하였다.
“소자의 어머니께서 연세가 많으십니다. 소자의 나이가 십륙 세나 배필을 정하지 못하여 효도하여 봉양치 못하고 있으니, 원컨대 숙모님은 십분 염려하십시오.”
하직하고 갔다.
양소유가 자청관으로 두련사를 찾아갑니다. 기억나시나요? 양소유 엄마가 했던 말?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경성 춘명문 밖에 자청관(紫淸觀)의 두련사(杜鍊師)라 하는 사람은 나의 외사촌 형제다. 지혜가 넉넉하고 기개와 도량이 평범치 않아 모든 명문귀족을 다 알고 있다. 내가 편지를 부치면 바드시 너를 위하여 어진 배필을 구해 줄 것이다.”출처: https://ppullan.tistory.com/181?category=1201221 [뿔란]
엄마가 시킨대로 외가쪽 5촌 아줌마를 찾아온 양소유!
엄마와 두련사는 벌써 20년째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군요. 양소유와 5촌 아줌마는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다 자란 조카를 본 아줌마는 '세상 일월이 헛되다'고 하시네요. 뭐.... '일월'이 해와 달, 그러니까 '세월'쯤 되는 말이겠죠. '세상 밖에 와 있는', 멋진 아줌마, 무려 성직자입니다. 자청관은 도교의 사찰입니다.
아줌마도 양소유가 너무 잘나서 어울리는 여자를 구하기 어렵다고 하시네요. ㅎ
'연사'라는 이름으로 두련사를 말하는 데요, 성이 두, 이름이 련사인데, 두음법칙에 따라 우리식으로 읽으면 '연사'입니다.
이때 과거 날이 가까웠지만 혼처를 정하지 못하였기에 과거의 뜻이 없어 다시 자청관에 가니 두연사가 웃으며 말하였다.
“한 혼처 있는데 처자의 얼굴과 재주는 양랑과 배필이다. 귀족집 붉은 문이 겹겹이 되어 있고 계극(棨戟)을 문 밖에 베푼 데가 바로 그 집이다. 문벌이 가장 높은 사람이 육대공후(六代公侯)요, 삼대상국(三代相國)이라. 양랑이 이번에 장원 급제 하면 그 혼사를 바랄 것이나 그 전에는 의논하지 못할 것이니, 양랑은 나만 보채지 말고 착실히 공부하여 장원 급제를 하라.”
양소유.... 결혼에 미친 건가.....
결혼할 여자를 못 정해서 과거시험에 관심이 없다니.....
아, 아무튼, 그 사이 5촌 아줌마는 양소유의 배필감을 골라 놓았다.
(이 아줌마, 양소유를 '양랑'이라고 부른다. '양랑'이 양소유의 호칭임은 쉽게 읽어내야 한다.)
근데 이 배필감 집안이 으리으리하다. 바깥에서 집을 보아도 어마어마한데, 6대에 걸쳐 공후를 하고, 3대에 걸쳐 상국을 하는 집안.... 그러니 장원급제가 아니면 결혼하자고 말해 볼 수도 없을 터!!! 일단 장원급제를 하고 와라!!!
상국: 중국 전통 관료제에서 신하의 몸으로 올라갈 수 있는 합법적인 최고의 지위. 그래서 황제의 옆에서도 칼을 들고 무장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후 : 작위(귀족의 계급)은 공, 후, 백, 자, 남으로 나뉜다. 즉, 공후는 높은 귀족, 높은 벼슬아치를 뜻한다.
계극 : 의장용 기구의 하나로서 끝을 창모양으로 만들어 붉은 비단으로 감싼 것이다. 관리가 집을 나설 때 하인을 시켜 들고 나가던 물건이다.
“누구의 집입니까?”
연사가 말하였다.
“춘명문 밖의 정사도 집이다. 사도가 한 딸을 두었는데 신선이요, 인간 사람이 아니다.”
생이 이 말을 듣고 갑자기 생각하되, ‘계섬월이 그런 말을 하더니 과연 그러한가’ 하여 물어 말하였다.
“정씨 여자를 숙모님이 친히 보셨습니까?”
연사가 말하였다.
“어찌 보지 못하였겠는가? 정소저는 진실로 하늘 나라 사람이요, 범인이 아니다. 어이 다 입으로 헤아리겠는가?”
생이 말하였다.
“어리 석지만 이번 과거는 내 손 안에 있어 염려치 아니하지만, 평생에 정한 뜻이 있으니 그 처자를 보지 못하면 결단코 구혼치 않고자 하니, 원컨대 불쌍히 여겨 그 소저를 보게 해 주십시오.”
연사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재상집 처녀를 어이 보겠는가? 양랑이 이 노인을 믿지 아니하는구나.”
생이 말하였다.
“소자가 어찌 사부의 말씀을 의심하겠습니까마는 사람의 소견이 각각 다르니 사부의 소견이 소자와 다를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정사도의 딸이 재주와 외모가 어나더 레벨이라는 말을 듣고, 양소유는 계섬월이 한 말을 떠올린다. 무슨 말인지 기억나시나요? ㅎㅎㅎ
“내 눈으로 보건대 진낭자만한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장안 사람이 다 정사도의 여자가 요조한 얼굴과 유한한 덕행이 당세에 으뜸이라 하니 첩이 비록 보지는 못하였으나, ‘이름이 높으면 실속 없는 빈 명예가 없다.’ 하니, 원컨대 낭군은 경성에 가셔서 두루 방문 하십시오.”출처: https://ppullan.tistory.com/192 [뿔란] ㅎㅎㅎ 요렇게 말했었지요.
'이번 과거는 내 손 안에 있소이다!!!' 큰소리 뻥뻥 치는 양소유.
아니 근데 평생에 무슨 뜻을 정해놨길래 여자를 안 보면 프로포즈를 못한다는 걸까요?
'평생에 정한 뜻'이 혹시 자유연애? ㅎ
양소유는 두련사 아줌마를 '숙모님'이라고 부르다가 또 느닷없이 '사부'라고도 부르네요. 정신없는 인간들....
연사가 웃으며 말하였다.
“봉황과 기린은 아무리 무식한 계집이라도 상서(祥瑞)로운 줄을 알아보고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은 아무리 지극히 천한 시골 사람이라도 높고 밝은 줄을 아는데, 노인의 눈이 아무리 밝지 못한들 사람 알기를 양랑만 못하겠는가.”
생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아무리 해도 내 눈으로 보지 못하면 의심이 풀리지 아니하오니, 원컨대 사부는 모친께서 편지한 뜻을 생각하셔서 한번 보게 해 주십시오.”
연사가 말하였다.
“죽기는 쉬워도 정소저 보기는 어렵다. 어이하면 좋은가?”
하더니 갑자기 생각하여 말하였다.
“네가 혹시 음률을 아느냐?”
생이 말하였다.
“지난 해 한 도사를 만나 한 곡조를 배워 압니다.”
연사가 말하였다.
“재상가의 뜰이 엄숙하니 날지 못하면 들어갈 길 없고, 또 소저가 경서와 예문(禮文)을 능통하여 동정출입(動靜出入)을 예(禮)대로 하기에 문 밖에 나는 일이 없으니 어찌 그림자나 얻어 보겠는가. 다만 한 일이 있지만 양랑이 듣지 아니할까 염려되는구나.”
생이 이 말을 듣고 일어나 재배하여 말하였다.
“정소저를 볼 수만 있다면 하늘이라도 오를 것이요, 깊은 못이라도 들어 가리니 무슨 일을 듣지 아니하겠습니까?”
양소유가 평생에 뜻한 바에 따라 정소저를 만나야 하는데, 정소저는 예법에 따라 통 바깥 출입을 하지 않고, 재상 집 딸이니 볼 수가 없습니다. 이에 두련사 아줌마가 계책을 하나 떠올리는데.... '다만 한 일'이 그것인데, 과연 양소유가 그대로 따라줄지? 무려 여장인데? ㅎㅎ
양소유는 막 정소유만 볼 수 있으면 하늘에 별도 따오겠다 수준의 각오입니다. ㅋ
연사가 말하였다.
“정사도가 요사이 늙고 병들어 벼슬을 사양하고 원림(園林)에 돌아와 풍류만 일삼고, 부인 최씨는 거문고를 좋아하여 거문고를 잘 타는 객을 만나면 소저와 함께 곡조를 의논하는데, 소저가 지음(知音)을 잘 해서 한번 들으면 청탁고저를 모를 것이 없으니 비록 사광(師曠)이라도 더하지 못할 것이다. 양랑이 만일 거문고를 알면 분명히 보기 쉬울 것이다. 이월 그믐날은 정사도의 생일이라 해마다 시비를 보내어 향촉을 갖추어 수복(壽福)을 비니, 그때 양랑이 여도사(女道士)의 옷을 입고 거문고를 타면 시비가 보고 돌아가서 부인께 고하면 부인이 반드시 청할 것이고, 그러면 소저를 보기 분명 쉬울 듯하니 양랑은 연분만 기다리라.“
생이 크게 기뻐하여 날을 기다리다 이럭저럭 날이 당하니 정사도의 시비가 부인의 명으로 향촉을 가지고 왔거늘, 연사가 받아 삼청전(三淸殿)에 가서 불전에 가 공양하고 시비를 보낼 때, 이때 생이 여도사의 의관을 하고 별당에 앉아 거문고를 탔다. 시비가 하직하다가 문득 거문고 소리를 듣고 물어 말하였다.
지음 : 차후 포스팅 예정. 여기서는 그냥 소리를 잘 듣는다, 음악감상에 정통하다 정도로만 해석해도 될 듯.
사광 :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의 맹인 악사(樂師). 자(字)는 자야(子野). 악성(樂聖, 음악의 성인)으로 추앙받음. 사광지총(師曠之聰, 사광의 귀밝음)이란 사자성어도 있음.
삼청전 : 삼청(三淸)은 도교에서 숭배하는 하늘 위의 세계인 상청(上淸)·태청(太淸)·옥청(玉淸)을 합쳐 부르는 말로 삼청전(三淸殿)은 삼청의 별[星辰]을 받드는 곳이다.
“내 일찍이 부인 앞에서 이름난 거문고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이런 소리는 과연 듣지 못하였으니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입니까?”
연사가 말하였다.
“엊그제 나이 어린 여관(女官)이 초 땅에서 와 황성을 구경하고 여기 와 머물고 있다. 때때로 거문고를 타니 그 소리가 심히 사랑스럽더구나. 나는 본디 음률에 귀먹어 곡조를 모르는데 그대의 말을 들으니 진실로 잘 하는 것 같구나.”
시비가 말하였다.
“부인의 말씀을 들으면 반드시 청하실 것이니, 바라건대 사부님이 이 사람을 잡아두십시오.”
연사가 말하였다.
“그대를 위하여 잡아두겠다.”
하고 시비를 보냈다.
생이 이 말을 듣고 부인의 부르심을 기다리더니, 시비가 돌아가 부인께 고하여 말하였다.
“자청관에 어떤 여관이 거문고를 타는데 그 소리가 진실로 들음직하였습니다.”
부인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내 잠깐 듣고자 한다.”
하고, 즉시 시비를 자청관에 보내어 두련사께 청하여 말하였다.
“나이 어린 여관이 거문고를 잘 탄다 하니, 원컨대 도인(道人)은 권하여 보내십시오.”
연사가 시비를 데리고 별당에 가 양생에게 물어 말하였다.
“최부인께서 불러계시니 여관은 나를 위하여 잠깐 가봄이 어떠한가?”
생이 말하였다.
“먼 지방 천한 몸이 존귀한 댁 출입이 어려우나 대사께서 권하시니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하고, 여도사의 옷을 입고 화관(花冠)을 바로 쓰고 거문고를 안고 나오니 선풍도골(仙風道骨)은 위부인과 사자연(謝自然)이라도 미치지 못하였다. 가마를 타고 정부(鄭府)에 가니 최부인이 중당에 앉았는데 위의가 엄숙하였다. 생이 당하에 나아가 재배하니 대부인이 시비를 명하여 자리를 주고 말하였다.
“우연히 시비로 인하여 신선의 음악 소리를 듣고자 하여 청하였는데 과연 여관을 보니 천상 선녀를 만난 듯하여 세상 마음이 다 없구나.”
생이 말하였다.
“첩은 본디 초나라 천한 사람이라 외로운 자취 구름같이 동서로 다니다가 오늘날 부인을 모시니 하늘의 뜻인가 합니다.”
*선풍도골 : 신선의 풍채와 도인의 골격이란 뜻으로, 남달리 뛰어나고 고아(高雅)한 풍채를 이르는 말
*시비 : 몸종
*위부인과 사자연은 여자로 수행하여 신선이 된 이들이다.
*두련사의 호칭이 또 새로 나왔다. 정도사네 시비는 두련사를 '도인'이라 부르고, 양소유는 '대사'라고 불렀다.
*드디어 여장을 하고 정도사네 집에 들어간 양소유!!!
여기서 끊을 생각은 아니었으나....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일단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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