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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문과 해설/이상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해설<4>

by 뿔란 2021.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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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읽고 싶은 분은, 

2021.04.22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이상] -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 해설<1>, 제대로 읽자!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 해설<1>, 제대로 읽자!

날개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작품의 첫 문장이 이렇다. 박제는 죽은 동물의 겉 껍데기를 살아 있는 동물처럼 꾸며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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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는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한다.

 

 나는 하루 한 번도 세수를 하지 않는다.

 

 나는 밤중 세 시나 네 시쯤 해서 변소에 갔다.

 

 달이 밝은 밤에는 한참씩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가 들어오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18 가구의

아무와도 얼굴이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18 가구의 젊은 여인네 얼굴들

을 거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내 아내만 못하였다.

 

 열한 시쯤 해서 하는 아내의 첫번 세수는 좀 간단하다. 그러나 저녁 일곱 시쯤해서 하는 두번째

세수는 손이 많이 간다. 아내는 낮에 보다도 밤에 더 좋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낮에도

외출하고 밤에도 외출하였다.

 

 아내에게 직업이 있었던가?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만일 아내에게 직업이 없

었다면 같이 직업이 없는 나처럼 외출할 필요가 생기지 않을 것인데--- 아내는 외출한다. 외

뿐만 아니라 내객이 많다. 아내에게 내객이 많은 날은 나는 온종일 내 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

워 있어야만 된다.

 

아내의 직업은 무엇일까? 어쨌든 방에만 있는 서술자와 아내가 살아가는 걸 보면 어디선가 무언가 돈이 들어오는 일이 있는 것이다. 오전 11시쯤 느지막히 일어나 저녁 7시쯤 제대로 꾸미는 아내... 아내에게 내객(집으로 찾아온 손님)이 많은 날 '나'는 방에만 있어야 한다. 아내 방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내의 직업은 무엇일까? 

 

 

 불장난도 못한다. 화장품 냄새도 못 맡는다. 그런 날은 나는 의식적으로 우울해 하였다. 그러면

아내는 나에게 돈을 준다. 오십전짜리 은화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의식적으로 우울해 한다는 것은 일부러 우울해 한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우울해 하지 않아도 좋건만 일부러 더 우울해 하는 것이다. 왜?

아내가 나에게 돈을 주면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왜? 돈을 쓰지도 않으면서..... 아내의 관심? 아니면 그저 돈이니까? 

 

 

 그러나 그것을 무엇에 써야 옳을지 몰라서 늘 머리맡에 던져 두고 두고 한 것이 어느 결에 모여

서 꽤 많아졌다 어느날 이것을 본 아내는 금고처럼 생긴 벙어리를 사다 준다.

 

 나는 한푼씩 한푼씩 그 속에 넣고 열쇠는 아내가 가져갔다. 그후에도 나는 더러 은화를 그 벙어

리에 넣은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게을렀다. 얼마 후 아내의 머리쪽에 보지 못하던 누깔잠

이 하나 여드름처럼 돋았던 것은 바로 그 금고형 벙어리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증거일까. 그러

나 나는 드디어 머리맡에 놓았던 그 벙어리에 손을 대지 않고 말았다. 내 게으름은 그런 것에

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싫었다.

 

누깔잠 : 눈깔 비녀. 

 

 

 아내에게 내객이 있는 날은 이불 속으로 암만 깊이 들어가도 비오는 날만큼 잠이 잘 오지 않았

. 나는 그런 때 나에게 왜 늘 돈이 있나 왜 돈이 많은가를 연구했다. 내객들은 장지 저쪽에 내

가 있는 것을 모르나보다. 내 아내와 나도 좀 하기 어려운 농을 아주 서슴지 않고 쉽게 해 던지

는 것이다. 그러나 내 아내를 찾은 서너 사람의 내객들은 늘 비교적 점잖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 자정이 좀 지나면 으레 돌아들 갔다.

 

그들 가운데에는 퍽 교양이 얕은 자도 있는 듯싶었는데, 그런 자는 보통 음식을 사다 먹고 논다.

 

그래서 보충을 하고 대체로 무사하였다. 나는 우선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

하였으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는 이것을 알아내기 힘이 든다. 나는 끝끝내 내 아내의 직

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말려나보다.

 

장지 : 장지문. 종이를 바른 문.

전통 장지문

 

 

 아내는 늘 진솔 버선만 신었다. 아내는 밥도 지었다. 아내가 밥을 짓는 것을 나는 한번도 구경한

일은 없으나 언제든지 끼니때면 내 방으로 내 조석밥을 날라다 주는 것이다. 우리집에는 나와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밥은 분명 아내가 손수 지었음에 틀림없다.

 

진솔 버선 : 한 번도 신지 않은 새 버선.

조석밥 : 아침밥과 저녁밥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른 일은 없다. 나는 늘 웃방에서나 혼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밥은 너무 맛이 없었다. 반찬이 너무 엉성하였다. 나는 닭이나 강아지처럼 말없이 주는 모이를

넓적넓적 받아먹기는 했으나 내심 야속하게 생각한 적도 더러 없지 않다.

 

 나는 안색이 여지없이 창백해가면서 말라 들어갔다. 나날이 눈에 보이듯이 기운이 줄어들었다.

영 양 부족으로 하여 몸뚱이 곳곳의 뼈가 불쑥불쑥 내어 밀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수십 차를 돌

쳐 눕지 않고는 여기저기가 배겨서 나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이불 속에서 아내가 늘 흔히 쓸 수 있는 저 돈의 출처를 탐색해 내는 일

변 장지 틈으로 새어나오는 아랫방의 음성은 무엇일까를 간단히 연구하였다.

 

 나는 잠이 잘 안 왔다.

 

확실히 '나'는 제대로 된 남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내는 제대로 된 아내가 아니다. 새 버선은 한 번만 신고 버릴 만큼 사치스럽고 예쁘게 꾸미고 남편 식사는 엉망으로 대접하고 있다. 물론 남편도 제대로 된 남편은 아니다. 이 수상한 부부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가 그들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까? 우리가 그들의 정체성을 정의내리기엔 우리의 상식과 생각의 폭이 너무 좁은 걸까? 

 

 

 깨달았다. 아내가 쓰는 그 돈은 내게는 다만 실없는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까닭 모를 내객

들 이 놓고 가는 것이 틀림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왜 그들 내객은 돈을 놓고 가나? 왜 내 아내는 그 돈을 받아야 되나? 하는 예의 관념이

내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저 예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혹 무슨 댓가일까? 보수일까? 내 아 내

가 그들의 눈에는 동정을 받아야만 할 한 가엾은 인물로 보였던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노라면

으레 내 머리는 그냥 혼란하여 버리고 버리고 하였다. 잠들기 전에 획득했다는 결론이 오직 불

쾌하다는 것뿐이었으면서도 나는 그런 것을 아내에게 물어 보거나 한 일이 참 한 번도 없다.

것은 대체 귀찮기도 하려니와 한잠 자고 일어나는 나는 사뭇 딴 사람처럼 이것 도 저것도 다 깨

끗이 잊어버리고 그만 두는 까닭이다.

 

'나'는 아내가 웃음을 판다, 몸을 판다는 결론만큼은 용케 피해가고 있다. 누가봐도 당연한 그 결론을 피해가며 아내의 생활과 직업에 대해 끝없이 의문을 품고, 대답을 찾는다.

 

 

 내객들이 돌아가고, 혹 외출에서 돌아오고 하면 아내는 간편한 것으로 옷을 바꾸어 입고 내 방

으로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이불을 들치고 내 귀에는 영 생동생동한 몇 마디 말로 나를 위로하

려든 다. 나는 조소고소홍소도 아닌 옷음을 얼굴에 띠고 아내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본

. 아내는 방그레 웃는다. 그러나 그 얼굴에 떠도는 일말의 애수를 나는 놓치지 않는다.

 

조소 : 비웃음

고소 : 쓴웃음

홍소 : 떠들썩한 큰 웃음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웃는다. 아내는 아름답다. 아내의 얼굴에 떠도는 일말의 애수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 남편에 대한 동정? 이런 남편을 얻은 자기자신에 대한 연민? 사랑하지만 이런 기형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자신들과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세상에 대한 슬픔?

 

 

 아내는 능히 내가 배고파하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러나 아랫방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나에게

주려 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나를 존경하는 마음일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배가

고프면서도 적이 마음이 든든한 것을 좋아했다. 아내가 무엇이라고 지껄이고 갔는지 귀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다만 내 머리맡에 아내가 놓고 간 은화가 전등불에 흐릿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

.

 

아내는 정말 나를 존경하는 것일까? 아내가 무엇이라고 지껄이고 갔는지 왜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고 금고형 벙어리 속에 은화가 얼마만큼이나 모였을까? 나는 그러나 그것을 쳐들어 보지 않았

. 그저 아무런 의욕도 기원도 없이 그 단추구멍처럼 생긴 틈바구니로 은화를 떨어뜨려 둘 뿐

이었다.

 

 

 왜 아내의 내객들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이 풀 수 없는 의문인 것같이, 왜 아내는

나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도 역시 나에게는 똑같이 풀 수 없는 의문이었다.

 

 내 비록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 싫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고것이 내 손가락

닿는 순간에서부터 고 벙어리 주둥이에서 자취를 감추기까지의 하잘것 없는 짧은 촉각이 좋았달

뿐이지 그 이상 아무 기쁨도 없다.

 

 어느날 나는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넣어 버렸다. 그 때 벙어리 속에는 몇 푼이나 되는지 모르

겠으나 고 은화들이 꽤 들어 있었다.

 

 나는 내가 지구 위에 살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

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 허망하였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지구 위에서는 현기

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바삐 내려 버리고 싶었다.

 

'나'는 허망함을 느끼며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느낀다. 자살 충동을 '부지런한 지구 위에서 내리고 싶다'고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 그 이유는, 지구는 끝없이 넓은 공간을 아주 빠르게 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지구 위에 사는 것이 허망하다. 왜? '나'와 비슷한 이유로 절망해 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잘 나가는 세상에서 소외되었는데, 그 잘나가는 것조차가 의미 없는 일로 보일 때.... 그럴 때 이런 허망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이불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뒤에는 나는 고 은화를 고 벙어리에 넣고 넣고 하는 것조차 귀

찮아졌다. 나는 아내가 손수 벙어리를 사용하였으면 하고 생각하였다.

 

 벙어리도 돈도 사실은 아내에게만 필요한 것이지 내게는 애초부터 의미가 전연 없는 것이었으니

까 될 수만 있으면 그 벙어리를 아내는 아내 방으로 가져 갔으면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가져가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아내 방으로 가져다 둘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으나

그 즈음에는 아내의 내객이 워낙 많아서 내가 아내 방에 가 볼 기회가 도무지 없었다. 그래서 나

는 하는 수 없이 변소에 갖다 집어 넣어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아내의 꾸지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않았을 뿐 아니라 여전히 돈은 돈대로 머리맡에 놓고 가지 않나! 내 머리맡에는 어느덧 은화가

꽤 많이 모였다.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일종의 쾌감---

외의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나는 또 이불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

.

 쾌감이라면 어떤 종류의 쾌감일까를 계속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불 속의 연구로는

알 길이 없었다. 쾌감, 쾌감, 하고 나는 뜻밖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 흥미를 느꼈다.

 

 아내는 물론 나를 늘 감금하여 두다시피 하여 왔다. 내게 불평이 있을 리 없다. 그런 중에도 나

는 그 쾌감이라는 것의 유무를 체험하고 싶었다.

 

'아내는 물론 나를 늘 감금하여 두'는데, '나'는 불평이 없다. 불평이 있을 리가 없단다. 그저 역설적 표현인가? 반어인가? 감금을 기뻐하는 것인가?

 

'나'는 동전을 집어 벙어리에 넣는 것도 귀찮을 만큼 삶에 의욕이 없다. 아내는 그래도 계속 돈을 준다. 그것은 쾌감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성 접객원이 있는 호스트바의 단골, 주 고객은 업소녀, 그러니까 접객원으로 일하는 여성들이라고 한다. 남자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번 돈을 다시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는 남자에게 탕진하는 것은 쾌감때문이리라.

 그리고 우리는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도대체 어떤 쾌감인거지? 돈을 주는 것이 권력이나 재력의 과시라서,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건가? 다른 무엇이 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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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5 - [문학, 전문과 해설/이상] -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해설<5>

 

[제대로 읽자!] 이상, 날개, 전문해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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