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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문과 해설/이상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해설<3>

by 뿔란 2021.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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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읽고 싶은 분, 

2021.04.22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이상] -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 해설<1>, 제대로 읽자!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 해설<1>, 제대로 읽자!

날개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작품의 첫 문장이 이렇다. 박제는 죽은 동물의 겉 껍데기를 살아 있는 동물처럼 꾸며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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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외출만 하면 나는 얼른 아랫방으로 와서 그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 놓고 열어놓으면 들이비치는 햇살이 아내의 화장대를 비쳐 가지각색 병들이 아롱이 지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렇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다시없는 내 오락이다. 나는 조그만 돋보기를 꺼내가지고 아내만이 사용하는 지리가미를 꺼내 가지고 그을려 가면서 불장난을 하고 논다. 평행광선을 굴절시켜서 한 촛점에 모아가지고 그 촛점이 따근따근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종이를 그을리기 시작하고, 느다란 연기를 내면서 드디어 구멍을 뚫어 놓는 데까지 이르는, 고 얼마 안되는 동안의 초조한 맛이 죽고 싶을 만 큼 내게는 재미있었다.

 

 이 장난이 싫증이 나면 나는 또 아내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여러가지로 논다. 거울이란 제 얼굴을 비칠 때만 실용품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도무지 장난감인 것이다. 이 장난도 곧 싫증이 난다.

 

지리가미 : 휴지, 화장지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 아내방에서 논다. 1. 화장대 병 구경  2. 돋보기로 불장난 3. 거울 장난

 

 

일제 강점기 화장품과 화장대

 

 나의 유희심은 육체적인 데서 정신적인 데로 비약한다. 나는 거울을 내던지고 아내의 화장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나란히 늘어 놓인 그 가지각색의 화장품 병들을 들여다본다. 고것들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매력적이다. 나는 그 중의 하나만을 골라서 가만히 마개를 빼고 병구멍을 내 코에 가져다 대 고 숨 죽이듯이 가벼운 호흡을 하여 본다. 이국적인 센슈얼한 향기가 폐로 스며들면 나는 저절로 스르르 감기는 내 눈을 느낀다. 확실히 아내의 체취의 파편이다.

 

 나는 도로 병마개를 막고 생각해 본다. 아내의 어느 부분에서 요 냄새가 났던가를…… 그러나 그것은 분명하지 않다. ? 아내의 체취는 여기 늘어섰는 가지각색 향기의 합계일 것이니까.

 

아내방에서 즐기는 정신적인 놀이 - 정신적이라기보다 감각적. 화장품 냄새를 맡아보며 아내의 체취를 생각함.

 

 

 아내의 방은 늘 화려하였다. 내 방이 벽에 못 한 개 꽂히지 않은 소박한 것인 반대로, 아내 방에는 천장 밑으로 쫙 돌려 못이 박히고, 못마다 화려한 아내의 치마와 저고리가 걸렸다. 여러가지 무늬가 보기 좋다. 나는 그 여러 조각의 치마에서 늘 아내의 동체와, 그 동체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포우즈를 연상하고 연상하면서 내 마음은 늘 점잖지 못하다.

 

 그렇건만 나에게는 옷이 없었다. 아내는 내게 옷을 주지 않았다. 입고 있는 골덴양복 한 벌이 내 자리옷이었고 통상복과 나들이옷을 겸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이넥의 스웨터가 한 조각 사철을 통한 내 내의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다 빛이 검다. 그것은 내 짐작 같아서는 즉 빨래를 될 수 있는 데까지 하지 않아도 보기 싫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허리와 두 가랑이 세 군데 다---고무밴드가 끼어 있는 부드러운 사루 마다를 입고 그리고 아무 소리없이 잘 놀았다.

 

사루마다 : 1920년대를 전후하여 무명으로 만든 짧은 바지 형태의 일본식 속옷 ‘사루마다さるまた, 猿股, 申股’가 보급가 보급되었다. 속잠방이, 팬티.

 

 

 어느덧 손수건만해졌던 볕이 나갔는데 아내는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요만일에도 좀 피곤하였고 또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내 방으로 가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하고 그만 내 방으로 건너간다. 내 방은 침침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낮잠을 잔다. 한번도 걷은 일이 없는 내 이부자리 는 내 몸뚱이의 일부분처럼 내게는 참 반갑다. 잠은 잘 오는 적도 있다. 그러나 또 전신이 까칫까칫하면서 영 잠이 오지 않는 적도 있다. 그런 때는 아무 제목으로나 제목을 하나 골라서 연구하였다. 나는 내 좀 축축한 이불속에서 참 여러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 에 다 비누처럼 풀어져서 온데간데 없고, 한잠 자고 깨인 나는 속이 무명헝겊이나 메밀껍질로 띵띵 찬 한 덩어리 베개와도 같은 한 벌 신경이었을 뿐이고 뿐이고 하였다.

 

 그러기에 나는 빈대가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러나 내 방에서는 겨울에도 몇 마리의 빈대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내게 근심이 있었다면 오직 이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일 것이다. 나는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피가 나도록 긁었다. 쓰라리다. 그것은 그윽한 쾌감에 틀림없었다. 나는 혼곤히 잠이 든다.

 

'나'의 방에서 '나'는 온 종일 누워 정신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고, '나'는 무가치한 존재이다.

 

 

 나는 그러나 그런 이불 속의 사색 생활에서도 적극적인 것을 궁리하는 법이 없다. 내게는 그럴 필요가 대체 없었다. 만일 내가 그런 좀 적극적인 것을 궁리해내었을 경우에 나는 반드시 내 아내와 의논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나는 아내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이고---나는 꾸지람이 무서웠다느니 보다는 성가셨다. 내가 제법 한 사람의 사회인의 자격으로 일을 해 보는 것도 아내에게 사설 듣는 것도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 버리고도 싶었다.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사회와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

 

 

 

이어지는 4편은 아래 클릭!

2021.05.11 - [문학, 전문과 해설/이상] -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해설<4>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해설<4>

처음부터 읽고 싶은 분은, 2021.04.22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이상] -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 해설 , 제대로 읽자! , 제대로 읽자!" data-og-description="날개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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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따위 필요없다! <날개> 작품만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고 싶다!

2021.04.21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이상] - 이상, 날개, 전문

 

이상, 날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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