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아실 이
- 김영랑 -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 <시문학>(1931) -
김영랑은 자신의 시에 특별히 제목을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 김영랑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목 짓기 너무 어렵잖아요 ㅜㅜ
아무튼, 그래서 김영랑 시의 제목은 거의 시의 첫 구절을 땄다고 합니다.
시를 읽는 게 혹여 힘드신가요?
저도 힘들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도 그냥 말이라는 걸 염두에 두시고,
문장이나 절의 연결이 행의 구분과 잘 안 맞을 수도 있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익혀 두시고
시인의 감정이나 논리에 따라 낯선 수식어들이 붙을 수 있고,
낯설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시며
쓰여 있는 그대로 읽으시면 됩니다.
저는 이 시를 참 자주 떠올립니다.
인간관계에서 찜찜하거나 기분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거의 떠올리는 것 같아요.
내 마음 아실 이, 내 혼자 마음을 날같이 아실 이......
그런 사람이 세상에 진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존재한다면 참 소중한 존재겠죠, 물론.
그런 분이 계시다면 마음 속의 모든 것, 티끌, 눈물, 보람을 보여드리겠다 시인은 노래합니다만......
그것도 그 마음들이 보배인 것처럼 내어드리겠다고...
아 저는 생각만해도 창피한데....
그러나 내 마음을 마치 나인 것처럼 훤히 아는 분이라면 이미 부끄러워할 것도 없겠죠....
꿈에나 아득히 보일까 말까한
내 마음을 알아주는 분!
그리운 게 당연하겠죠!
친한 친구를 뜻하는 '지기'도 '나를 알다'라는 뜻이니까요.
마지막 연을 보면,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사랑은 타기도 한답니다.
사랑은 뜨겁고 향기롭고 맑고 귀한 것인데요...
그러나, 내 마음은 불빛에 연기인 듯 희미하기만 해서,
사랑하는 사람도 알 수 없는 것이 내 마음인 것이고,
하여,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그립기만 할 뿐
설령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될 수 없는 것이죠!
사실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사람이 자기 마음을 제대로 알 수나 있을까요?
내 마음은 온갖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감각과 욕심에 휘둘리고
지나간 후회와 미래에 대한 집착 등으로
맑게 드러나 보일 짬이 없을 뿐더러....
때로는 정말 내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운 날도 있으니까요.
여러분들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계신가요?
김영랑에 대한 앞선 포스팅 http://ppullan.tistory.com/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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