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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문과 해설/이상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해설<2>

by 뿔란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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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을 읽지 않은 분, <날개> 해설 처음부터 보실 분은 아래로!

2021.04.22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현대소설] -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 해설<1>, 제대로 읽자!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 해설<1>, 제대로 읽자!

날개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작품의 첫 문장이 이렇다. 박제는 죽은 동물의 겉 껍데기를 살아 있는 동물처럼 꾸며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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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33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실제로 33번지는 당시 권번 기생들이 모여 살던 곳 주소다. 작가 이상은 금홍이와 동거했던 걸로 유명하다. 날개의 아내는 금홍이가 모델이라는 의견이 유력한데, 실제 금홍이가 권번 기생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번지에 18가구가 죽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이 모양이 똑같다. 게다가 각 가구에 사는 사람들이 송이송이 꽃과 같이 젊다.

 

 해가 들지 않는다. 해가 드는 것을 그들이 모른 체하는 까닭이다. 턱살밑에다 철줄을 매고 얼룩진 이부자리를 널어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아 버린다. 침침한 방안에서 낮잠들을 잔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나? 알 수 없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느라고 그런 것을 알 길이 없다. 33번지 18 가구의 낮은 참 조용하다.

 

 조용한 것은 낮뿐이다. 어둑어둑하면 그들은 이부자리를 걷어들인다. 전등불이 켜진 뒤의 18 가구는 낮보다 훨씬 화려하다. 저물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 바빠진다. 여러가지 냄새가 나 기 시작한다. 비웃 굽는 내, 탕고도오랑, 뜨물내, 비눗내.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그들의 문패가 제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미닫이 : 옆으로 밀어서 열고닫는 문

 

미닫이문

 

'비웃'은 청어를 말한다.

이렇게 청어를 굽느라 '비웃내'가 났을 것이다.

'탕고도오랑'은 파운데이션 같은 화장품의 일종.

 

 

 이 18 가구를 대표하는 대문이라는 것이 일각이 져서 외따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도 닫힌 일이 없는, 한길이나 마찬가지 대문인 것이다. 온갖 장사치들은 하루 가운데 어느 시간에라도 이 대문을 통하여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이네들은 문간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닫이를 열고 방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33번지 대문에 그들 18 가구의 문패를 몰아다 붙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각 미닫이 위 백인당이니 길상당이니 써 붙인 한곁에다 문패를 붙이는 풍속을 가져 버렸다.

 

 내 방 미닫이 위 한곁에 칼표 딱지를 넷에다 낸 것만한 내---아니! 내 아내의 명함이 붙어 있는 것도 이 풍속을 좇은 것이 아닐 수 없다.

 

'칼표'는 당시의 수입 답배였다. 상당한 고급 담배였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파이러트(해적)'인데 아래 그림에서 보듯 칼을 들고 있어서 '칼표 담배'로 불렸다.

 

칼표 담뱃갑을 펼친 모습

 

18가구가 모여사는 33번지의 풍경을 소개했다. (글을 읽으며 풍경을 그대로 머릿속에 떠올리며 읽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었을 때, 마땅히 이 33번지가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인들이 모여서 생활과 영업을 함께 하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나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 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사도 않는다. 나는 내 아내와 인사하는 외에 누구와도 인사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과 인사를 하거나 놀거나 하는 것은 내 아내 낯을 보아 좋지 않은 일인 것만 같이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 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까닭은 33번 지 18 가구 속에서 내 아내가 내 아내의 명함처럼 제일 작고 제일 아름다운 것을 안 까닭이다. 18 가구에 각기 빌어 들은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아내가 특히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으로 이 함석지붕 밑 볕 안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지 찬란하였다. 따라서 그런 한 떨기 꽃을 지키고---아니 그 꽃에 매어달려 사는 나라는 존재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거북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서술자 '나'의 아내는 18가구의 여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그러나 남편을 혹처럼 달고, 남편을 데리고 있기에 가장 적합치 않은 영업장에서 살아간다.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마음에 들었다. 방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안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은 원하지 않았다. 내 방은 나 하나를 위하여 요만한 정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 같아 늘 내 방에 감사하였고, 나는 또 이런 방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아서 즐거웠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하는 것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날을 그저 까닭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이었던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쳐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

 

게다가 이 혹 같은 존재인 남편, '나'는 욕심도 없고 의욕도 없고 일도 하지 않는다. 좁고 침침한 방 하나에 만족해 있다.  또 '나'는 시종 유치한 어린애 같은 말투를 쓰면서도 배운 사람이나 쓸 법한 단어가 툭툭 섞여 있다. 이렇게 불합리한 것들의 조화가 이 작품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이다. 

 

 이 절대적인 내 방은 대문간에서 세어서 똑 일곱째 칸이다. 럭키 세븐의 뜻이 없지 않다. 나는 이 일곱이라는 숫자를 훈장처럼 사랑하였다. 이런 이 방이 가운데 장지로 말미암아 두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그것이 내 운명의 상징이었던 것을 누가 알랴?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침결에 책보 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 해지면서 나가 버린다. 해가 영영 들지 않는 윗방이 즉 내 방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볕드는 방이 아내 방이요, 볕 안드는 방이 내 방이요 하고 아내와 나 둘 중에 누가 정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불평이 없다.

 

'나'에게 '절대적'인 공간인 이 방은 전혀 해가 들지 않는 방이다. 출입문도 아내가 쓰는 아랫방으로 연결되어 있는, 벽장같은 방이다.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궁금해지는 게 당연하다. '나'는 심지어 '불평이 없다'고 한다. 유곽에서 아내방에 붙은 벽장에 숨어 사는 남자, 이 남자는 어떤 남자인가? 가여운 윤락녀를 등쳐먹는 게으름뱅이인가? 아니면 아내에게 학대받는 가여운 지식인인가? 제대로 읽고 있다면 이 남자와 아내에 대해 여러 궁금증이 들어야 한다. 어떤 궁금증이나 호기심, 아니면 분노나 동정,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풀기 위해 작품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래 기사에 종로 33번지에 얽힌 이상 이야기가 실려 있다.

news.joins.com/article/20849381

 

천재시인 '이상' 운영 '제비다방' 위치 밝혀졌다

시인 겸 소설가 이상의 '제비다방' 위치가 밝혀졌다. 제비다방은 그동안 '종로 1가에 위치한다'고만 알려져 있었고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었다.이번 위치 확인은 문화평론가 박광민 한국

news.joins.com

 

 

3편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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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해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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