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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문과 해설/이상

김기림에게 7

by 뿔란 202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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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에게·7

 

기림형.

 

 궁금하구려 ! 내각(內閣)이 여러 번 변했는데 왜 편지 하지 않소? 아하, 새 참 시험 때로군그래! 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답안용지를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는 당신의 어울리지 않는 풍채가 짐짓 보고 싶소그려!

 

 허리라는 지방은 어떻게 좀 평정되었소? 병원 통근은 면했소? 당신은 스포츠라는 초근대적인 정책에 깜박 속아 넘어갔소. 이것이 이상 씨의 기림, 배구에 진출하다에 대한 비판이오.

 

 오늘은 음력 섣달그믐날이오. 향수가 대두(擡頭)하오. 라는 내지인(內地) 대학생과 커피를 먹고 온 길이오. 커피 집에서 랄로를 한 곡조 듣고 왔. 후베르만이란 제금가(提琴家)는 참 너무나 탐미주의입디다. 그저 한없이 예쁘장할 뿐이지 정서가 없소. 거기 비하면 요전 엘먼은 참 놀라운 인물입니다. 같은 랄로의 더욱이 최종 악장 론도의 부()를 그저 막 헐어 내서는 완전히 딴것을 만들어 버립디다.

 

 엘먼은 내가 싫어하는 제금가였었는데 그의 꾸준히 지속되는 성가(聲價)원인을 이번 실연을 듣고 비로소 알았소. 소위 엘먼 톤이란 무엇인지 사도(斯道)의 문외한 이상으로서 알 길이 없으나 그의 슬라브적인 굵은 선은 그리고 그 분방한 변주는 경탄할 만한 것입디다. 영국 사람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까 역시 이주민 입디다.

 

 한화휴제 차차 마음이 즉 생각하는 것이 변해 가오. 역시 내가 고집하고 있던 것은 회피였나 보오. 흉리에 거래하는 잡다한 문제 때문에 극도의 불면증으로 고생중이오. 가끔 혈담을 토하고(중략) 체계 없는 독서 때문에 가끔 발열하오. 2,3일씩 이불을 쓰고 문외불출하는 수도 있소. 자꾸 자신을 잃어버리면서도 양심 양심 이렇게 부르짖어도 보오. 비참한 일이오.

 

 한화휴제 3월에는 부디 만납시다. 나는 지금 참 쩔쩔매는 중이오. 생활보다도 대체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를 모르겠소. 의논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오. 만나서 결국 아무 이야기도 못하고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저 만나기라도 합시다. 내가 서울을 떠날 때 생각한 것은 참 어림도 없는 도원(桃源夢)이었소. 이러다가는 정말 자살할 것 같소.

 

 고향에는 모두를 베개를 나란히 하여 타면(墮眠)들을 계속하고 있는 꼴이.

 

 여기 와보니 조선청년들이란 참 한심합디다. 이거 참 썩은 새끼 조차도 주위에는 없구려!

 

 진보적인 청년도 몇 있기는 있소. 그러나 그들 역()늘 그저 무엇인지 부(不絶)히 겁을 내고 지내는 모양이 불민하기 짝이 없습디다.

 

 3월쯤은 동경도 따뜻해지리다. 동경 들르오. 산보라도 합시다.

 

 『조광2월호의 동해라는 졸작 보았소? 보았다면 게서 더 큰 불행이 없겠소. 등에서 땀이 펑펑 쏟아질 열작이오.

 

 다시 고쳐쓸 작정이오. 그러기 위해서는 당분간 작품을 쓸 수 없을 것이. 그야 동해도 작년 6, 7월경에 쓴 것이오. 그것을 가지고 지금의 나를 촌탁(忖度)하지 말기 바라오.

 

 조금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하오.(중략)

 

 망언 망언. 엽서라도 주기 바라오.

 

음력 제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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