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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문과 해설/현대시

[전문, 해설] 송수권, 까치밥

by 뿔란 2021.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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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 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 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 주고 있지 않으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나무의 감을 수확할 때, 절대로 다 따지 않습니다. 꼭 어느 정도의 감을 남겨 놓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네, 까마귀, 까치, 이런 새들이 와서 먹으라고, 추운 계절에 먹이가 부족할 새들을 배려하여, 음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정말 국뽕이 절로 차오르지 않나요? ㅜㅜ 감동 ㅜㅜ)

 

자, 중요 포인트 까치밥이 뭔지 알았으니 나머지는 어렵지 않을 거예요. 가볍게 같이 보시죠.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부모님은 고향에 계시고 자녀들은 장성하면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직업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도시로 나간 자녀가 자식을 낳아 명절이나 각종 경조사에는 고향에 다니러 옵니다. (화자는 대도시로 나가지 않은 자녀인 듯 싶네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자녀가 낳은 아이들, 이 아이들은 서울 아이들, 그런데 화자의 조카이니 '서울 조카아이들'입니다. 

계절은 늦가을, 초겨울 정도겠지요. 감을 수확하고 감나무에는 까치밥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자란 조카아이들은 까치밥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감이 있으니 따보겠다고 긴 장대를 휘두릅니다.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화자는 직설적으로 조카들에게 말합니다. 그 까치밥을 따지 말라고. 까치밥이 다 사라지고, 겨울 하늘만 남으면 마음이 허전할거라고요. '남도'라는 표현이 등장한 걸 보니 이곳, 화자의 고향은 남쪽 지방인 모양입니다. 

 

전남 보성고흥_ 송수권 시인의 고향이 고흥이다. (사진, 채지형)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 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인생을 살다보면 힘든 시절을 겪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 때도 우리는 날짐승(날아다니는 짐승=새)에게 길을 내어 주었습니다. 어떻게 어떤 길을? 새들이 굶어서 얼어 죽지 않도록 까치밥을 남겨놓아서 살 길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까치밥으로 남긴 주황색 감이고, 동시에 우리의 마음.. 우리가 힘들 때도 새가 살아갈 수 있게 길을 내어주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파랗고 차가운 하늘 아래 주황색으로 매달린 까치밥은 등불과 모양이 비슷기도 합니다.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걸어 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말쿠지 : '말코지'의 방언.

말코지 : 가지가 여러 개 돋친 나무를 짤막하게 잘라서 노끈으로 매달아 물건을 걸어 두는 데 쓰는 나무 갈고리

죽 : 열 벌이나 열 개를 묶어 이르는 말

 

할아버지는 짚신을 몇 십 켤레를 만들어 두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돌아가실 분이 힘들게 짚신은 왜 그렇게 많이 만들어 두셨을까요. 무덤 속을 걸어가셨다고는 하지만, 그 짚신을 신고 갈 수는 없는 것을요...... 아니 죽는 날까지 짚신을 만드신 할아버지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화려한 삶을, 풍족한 삶을 즐기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인가를 합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무덤 속도 두 발로 걸어가셨습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짚신을 만드셨죠. 내가 쓸 것도 아니고, 그걸로 돈 벌어 쓸 것도 아닌데, 끊임없이 노력하신, 스스로의 몸으로 만들고 움직인 할아버지의 삶은 의미있고 보람있는 삶이었을까요?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보시 : 불교 용어. 댓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

 

네, 할아버지의 삶은 보람차고 뜻 깊은 삶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든 짚신이 외로운 나그네의 발에 신겨 나그네가 편하게 걸을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그리고 아버지는 동네 개가 짖어대는 한밤중에 할아버지의 짚신을 짊어지고 돈을 벌러 떠나기도 했습니다. 남도에서 저 북쪽까지 올라가 새벽에 두만강 국경을 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을까요. 가다가 신이 헤지면, 갖고 간 새 짚신을 꺼내 갈아 신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짚신은 남에게나 자손에게나 고마운 물건이었습니다. 마치, 까치에게 겨울 하늘을 밝히는 까치밥이 고마운 선물인 것처럼요. 할아버지의 짚신은 등불이고 까치밥입니다.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 주고 있지 않으냐

 

'기다림의 세월'은 누구의 세월일까요? 오래 전부터 새를 위해 까치밥을 남기고, 남을 위해 짚신을 삼던 우리 조상님들의 삶이 고난을 겪으며 참으며 살아온 세월입니다. 그 세월은 계속 펼쳐질 것입니다. 아이들의 창창한 미래도 그 기다림의 세월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서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고요? 차가운 겨울 하늘에 떠 있는 까치밥 몇 개, 아이들의 눈에도 익숙한 그 등불이 아이들이 걸어갈 길을 비춰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카 아이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고통과 슬픔, 각종 어려움을 겪으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사랑, 날짐승에게도 낯선 길손에게도 자손에게도 댓가없이 부어지는 사랑이 있으니 아이들은 따듯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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