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도대체 이게 뭐라고 나는 고려가요 처용가를 올리는 게 이리도 힘이 들까.
뭐 다른 힘든 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날아 가거라 시간아 흘러라 하고 있는 걸까.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착하고 인내심 강한 내가 참도록 하겠다.
그럼 넋두리는 이쯤에서 접고, 고려가요 처용가!
처용가를 모르시나요?
2020/12/28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신비로운 그 남자, 처용] - [처용 2] 처용, 전염병에 얽힌 그의 눈물겨운 사연
2021/01/06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신비로운 그 남자, 처용] - [처용 3] 향가 '처용가' 본문
이런 저런 앞의 내용에 이어서.... 고려가요 처용가!
전염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처용은 전염병의 발발이 끊임없었던 만큼이나 오래오래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신라를 넘어 고려를 넘어 조선시대까지 처용은 불멸의 수호신으로.......
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처용가는 계속 되었고, 심지어 처용무라는 춤이 의식무로 정착되었고 (전승과정이 긴 만큼 복잡한 이야기가 많지만 과감한 생략은 미니멀 라이프를 위한 기본 중의 기본.......)
아무튼 조선시대에는 제야(한 해의 마지막 밤)에 나례(사악한 것들 꺼져라 의식) 뒤에
처용무를 두 바퀴 돌렸다고 합니다. (처용무 클라쓰.... 크으)
'벽사진경'이라는 둥, 뭐.... 익히 아시는 그런 것입니다.
좋은 건 컴온 컴온, 나쁜 건 저리 가!!! 이런 거.
처용가는 악학궤범과 악장가사에 실려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표현과 함께 실려 있는데,
사실 이 친구가 중세 국어로 적혀 있기도 한데다,
그 기원부터가 길고, 복잡하고(처용에 대한 학설부터가 몹시 복잡합니다... 유명한 무당설 등등) 하여
논리적, 합리적 전체 스토리 완성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바는 전문적 지식의 완성이 아니라
즐기는 문학, 옛날 거라도 즐길 수 있는 비옥한 상식의 바다이므로,
가장 보편적이고 현대적인 해석으로 가볍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라의 성스러운 시대에 / 천하가 태평한 것은 라후의 덕이다
처용가의 첫 부분입니다.
신라의 성스러운 시대에 천하가 태평했는데, 그것은 라후의 덕이라는 말이죠.
'라후'란 단어에 대해서는 또한 많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인도 신화 속에 등장하는신으로, 달과 해를 먹어 일식과 월식을 일으키는 아수라라고 보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라후'는 '처용'을 가리킵니다.
즉 역신(전염병의 신)을 물리치는 처용은 해와 달을 먹는 신과 같은 존재로,
처용 덕에 신라때 천하가 태평했다는 것이죠.
처용아비여
이로써 인생에 서로 말씀 안 하실 것 같으면 / 이로써 인생에 서로 말씀 안 하실 것 같으면
삼재와 팔난이 일시에 소멸하네
처용을 아비(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로써 인생에 서로 말씀 안 하실 것 같으면'의 원문은 '以是人生애 相(常)不語하시란대'입니다.
역시 해석이 분분합니만, '말이 필요없다'나 '별 말이 없게 된다(구설이 없다)', '구설이 안 생기면'
정도로......
아무튼! 말 할 것도 없이 삼재(세 가지 재앙)과 팔난(여덟 가지 어려움)이 시끄럽게 떠들 필요 없이 사라진다는 뜻되겠습니다. ㅎ
아 아비의 모습이여 처용아비의 모습이여
자, 이제부터 처용의 모습을 묘사해 줍니다.
머리에 가득 꽂은 꽃이 겨워서 기울어지신 머리와
아 수명이 길고 오래되어 넓으신 이마와
산의 모습과 비슷하신 무성하신 눈썹과
사랑하는 사람을 보시어 원만하신 눈과
풍악소리가 뜰에 가득해 (그것을 듣느라고) 우글어지신 귀와
붉은 복숭아꽃같이 붉으신 얼굴과
오향 맡으시어 웅크린 코와
아 천금 먹으시어 넓으신 입과
백옥유리 같이 흰 이빨과
사람들이 칭찬하고 복이 성하여 앞으로 나온 턱과
자, 여기까지는 얼굴 모습 묘사인데요, 처용탈과 닮았나요?
이제부터는 처용의 몸매를 소개합니다.
칠보 겨워서 숙이신 어깨와
길경 겨워서 늘이신 소맷길과
지혜모아 덕이 있는 가슴과
복과 지혜가 다 족하시어 부르신 배와
붉은 띠 겨워서 굽어지신 허리와
함께 즐기고 크게 평안하시어 기신 다리와
아 계면도시어 넓으신 발과
마지막 줄의 '계면도시어'는 '계면조' 장단에 맞추어 도는 (춤추면서 도는 거요 휘리릭)' 이란 뜻이고요,
처용무 춤추는 아래 사진 속 처용들 보시면 배를 불룩하게 한 게 보이네요 ㅎㅎㅎ
누가 지워 세우는가 / 누가 지워 세우는가
바늘도 실도 없이 / 바늘도 실도 없이
처용 아비를 누가 지워 세우는가
앞에서 실컷 처용의 모습을 묘사했는데요,
그 모습을 가진 처용은 이미 신라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제웅이라든지 가면이라든지
처용의 모습을 만들어야겠죠.
그럼 그 처용의 상을 과연 누가 만들어 세웠느냐, 바늘도 실도 없이..
뭐 그런 내용이군요.
많고 많은 사람들이여 / 열두나라가 모여 지워 세운
아 처용아비를, 많은 이들이여
이 부분도 해석 상의 이견들이 좀 있긴 하지만,
쉽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처용아비를 지어 세웠다, 처용상을 만들었다, 정도로....
버찌야 오얏아 녹리야 / 빨리나와 내 신코를 매어라
아니 매어 있으면 나올 것이다 궂은 말
아니 갑자기 버찌, 오얏, 녹리.... 과일 이름을 불러대며 자신의 신발끈을 매라고 난리네요.
신발끈이 매어져 있지 않으면 험한 말을 하겠다고 협박까지! ㅜㅜ
근데 이 신발끈 매라고 협박하는 분은 도대체 누굴까요?
네 ㅜㅜ 우리 처용님이셨습니다..... 처용님 위용 과시가 너무 심하신 편? ㅜㅜ
안히, 버찌, 오얏, 녹리라고 불리는 자들이 도대체 누구길래 ㅜㅜ
동경 밝은 달과 밤새도록 놀다가
들어와 내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아 둘은 내것이거니와 둘은 뉘 것인가
자, 어디서 많이 보던 얘기네요. 오오, 처용님이 왜 신발끈 가지고 험한 소리 하실 동 말 동 하시나 했더니만,
역신이 아내랑 동침... 불륜..... 그래서 ㅜㅜ
이 부분은 아시다시피 신라 향가 '처용가'의 내용이 거의 그대로 있습니다.
고려가요 처용가의 이 부분이 향가 해석의 첫 단추를 푸는 실로 중차대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때에 처용 아비 보시면
熱病神이야 회거리로다
이런 때!!! 네, 감히 열병신(=역신, 전염병의 신) 주제가 처용아빠님 안방에 누워 있던 때!!!
그 모습을 처용아빠님이 보신다면!!!
熱病神(열병신=역신) 정도야, 뭐 횟감이지!
역신 저 녀석을 아주 그냥 포를 떠서 초장 발라서, 아님 물회? 회비빔밥? 쌈싸서?
아무튼! 소주랑 해서 그냥!
천금을 주겠느냐 처용아비여 / 칠보를 주겠느냐 처용아비여
역신으로 회를 떠버리는 처용님, 원하는 거 다 말씀하세요!
금 많이? 일곱가지 보석? 무엇을 드릴까요?
천금 칠보도 말고 / 熱病神을 내게 잡아주소서
처용님이 대답하십니다.
천금도 칠보도 필요 없습니다.
열병신을 제게 잡아다 주세요!
아주 그냥 회를 떠버리게!
산이나 들이나 천리 밖에 / 처용아비를 피하여 갈지어다
아 열병대신의 발원이시도다
상황이 이리되니, 열병신이 이렇게 기도를 하네요.
"산이나 들이나 천리 밖으로 처용아빠를 피해서 가게 해주세요.. ㅜㅜ"
오늘 하루 일본의 코로나 확진자가 7800명이 넘고요, 영국에서는 하루 1000명씩 코로나로 세상을 뜨고 있답니다.
처용아버지가 어느 때보다 그리운 시절이네요 ㅜㅜ
다들 힘내세요! 집 콕! 외출시엔 마스크 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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