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해설] 기형도, 엄마 걱정

 

기형도 시인의 시는 언제나 아름답고 슬픈 것 같아요 ㅜㅜ

 

자, 이제 시를 읽는 게 좀 힘들다.... 재미없다..... 하시는 분들을 위해 함께 읽어 보아요!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엄마가 열무를 삼십 단이나 들고 시장에 가셨답니다. 

 

열무 한 단!

 

 위 사진과 같은 걸 삼십 개나!!! 무겁게!!! 열무는 봄, 여름에 나옵니다. 날씨도 더운데!!! 왜 그렇게 많이? 왜 시장에? 

 

 네, 엄마는 열무를 팔러 시장에 가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안 오시고 있답니다. 이미 해는 시든 지 오래되었는데 말이죠..... 시장에 나가 아직 안 팔린 열무도 시들었을까요? 싱싱한 열무라 그리 쉽게 시들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태양은 이미 시들어서 어두워지기 시작했나 봅니다.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화자인 '나'는 방에 있는데, 마치 찬밥처럼 방에 담겨 있답니다. 찬밥이 밥그릇에 담겨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찬밥을 기운이 없고, 시들하고, 차갑고, 사람들이 좋아하지도 않고........ 아무튼! 찬밥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랍니다. 

 

 화자는 숙제를 천천히 한다고 하네요. 왜? 왜 숙제를 천천히 할까요? 숙제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 거겠죠. 숙제가 끝나면 어떻게 되길래?

 

 숙제가 끝나면, 그저 엄마를 기다릴 뿐이겠죠. 그래서 일부러 느릿느릿 숙제를 합니다. '나'는 엄마를 기다리는 게 힘들고 무섭고 싫은가 봐요. 

 

 그런데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가 안 오신대요. 배추잎 같은 발소리가 타닥타닥 안 들린대요. 그 발소리는 누구의 발소리일까요? 엄마의 발소리. 배추잎 같은 발소리? 어째서? 시장 바닥에 흩어져 떨어진 배추잎을 떠올려보세요. 낱장으로 바닥에 떨어진 배추잎. 힘없고 초라한. 엄마 발소리는 배추잎 같답니다. 아마 시장에서 장사를 하느라 지쳐서, 그렇게 지친 매일을 보내느라 지쳐서 그렇겠죠.

 

 지친 엄마의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애타게 기다립니다. 그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어둡고 무섭다고 하네요.

 

 게다가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가 들리는데요....... 시장에서 고된 장사일에 지친 엄마가 비를 맞으며 오시겠네요... 그런데, 아니, 도대체 창문에 금이 가서 틈이 있다니, 이게 말이 되나요?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왜 창문을 고치지 않을까요? 돈이 없어서겠죠...... 그넘으 가난이 뭔지!!!!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바깥에선 빗소리가 들리는데요, 방안에는 '나'의 훌쩍임이 들리겠네요. '나'는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렸답니다. 가족이 엄마와 '나', 단 둘뿐이었나봐요. 엄마는 매일 늦고, '나'는 외롭고, 배고프고, 엄마가 그립고, 찬밥 같고, .... 엄마는 오지 않고... 금간 창 틈으로 빗소리는 들리고... '나'는 엎드려서 울었답니다. ㅜㅜ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모든 것이 '아주 먼 옛날'이라는 건데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물리적 시간과 똑같이 확확 흘러가주지는 않는 법이죠.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 진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면 어떻게 되는지 다들 아시죠? 또르륵, 흑흑.... 뭐.... 그런 거죠. 

옛날에 아궁이에 연탄이나, 장작을 때던 시절에는 말이죠... 윗목, 아랫목, 뭐 이런 게 있었답니다. 

 

 

 전통 온돌은 위의 사진처럼 생겼잖아요... 얼핏 보아도 불을 때는 아궁이에 가까운 쪽(아랫목)이 더 뜨겁겠죠? 아궁이에서 먼 쪽(윗목)은 아무래도 열기가 좀 식어서 바닥이 차갑게 마련이죠. 

 

 그러니까, 시의 마지막 행, '내 유년의 윗목'은 '나'의 어린 시절(유년)에서 유독 차갑고 쓸쓸했던 시간들, 기억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