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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물, 기타 문학 관련 이야기

'향가'하면 누가 생각나나요?

by 뿔란 2021.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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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향가 해독자가 양주동 선생만은 아닙니다. 

김완진 선생 해독도 제가 학생일 때부터도 자주 나왔습니다만,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향가 해독자!

여러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끌고 다니는 재담꾼!

자칭 국보 1호 양주동 선생의 해독은 아직까지도 유효합니다.

'향가'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앞선 포스팅을 참조해주세요! ppullan.tistory.com/65

 

 

양주동 선생은 경기도 개성 출신으로 어려서는 평양, 황해도 지역 등에서 살다가

중동고등보통학교(현, 중동중, 중동고)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에서 영문학학사를 받았습니다. 

 

강남구 일원동 중동고

중동고는 1984년 강남구 일원동으로 이전했으며 1994년에는 학교 재단 경영난으로 인해 재단이 바뀌는데요,

 

네네, 그렇습니다. 1994년부터 중동고 재단은 삼성입니다. 

사실 삼성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중동 동문이기도 합니다.

 

경협 구호금 전달하는 이병철 회장 _ 서울 아카이브

많은 명문 사학들이 그렇듯 중동고도 강남 개발을 위해 강남으로 이전되었는데요, 

원래 학교 위치는 종로구 수송동으로 숙명여고와도 붙어 있었다는군요. 

 

수송동 중동고

제가 너무 학교 이야기만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정신차리고 다시 양주동 선생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향가 해독집을 출간한 최초의 사람은 사실 오구라 신페이(소창진평)이라는 일본 사람입니다. 

당시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있던 사람으로 우리말 방언과 고문을 연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제 강점기란 말을 다시 꺼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일제 강점기'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우리나라가 강제로 점령당한 시기라는 뜻입니다.

그럼 제국주의란 무엇일까요? 뭐... 여러 권의 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편의상, 일반적인 의미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아 보이는 위키백과의 정의를 가져와 봅니다. 

 

제국주의(帝國主義,영어: Imperialism)는 특정국가가 다른 나라, 지역 등을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정책, 또는 그러한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을 가리킨다. 엄밀히 정의하면 영향력, 즉 패권보다는 영역의 지배를 확대하는 정책 또는 사상을 가리킨다. - 위키백과

제국주의 시대에 지배국, 패권국이었던 열강들은 자신들이 은혜를 베푼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주장대로라면 오쿠라 신페이가 우리의 향가를 해독한 것 역시 칭찬하겠습니다만..... 

 

https://m.blog.naver.com/jjj_1/221468297222

네, 현실은 이런 것이죠. 

누워있는 아프리카인은 황금알을 낳고 있습니다. 

선교사와 탐험가들이 아주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 그림은 m.blog.naver.com/jjj_1/221468297222 이 주소의 블로그에서 가져왔는데요,

제국주의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오구라 신페이 같은 제국주의 학자들의 역할이란, 

저 누워 있는 식민지인이 저렇게 고분고분 누워 황금알을 낳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식민지인의 문화와 역사 언어를 연구하여,

가져가고 싶은 것은 가져가고, 

식민지인을 순종적으로 길들일 교육을 위한 이론과 논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구라 신페이는 1929년에 <향가 및 이두 연구(鄕歌及び吏讀の硏究)> 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양주동 선생은 당시에 시인, 비평가, 수필가, 영문학 교수, 동네 장기 선수 등으로 활약했는데요, 

오구라 신페이의 책을 접한 뒤 그 모든 일을 한시적으로 그만두었습니다.

 

그는 향가 해독을 직접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었고, 그가 직접 밝힌 그 마음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우리 문학의 가장 오랜 유산, 더구나 우리문화 내지 사상의 현존 최고 원류가 되는 이 귀중한 향가의 해독을 근 천년래 아무도 우리의 손으로 시험치 못하고 타인의 손을 빌었다는 그 민족적 부끄러움이었다.
둘째, 나는 이 사실을 통하여 한 민족이 다만 총 칼에 의해서만 망함이 아님을 문득 느끼는 동시에 우리의 문화가 언어와 학문에 있어서까지 완전히 저들에게 빼앗겨 있다는 사실을 통절히 깨달아, 내가 혁명가가 못되어 총 칼을 들고 저들에게 대들지는 못하나마 어려서부터 학문과 문자에는 약간의 천분이 있어 맘속 깊이 원도 열도 있는 터이니 그것을 무기로 하여 그 빼앗긴 문화유산을 학문적으로나마 결사적으로 전취, 탈환해야 하겠다는, 내 딴에 사뭇 비장한 발원과 결의를 했다.

 

그리고 이름난 고서 수집가, 지식인들을 상대로 책을 빌리러 다녔습니다.

양주동 선생의 이야기를 들은 지식인들 역시 귀한 고서들을 흔쾌히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주동 선생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연구에 몰두, 

1937년에 '향가의 해독 특히 <원왕생가>에 취(就)하여', 라는 논문을 <청구학총>에 발표하여 학계의 주목과 찬탄을 받고, 

1942년에 <조선고가연구>라는, 삼국유사 향가 14수에 대한 해독을 담은 책을 발간합니다. 

 

양주동, <조선고가연구>

 

그리고 1947년에는 <여요전주>라는 고려가요를 설명하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양주동 선생은 이러한 업적 외에도 무척 재미있는 분으로 인간적인 매력도 빛을 발합니다.

 

아래는 양주동 선생의 인간적인 매력을 잘 읽을 수 있는 서울신문 기사 링크입니다.  

 

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30955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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