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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문과 해설/이상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 해설<1>, 제대로 읽자!

by 뿔란 2021.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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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작품의 첫 문장이 이렇다. 박제는 죽은 동물의 겉 껍데기를 살아 있는 동물처럼 꾸며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란 천재가 겉껍데기는 살아 있지만 속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일 것이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란 누굴 말하는 것일까? 이 작품에서는 그게 누구인지 명시적으로는 밝히지 않지만, 아무래도 서술자 자신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이어서 서술자는 유쾌하다고 한다. 이는 반어(뜻과 표현이 반대되는)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역설(반대되는 표현들로 진실을 말하는)적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반어적 표현으로 볼 때는 자신이 천재인데 박제가 되었으니 슬프지만 유쾌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역설적 표현으로 본다면, 박제된 천재라는 부정적 언사에 유쾌하다는 긍정적 언사를 썼는데, 실제로 서술자는 그 상황이 우습고 웃기고 웃음이 나니 유쾌하다 느낀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애까지' 유쾌하다고 한다. 수능뿐 아니라 모든 읽기에서는 (글자가 아닌 실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뉘앙스를 잘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다고 한 것은 원래 연애는 유쾌하지 않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서술자에게 연애란 유쾌하지 않은 것, 그러나 이렇게 나는 천재지만 박제되어서 인생도 영혼도 끝나버렸다는 비감함을 느낄 때면 모든 것이 유쾌하게 느껴지며, 심지어 연애까지도 유쾌하다는 것이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 놓소. 가공할 상식의 병이오.

 육신이 흐느적거릴 만큼 피로했을 때 정신이 맑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너무 피곤하면 눈이 또랑거리며 잠도 오지 않고, 또한 정신적인 활동으로 잠을 안자고 몹시 피로해졌다면 의식의 명료함은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물론 몸은 많이 상한다 ㅜㅜ) 그러나 이 문장을 다르게 보자면, 평소에는 정신이 맑지 않다는 뜻으로 간단하게 읽을 수도 있다. 평소에는 잡생각, 번뇌가 많아 정신이 맑지 않다, 혹은 평소에는 제 정신으로 살고 싶지 않아 흐릿하게 머릿속을 헝크러뜨려 놓고 산다는 뜻일 수도 있다. 게다가 뱃속에는 회충이 들어있는데.... 그 와중에 담배를 피면 머릿속에 백지가 준비된다고 한다. 담배피는 작가 사진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는 구절이다. 

 머릿속 백지 위에 위트와 파라독스, 그러니까 재치와 역설을 늘어놓는다. 바둑 포석처럼 치밀하게. 그것은 가히 공포스러운 병, 지식인이 지닌 상식으로 인한 병이다. 서술자는 자신의 글쓰기(혹은 머릿속의 글쓰기)를 병에 비유하고 있다. 지겹고, 떨어지지 않고, 고통스러운 어떤 것으로 글쓰기를 보는 것이다. 

담배꽁초를 문 알베르 까뮈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 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정신이 제멋대로 노는 사람)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 ----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만을 영수(받아들이는)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諸行)(일체의 행위)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 끔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글쓰기에 이어 서술자는 연애 이야기를 한다. 자신은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 본 일이 있'다고 한다. 서술자에 따르면 지성의 극치를 들여다 본 사람은 정신이 제멋대로 노는 사람이다. 지성의 극치란 어떤 것이길래 정신분일자가 되는 것일까? 정신분일자가 여인과 생활한다는 것은 여인의 반만을 받아들이는 생활이다. 그리고 여인의 반이란 온갖 것의 반이라고 했으니, 여인이란 온갖 것이라는 말이 된다. 서술자에게 여인이란 엄청난 것인 모양인데.... 아무튼, 여인의 반만을 받아들이는 그 생활 속에도 그나마 한 발만 들여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보며 낄낄거리겠다는 것인데,..... 이런 자신에 대해 서술자는 이런 진단을 내린다. 일체의 행위가 싱거워 견딜 수 없게끔 된 모양이라고. 그러니까, 여인의 반만을 받아들인 생활에 한 발만 들여놓고 여인과 마주보고 자신들이 태양인 것처럼 낄낄거리는 삶은 모든 현실을 떠난 삶인 모양이다. '굿바이'라는 인사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싱거웠던 현실에게 건네는 작별인사이다. 

 

 

굿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로니를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파라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비하여 차라리 경편(輕便)하고(가뜬하여 쓰기에 손쉽고 편하고) 고매하리다.

 

'그대'는 서술자 자신, 혹은 작가 이상일 것이다. 내용으로 보아 그렇다.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상대로 식탐을 부려보아라, 위트와 파라독스를 써라, 너 자신을 위조하라. 이런 조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 모두 역설이다. 그런 역설을 현실로 이루어보라 정도? 더 깊이 보자면,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은 자신을 모델로 자신을 모방한 작품을 쓴다거나 기존에 써둔 자신의 작품과 비슷한 작품을 또 쓴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은 많은 작품들이 세상에 있지만 자신은 그런 작품들을 읽지 않겠다, 읽지 않는다는 말일 수 있겠다. 왜?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비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니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일 것이다.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至言)(지당한 말)인 듯싶소.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19세기 소설은 사실주의(리얼리즘)이 주류다. 이상은 1930년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소설가이다. 19세기 봉쇄,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은 낭비, 위고는 빵 한 조각, 디테일이 뭐가 중요하냐, 꺼져라 리얼리즘, 뭐 이런 석으로 리얼리즘에 대한 반발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화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하는 것이니……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상채기도 머지 않아 완치될 줄 믿소. 굿바이." 감정은 어떤 '포우즈'. ('포우즈'의 원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우즈가 부동자세에 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화를 보지 말라? 화나는 일을 보거나 생각하지 말라? 모르겠다. 서술자 자신, 혹은 작가 이상에게, 혹은 독자들에게 굿바이, 인사를 한다. 감정은 일종의 포즈(자세)에 불과하다. 감정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그 포즈가 고도화되면, 감정은 사라지고 만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우리가 생각해 온 진실한 감정이란 없거나 미미한 것이며, 그저 자세에 불과하고, 그 자세가 점점 발달하면, 사랑이라든가 미움이라든가 하는 것은 아예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봉과 미망인---세상의 하고 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이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험이 되오? 굿바이.

 

서술자는 스스로가 천재임을 다시 밝힌다. '비범한 발육'이라는 말이 그것인데, 이제는 박제된 처지이므로, 천재성을 사용하여 사고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천재성을 회고하여 사고작용을 한다.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할 때 과거의 천재성을 회고하여 사용한 것이다. 

 여왕봉, 그러니까 여왕벌과 미망인. 모든 여인이 이미 미망인이라는 것은 모든 남편이 이미 죽었다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거짓이다.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미망인이라는 것은 남편들이 남편 구실을 못한다는 말이 된다. 스스로를 박제된 천재라 말한 서술자이고 보면 세상 모든 남자들이 망가졌다고 볼 수도 있긴 하겠다. 시선을 돌려 여성쪽을 보자면, 여자들은 원래 남편이 죽은 듯 여기고 산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자신의 논리가 여성에 대한 모험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논리가 특이하다, 여성에 대해 새로운 관찰을 하게 한다는 정도의 말일 듯 싶다. 

 

굿바이. 

 

여기까지가 '날개'의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뒤부터는 플롯을 가진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마디 한 마디 작품을 뜯어보게 돕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포스팅인데, 솔직히 끝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작품은 일단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재미로 읽든, 수능 성적을 위해 읽든. 특히 수능, 시험, 이런 목적으로 작품을 읽는다면 더더더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2편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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