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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전문

김유정, 심청

by 뿔란 202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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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청

                                                                               김유정

 

 거반 오정이나 바라보도록 요때기를 들쓰고 누웠던 그는 불현듯 몸을 일으켜가지고 대문 밖으로 나섰다. 매캐한 방구석에서 혼자 볶을 만치 볶다가 열병거지가 벌컥 오르면 종로로 튀어나오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그러나 종로가 항상 마음에 들어서 그가 거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버릇이 시키는 노릇이라 울분할 때면 마지못하여 건숭 싸다닐뿐 실상은 시끄럽고 더럽고 해서 아무 애착도 없었다. 말하자면 그의 심청이 별난 것이었다. 팔팔한 젊은 친구가 할일은 없고 그날그날을 번민으로만 지내곤 하니까 나중에는 배짱이 돌라앉고 따라 심청이 곱지 못하였다. 그는 자기의 불평을 남의 얼굴에다 침 뱉듯 뱉아 붙이기가 일쑤요 건뜻하면 남의 비위를 긁어놓기로 한 일을 삼는다. 그게 생각하면 좀 잗달으나 무된 그 생활에 있어서는 단 하나의 향락일는지도 모른다.

 

 그가 어실렁어실렁 종로로 나오니 그의 양식인 불평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연은 마음의 거울이다. 온체 심보가 이 뻔새고 보니 눈에 띄는 것마다 모다 아니꼽고 구역이 날 지경이다. 허나 무엇보다도 그의 비위를 상해

주는 건 첫째 거지였다.

 

 대도시를 건설한다는 명색으로 웅장한 건축이 날로 늘어가고 한편에서는 낡은 단층집을 수리조차 허락지 않는다. 서울의 면목을 위하야 얼른 개과천선하고 훌륭한 양옥이 되라는 말이었다. 게다 각 상점을 보라. 객들에게 미관을 주기 위하여 서로 시새워 별의별 짓을 다 해가며 어떠한 노력도 물질도 아끼지 않는 모양같다. 마는 기름때가 짜르르한 헌 누더기를 두르고 거지가 이런 상점 앞에 떡 버티고 서서 나리! 돈 한 푼 주 ─, 하고 어줍대는

그 꼴이라니 눈이 시도록 짜증 가관이다. 이것은 그 상점의 치수를 깎을뿐더러 서울이라는 큰 위신에도 손색이 적다 못할지라. 또는 신사 숙녀의 뒤를 따르며 ─ 시부렁거리는 깍쟁이의 행세 좀 보라. 좀 심한 놈이면 비단

걸이고 단장 보이고 닥치는 대로 그 까마귀발로 움켜잡고는 돈 안 낼 테냐고 제법 훅닥인다. 그런 봉변이라니 보는 눈이 다 붉어질 노릇이 아닌가!

 

 거지를 청결하라! 땅바닥의 쇠똥 말똥만 칠 게 아니라 문화생활의 장애물인 거지를 먼저 치우라. 천당으로 보내든, 산 채로 묶어 한강에 띄우든……

 

 머리가 아프도록 그는 이러한 생각을하며 허청허청 종로 한복판을 들어섰다. 입으로는 자기도 모를 소리를 괜스레 중얼거리며 ─

 

  “나리! 한 푼 줍쇼!”

 

 언제 어디서 빠졌는지 애송이 거지 한 마리(기실 강아지의 문벌이 조금 더 높으나 한 마리)가 그에게 바짝 붙으며 긴치 않게 조른다. 혓바닥을 길게 내뽑아 윗입술에 흘러내린 두 줄기의 노란 코를 연신 훔쳐가며, 조르자니

썩 바쁘다.

 

  “왜 이럽소, 나리! 한 푼 주세요.”

 

 그는 속으로 피익, 하고 선웃음이 터진다. 허기진 놈 보고 설렁탕을 사달라는게 옳겠지 자기보고 돈을 내랄 적엔 요놈은 거지 중에도 제일 액수 사나운 놈일 게다. 그는 들은 척 않고 그대로 늠름히 걸었다. 그러나 대답 한

번 없는 데 골딱지가 났는지 요놈은 기를 복복 쓰며 보채되 정말 돈을 달라는 겐지 혹은 같이 놀자는 겐지, 나리! 왜 이럽쇼, 왜 이럽쇼, 하고 사알살 약을 올려가며 따르니 이거 성이 가셔서라도 걸음 한 번 머무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고개만을 모로 돌려 거지를 흘겨보다가

 

  “이 꼴을 보아라!”

 

그리고 시선을 안으로 접어 꾀죄죄한 자기의 두루마기를 한번 쭈욱 훑어 보였다. 하니까 요놈은 속을 차렸는지 됨됨이 저렇고야, 하는 듯싶어 저도 좀 노려보더니 제출물에 떨어져 나간다.

 

 전찻길을 건너서 종각 앞으로 오니 졸지에 그는 두 다리가 멈칫하였다. 그가 행차하는 길에 다섯 간쯤 앞으로 열댓 살 될락말락한 한 깍쟁이가 벽에 기대여 앉았는데 까빡까빡 졸고 있는 것이다. 얼굴은 노란 게 말라빠진 노

루 가죽이 되고 화롯전에 눈 녹듯 개개풀린 눈매를 보니 필야 신병이 있는 데다가 얼마 굶기까지 하였으리라. 금시로 운명하는 듯싶었다. 거기다 네 살쯤 된 어린 거지는 시르죽은 고양이처럼, 큰 놈의 무릎 위로 기어오르며,

울 기운조차 없는지 입만 벙긋벙긋, 그리고 낯을 째푸리며 투정을 부린다.

 

 꼴을 봐한즉 아마 시골서 올라온 지도 불과 며칠 못 되는 모양이다.

 

 이걸 보고 그는 잔뜩 상이 흐렸다. 이 벌레들을 치워주지 않으면 그는 한 걸음도 더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문득 한 호기심이 그를 긴장시켰다. 저쪽을 바라보니 길을 치고 다니던 나리가 이쪽을 향하여 꺼불적꺼불적 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뜻밖의 나리였다. 고보 때에 같이 뛰고 같이 웃고 같이 즐기던 그리운 동무, 예수

를 믿지 않는 자기를 향하여 크리스천이 되도록 일상 권유하던 선량한 동무였다. 세월이란 무엔지 장래를 화려히 몽상하며 나는 장래 ‘톨스토이’가 되느니 ‘칸트’가 되느니 떠들며 껍적이던 그 일이 어제 같건만 자기는 끽

주체궂은 밥통이 되었고 동무는 나리로 ─ 그건 그렇고 하여튼 동무가 이 자리의 나리로 출세한 것만은 놀람과 아울러 아니 기쁠 수가 없었다.

 

 ‘오냐, 저게 오면 어떻게 나의 갈 길을 치워주겠지.’

 

 

 그는 멀찌가니 섰는 채 조바심을 태워가며 그 경과를 기다렸다. 딴은 그의 소원이 성취되기까지 시간은 단 일 분도 못 걸렸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았다.

 

  “아야야 으 ─ ㅇ, 응 갈 테야요.”

 

  “이 자식! 골목 안에 박혀 있으라니까 왜 또 나왔니, 기름강아지같이 뺀질뺀질한 망할 자식!”

 

  “아야야, 으 ─ 음, 응, 아야야, 갈 텐데 왜 이리 차세요, 으 ─ ㅇ, 으─ ㅇ.”

 

하며 기름강아지의 울음소리는 차츰차츰 멀리 들린다.

 

  “이 자식! 어서 가봐, 쑥 들어가 ─.”

 

하는 날벽력!

 

 소란하던 희극은 잠잠하였다. 그가 비로소 눈을 뜨니 어느덧 동무는 그의 앞에 맞닥뜨렸다. 이게 몇 해 만이란 듯 자못 반기며 동무는 허둥지둥 그 손을 잡아 흔든다.

 

  “아 이게 누구냐! 너 요새 뭐 하니?”

 

 그도 쾌활한 낯에 미소까지 보이며

 

  “참, 오래간만이로군!”

 

하다가

 

  “나야 늘 놀지, 그런데 요새두 예배당에 잘 다니나?”

 

  “음, 틈틈이 가지, 내 사무란 그저 늘 바쁘니까……”

 

  “대관절 고마워이, 보기 추한 거지를 쫓아주어서. 나는 웬일인지 종로 깍쟁이라면 이가 북북 갈리는걸!”

 

  “천만에, 그야 내 직책으로 하는 걸 고마울 거야 있나.”

 

하며 동무는 거나하여 흥 있게 웃는다.

 

 이 웃음을 보자 돌연히 그는 점잖게 몸을 가지며

 

  “오, 주여! 당신의 사도 ‘베드로’를 내리사 거지를 치워주시니 너무나 감사하나이다.”

 

하고 나직이 기도를 하고 난 뒤에 감사와 우정이 넘치는 탐탁한 작별을 동무에게 남겨놓았다.

 

 자기가 ‘베드로’의 영예에서 치사를 받은 것이 동무는 무척 신이 나서 으쓱이는 어깨로 바람을 치올리며 그와 반대쪽으로 걸어간다.

 

 때는 화창한 봄날이었다. 전신줄에서 물찌똥을 내려깔기며

 

  “비리구 배리구.”

 

지저귀는 제비의 노래는 그 무슨 곡조인지 하나도 알려는 사람이 없었다.

 

 

{김유정의 첫작품으로 1932년에 탈고 후 1936년에 조선중일일보서 발간 『중앙』지에 발표}

 

김유정 / 퍼블릭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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