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
1
안협집이 부엌으로 물을 길어 가지고 들어오매 쇠죽을 쑤던 삼돌이란 머슴놈이 부지깽이로 불을 헤치면서,
『어젯밤에는 어디 갔었읍던교?』
하며 불밤송이 같은 머리에 외수건을 질끈 동여 뒤통수에 슬쩍 질러 맨 머리를 번쩍 들어 안협집을 훑어본다.
『남 어데 가고 안 가고, 임자가 알아 무엇할 게요?』
안협집은 별 꼴사나운 소리를 듣는다는 듯이 암상스러운 눈을 흘겨보며 툭 쏴 버린다.
조금이라도 염량이 있는 사람 같으면 얼굴빛이라도 변하였을 것 같으나 본시 계집의 궁둥이라면 염치없이 추근추근 쫓아다니며 음흉한 술책을 부리는 삼십이나 가까이 된 노총각 삼돌이는 도리어 비웃는 듯한 웃음을 웃으면서,
『그리 성낼 거야 뭐 있읍나? 어젯밤 안주인 심부름으로 임자 집을 갔으니깐두루 말이지』
하고 털벗은 송충이 모양으로 군데군데 꺼칫꺼칫하게 난 수염을 숯검정 묻은 손가락으로 두어 번 쓰다듬었다.
『어젯밤에도 김 참봉 아들에 사랑방에서 자고 왔읍네그려.』
삼돌이는 싱긋 웃는 가운데에도 남의 약점(弱點)을 쥔 비겁한 즐거움이 나타났다.
「무엇이 어쩌고 어째, 이 망나니 같은 놈…」
하는 말이 입 바깥까지 나왔던 안협집은 꿀꺽 다시 집어삼키면서,
『남 어데 가 자든 말든 상관할 것이 무엇인고』
하며 물동이를 이고서 다시 나가려 하니까,
『흥 두구 보소, 가만 있을 줄 알았다가는…』
『듣기 싫어! 별 꼬락서니를 다 보겠네.』
2
강원도 철원(鐵原) 용담(龍潭)이라는 곳에 김삼보(金三甫)라는 자가 있으니, 나이는 삼십 오륙 세나 되었고 키는 작달막하며, 목은 다가붙고 얼굴빛은 노르께하며, 언제든지 가죽창 받은 미투리에 대갈편자를 박아 신고 걸음을 걸을적마다 엉덩이를 내저으므로 동리에서는 그를 「땅딸보 김삼보」 「아편장이 김삼보」 「오리 궁덩이 김삼보」라고 부르는데, 한 달에 자기집에 붙어 있는 날이 이틀이라면 꽤 오래 있는 셈이요, 하루라면 예사라.
그리고는 언제든지 나돌아 다니므로 몇 해 전까지도 잘 알지 못하였으나 차차 동리서 소문이 돌기를 「노름꾼 김삼보」라는 말이 퍼졌는데, 알아본즉딴은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접경을 넘어 다니는 골패, 투전으로 먹고 지내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 노름꾼 김삼보의 여편네가 아까 말하던 안협집이니, 안협(安峽)은 즉, 강원, 평안, 황해, 삼도 품에 있는 고읍(古邑)의 이름이다. 그 안협집을 김삼보가 얻어 오기는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안협집이 스물한 살 되던 해인데, 어떻게 해서 얻었는지 자세히는 알지 못하나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술 파는 것을 눈을 맞추어서 얻었다고 하기도 하고 계집이 김삼보에게 반해서 따라왔다기도 하고, 또는 그런 것 저런 것도 아니라 계집의 전남편과 노름을 해서 빼앗았다고는 하는데, 위인된 품으로 보아서 맨나중 말이 가장 유력할 것 같다고 동리 사람들이 말을 한다.
처음에 안협집이 동리에 오자, 그 동리 그 또래 계집들은 모두 석경(石鏡)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안협집이 비록 몸은 그리 귀하게 태어나지 못하였으나 인물이 남달리 고운 점이 있어 동리 젊은 것들이 암연히 부러워도 하고 질투도 하게 되고 또는 석경 속에 비친 자기네들의 어여쁘지 못한 얼굴을 쥐어뜯고 싶기도 하였으니, 지금까지 「나만한 얼굴이면」 하는 자만심이 있던 젊은 계집들에게 가엾게도 자가결함(自家缺陷)이 폭로되는 환멸을 느끼게 하기까지도 하였다.
그러나 촌구석에서 아무렇게나 자란 데다가 먼저 안 것이 돈이었다. 「돈만 있으면 서방도 있고, 먹을 것 입을 것이 다 있지」 하는 굳은 신조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는 무엇이든지 제공하여 부끄러운 것이 없었다. 십 오륙 세 적, 참외 한 개에 원두막 속에서 총각 녀석들에게 정조를 빌린 것이나, 벼 몇 섬, 돈 몇 원, 저고릿감 한 벌에 그것을 빌리는 것이 분량과
방법이 조금 높아졌을 뿐이요 그 관념은 동일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으로 온 뒤에는 동리에서 돈푼이나 있고 얌전한 젊은 사람은 거의 다 한 번씩은 후려내었으니 그것은 남자 편에서 실없는 짓 좋아하는 이에게 먼저 죄가 있다 하는 것보다도 이쪽 안협집에게 그 책임이 더 있다고 할 수 있고, 또 그것보다 더 큰 죄는 그 남편 되는 노름꾼 김삼보에게 있다고 할 수가 있으니, 그것은 남편 노름꾼이 한 달에 한 번을 올까말까 하면서도 올 적에는 빈손을 들고 오는 때가 많으니 젊은 계집 혼자 지낼 수가 없으매 자연히 이집 저집 동리로 다니며 품방아도 찧어 주고 김도 매 주고 진일도 하여 주며 얻어먹다가, 한 번은 어떤 집 서방님에게 실없는 짓을 당하고 나서 쌀말과 피륙 두 필을 받아 보니 그것처럼 좋은 벌이가 없어 차츰차츰 이번에는 자기가 스스로 벌이를 시작하여 마치 장사하는 사람이 거래 단골을 트듯이 이 사람 저 사람을 집어먹기 시작하더니. 그것도 차차 눈이 높아지니까 웬만한 목돗군 패장이나 장돌림, 조금 올라서서 순사 나리쯤은 눈도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고, 적어도 그곳에서는 돈푼도 상당하고 여간해서 손아귀에 들지 않는다는 자들을 얼러 보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부터는 일하지 않고 지내며 모양내고 거드름부리고 다니는데, 자기 남편이 오면은,
『이번에는 얼마나 땄읍노?』
하고 포르께한 눈을 사르르 내리뜬다.
『딴 게 뭔가. 밑천까지 올렸네.』
삼보는 목 뒤를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신다. 그러면 안협집은 전에 없던 바가지를 긁고,
『불알 두 쪽을 달구서 그래 계집만두 못하다는 말요?』
하고서, 할말 못 할말을 불어서 풀을 잔뜩 죽여 놓은 뒤에는, 혹시 서방이 알면은 경이 내릴까 하여 노자랑 밑천푼을 주어서 배송을 낸다. 그러면 울며 겨자먹기로 삼보는 혼자 한숨을 쉬면서,
『허허, 실상 지금 세상에는 섣부른 불알보다는 계집편이 훨씬 나니라』
하고 봇짐을 짊어지고 가 버린다.
3
이렇게 이삼 년을 지내고 난 어떤 가을에 삼돌이란 놈이 그 뒷집 머슴으로 왔는데, 놈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벌어먹던 놈인지는 모르나 논맬 때 콧소리나마 아리랑 타령마디나 똑똑히 하고 술잔이나 먹을 줄 알며 동료를 가운데 나서면 제법 구변이나 있는 듯이 떠들어 젖히는 것이 그럴 듯하고, 게다가 힘이 세어서 송아지 한 마리 옆에 끼고 개천 뛰기는 밥먹듯하는 까닭에 동리에서는 호랑이 삼돌이로 이름이 높다.
놈이 음침하여, 오던 때부터 동리 계집으로 반반한 것은 남 모르게 모두 건드려 보았으나 안협집 하나가 내내 말을 듣지 않으므로 추근추근 귀찮게 구는데, 마침 여름이 되어 자기 집 주인마누라가 누에를 놓고 혼자서 힘이 드니까 안협집을 불러서 같이 누에를 길러 실을 낳거든 반분(半分)하자는 약속을 한후 여름내 같이 누에를 치게 된 것을 알고 어떤 틈 기회만 기다리며,
『흥, 계집년이 배때가 벗어서 말쑥한 서방님만 어르더라. 어디 두고 보자. 너도 짹소리 못하고 한 번 당해야 할 걸! 건방진 년!』
하고는 술잔이나 취하면 주먹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그러자 주인마누라가 치는 누에가 거의 오르게 되자 뽕이 떨어졌다. 자기집 울타리에 심은 뽕은 어림도 없이 다 따다 먹이었고, 그 후에는 삼돌이란 놈을 시켜서 날마다 십 리나 되는 건넛말 일갓집 뽕을 얻어다 먹이었으나 그것도 이제는 발가숭이가 되게 되었다.
인제는 뽕을 사다 먹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다가 먹이자면 돈이 든다.
주인노파는 담뱃대를 물고서 생각하여 보았다.
「개량 뽕이 좋기는 좋지마는 돈을 여간 받아야지. 그리고 일일이 사서 먹이랴다가는 뽕값으로 다 집어먹고 남은 것이 어디 있나.」
노파 생각에는 돈 한푼 안 들이고 공짜로 누에를 땄으면 좋을 것이다. 돈 한푼을 들인다 하면 그 한푼이 전 수확에서 나오는 이익의 전부같이 생각되어 못견뎠다. 그뿐 아니다. 자기 혼자 이익을 먹는 것 같으면 모르거니와 안협집 하고 동사로 하는 것이므로 안협집이 비록 뼈가 부러지도록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힘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 한푼만 못해 보인다.
그래서 뽕을 어떻게 공짜로 돈 안 들이고 얻어 올 궁리를 하고 있다가 안협집이 마침 마당으로 들어서매,
『뽕 때문에 일났구려』
하며 안협집에게는 무슨 도리가 없느냐고 물어 보았다.
『글쎄.』
안협집 생각은 주인의 마음과 또 달라서 남의 주머닛돈 백 냥이 내 주머닛돈 한 냥만 못하다. 그래서 「돈 주면 살 걸」 하는 듯이 심상하게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 봐야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때 들에 나갔던 삼돌이란 놈이 툭 튀어들어오다가 이 소리를 듣더니 제딴은 동정하는 표정으로,
『그것 일났, 일났쇠다. 어떻게 하나…』
한참 허리를 짚고 생각을 해보더니,
『헝! 참 그 뽕은 좋더라마는…똑 되기를 미선조각 같이 된 놈이 기름이 지르를 흐르는데 그놈을 먹이기만 하면 고치가 차돌같이 여물 거야!』
들으라는 말인지 혼잣말인지는 모르나 한 마디를 탁 던지고 말이 없다. 귀가 반짝 띈 주인은,
『어디 그런 것이 있단 말이냐?』
하며 궁금증 난 사람처럼 묻는다.
『네, 저 새 술막에 있는 뽕밭에 있는 것 말씀이요.』
혹시 좋은 수나 있을까 하다가 남의 뽕밭, 더구나 그것으로 살아가는 양잠소 뽕밭이라, 말씨름만 하는 것이 될 것 같으므로,
『응! 나도 보았지. 그게 그렇게 잘되었나! 잘되었겠지. 그렇지만 그런 것이야 짐으로 있으면 무엇 하니?』
『언제 보셨어요?』
『보기야 여러번 보았지. 올봄에 두릅 따러 갔다도 보고…』
삼돌이란 놈이 한참 있다가 싱긋 웃더니 은근하게,
『쥔마님! 제가 뽕을 한 짐 져다 드릴 것이니 탁주 많이 먹이시럅니까?』
듣던 중에도 그렇게 반가운 소리가 또 어디 있으랴.
『작히 좋으랴. 따 오기만 하면 탁주에다 젓이라도 담그마.』
귀찮스런 삼돌이도 이런 때는 쓸 만하다는 듯이 안협집도 환심 얻으려는 듯한 웃음을 웃으며 삼돌이를 보았다. 삼돌이는 사내자식의 솜씨를 네 앞에 보여주리라는 듯이 기운이 나며 만족하였다.
그날 밤 저녁을 먹고 자정 때나 되었을 때, 삼돌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문밖으로 나갔다. 한 두어 시간만에 무엇인지 지고 오더니 그것을 뒤꼍 건넌방 뒤 창밑에 뭉뚱그려 놓았다.
이튿날 보니까 딴은 미선쪽 같은 기름이 흐르는 뽕잎이었다.
『어디서 났을꼬?』
주인하고 안협집은 수군수군하였다.
『그 녀석이 밤에 도둑질을 해온 게지? 뽕은 참 좋소, 그렇지?』
『참 좋쇠다. 날마다 이만큼씩만 가져오면 넉넉히 먹이겠쇠다.』
두 사람은 뽕을 또 따오지 않을까 보아서 아무 말도 아니하고,
『참 뽕 좋더라. 오늘도 좀 또 따오렴』
하고 충동인다. 놈은 두 손을 내저으며,
『쉬, 떠드시지 맙쇼. 큰일나죠. 그것이 그렇게 쉬워서야 그 노릇만 하게요. 까닥하다가는 다리 마디가 두 동강이 날 걸요.』
도적해 온 삼돌이나 받아들인 두 사람이나 도둑질 왜 했소! 하는 말은 없으나 서로 알고 있다.
그러자 하루는 주인이 안협집더러,
『여보, 이번에는 임자가 하룻저녁가 보구료. 앞으로 그놈이 혹시 못 가게 되더라도 임자가 대신 갈 수 있지 않수. 또 고삐가 길면은 밟힌다구 무슨 일이 있을는지 모르니 임자와 둘이 가서 한목 많이 따 오는 것이 좋지 않수.』
안협집이 삼돌이를 꺼리는 줄 알지마는 제 욕심에 입맛이 달아서 자꾸자꾸 충동인다.
『따다가 잡히면 어찌하구유.』
『무얼! 밤중에 누가 알우? 그리고 혼자 가라오? 삼돌이란 놈하고 가랬지.』
『글쎄. 운이 글러서 잡히거나 하면 욕이지요.』
잡히는 것보다도 안합집의 걱정은 삼돌이란 녀석하고 밤중에 무인지경에를 같이 가다니 그것이 딱한 일이다.
안협집이 정조가 헤프기로 유명한 만큼 또 매몰스럽기도 유명하여 한 번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죽어도 막무가내다.
그것은 만냥금을 주어도 거들떠보지도 아니한다. 그런데 삼돌이가 그 중에 하나를 참례하여 간장을 태우는 모양이다.
안협집은 생각하고 생각하여 결심해 버렸다.
「빌어먹을 자식이 그따위 맘을 먹거든 저 죽이고 나 죽지. 내 기운은 없어도…」
하고 찰찰하게 눈을 가로 뜨고 맘을 다잡아 먹었다. 그리고는 뽕을 따러 가기로 하였다.
삼돌이는 어깨에서 춤이 저절로 추어진다.
「얘, 이것이 정말인가, 거짓말인가. 인제는 때가 왔구나. 인제는 제가 꼭 당했지.」
놈이 신이 나서 저녁 먹은 다음, 마당 쓸고, 소 여물 주고, 돼지, 병아리 새끼 다 몰아넣고, 앞뒤로 돌아다니며 씻은 듯 부신 듯 다해 놓고, 목물하고, 발씻고, 등거리 잠방이까지 갈아입은 후 곰방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 듬뿍 한 모금 빨아 휘이 내뿜으며 시간 오기만 기다린다.
4
안협집은 보자기를 가지고 삼돌이를 따라서 뽕밭을 향하여 간다. 날이 유달리 깜깜하여 앞에 개천까지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돌부리가 발부리를 건드리면 안협집은 에구 소리를 내며 천방지축으로 다리도 건너고 논이랑도 지나고 하여 절반쯤 왔다.
삼돌이란 놈은 속으로 궁리를 하였다.
「뽕을 따기 전에 논이랑으로 끌고 가? 아니지, 그러다가는 뽕두 못 따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하게! 저도 열녀가 아닌 다음에 당하고 나면 할 말 없지. 아주 그런 버릇이 없는 년 같으면 모르거니와. 옳지, 수가 있어. 뽕을 잔뜩 따서 이어 주면 제가 항우의 딸년이라도 한 번은 중간에서 쉬릿다. 그러거든…」
이렇게 궁리를 하다가 너무 말이 없으니까 심심파적도 될 겸, 또는 실없는 농담도 해서 마음을 떠보아 나중 성사의 전제도 만들어 놀 겸 공연히 쓸데 없는 말을 지껄인다.
『삼보는 언제나 온답디까?』
『몰라. 언제는 온다 간단 말 있어 다니나.』
『그래 영감은 매일 나돌아 다니니 혼자 지내기 쓸쓸치도 않소?』
놈이 모르는 것 같이 새삼스럽게 시치미를 뗀다.
『별 걱정 다 하네, 어서 앞서 가. 난 길이 서툴러 못 가겠으니…』
『매우 쌀쌀하구료. 나는 임자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지만 김참봉 아들이란 쇠귀신 같은 놈이라 아무리 다녀도 잇속 없읍네. 내 말이 그르지 않지.』
안협집은 삼돌이가 아주 터놓고 말을 하는 것을 듣자 분해서 뺨이라도 치고 싶었으나 그대로 참으며,
『무엇이 어째? 말이라면 다 하는 줄 아는군!』
하고 뒤로 조금 떨어져 걸어갈 제, 전에도 그 녀석이 미웠지마는 남의 약점을 들어 가지고 제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더 더러웠다.
뽕밭에 왔다. 삼돌이란 놈이 철망으로 울타리 한 것을 들어 주어 안협집이 먼저 들어가고 나중으로 삼돌이란 놈은 그 무서운 다리를 성큼하여 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다가 발 아래 삭정이 가지를 밟아서 우지끈 소리가 나고 조용하였다.
삼돌이는 손에 익어서 서슴지 않고 따지마는 안협집은 익지도 못한 데다가 마음이 떨리고 손이 떨려서 마음대로 안 된다.
삼돌이는 뽕을 따면서도 아따가 안협집을 꾈 궁리를 하지마는 안협집은 이것 저것을 잊어버리고 손에 닥치는 대로 뽕을 땄다. 얼마쯤 땄다. 갑자기 안협집의 뒤에서,
『누구야!』
하고 범 같은 소리를 지르는 남자 소리가 안협집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삼돌이란 놈은 길이나 되는 철망을 어느 결에 뛰어 넘었는지 십여 간통이나 달아나서 안협집을 불렀다.
『어서 와요. 어서, 어서.』
그러나 안협집은 다리가 떨려서 빨리 나와지지를 않는다.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하여 달아나려고 한 아름 잔뜩 땄던 뽕을 내던지고 철망으로 기어 왔다. 철망을 기어 나오기는 나왔으나 치맛자락이 걸려서 잡아당긴다. 거기에 더 질겁을 해서 그대로 쭉 찢고 나오려 할 때, 때는 이미 늦었다. 뽕 지키던 남자는 안협집을 잡았다.
『이 도독년! 남의 뽕을 네것같이 따 가? 온 참, 이년! 며칠째냐, 벌써? 이렇게 남의 것이라고 건깡깡이로 먹으면 체하지 않을 줄 알았더냐! 저리 가자.』
안협집은,
『살려 주소. 제발 잘못했으니 살려만 주소. 나는 오늘이 처음이요. 저 삼돌이란 놈이 날마다 따 갔지 나는 죄가 없쇠다』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듣기 싫어, 이년아! 무슨 변명이냐. 육시를 하고도 남을 년 같으니. 왜 감옥소의 콩밥이 고소하더냐?』
『그저 잘못했읍니다.』
삼돌이는 보이지 않고 뽕지기는 안협집 손목을 끌고 뽕밭으로 들어갔다.
『이리 와! 외양도 반반히 생긴 년이 무엇이 할 게 없어 뽕서리를 다녀』
하더니 성냥불을 그어대고 안협집을 들여다보더니,
『흥!』
의미 있는 웃음을 웃어 보였다.
안협집은 이 웃음에 한 가닥 희망을 얻었다. 그 웃음은 안협집의 손아귀에 자기를 갖다 쥐어 준다는 웃음이다. 안협집은 따라서 방싯 웃었다. 그 웃음 한번이 넉넉히 뽕지기의 마음을 반 이상이나 흰죽 풀어지게 하였다. 안협집은 끌려갔다. 「제가 철석 같은 간장을 가진 놈이 아닌 바에…한 번이면 놓아 줄 걸.」 그는 자기의 정조를 팔아서 자기의 죄를 면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는 마지못한 체하고 끌려갔다.
삼돌이란 놈은 멀리서 정경만 살피다가 안협집을 뽕지기가 데리고 가는 것을 보더니 두 눈에서 쌍심지가 돋았다.
「얘, 이놈이 호랑이 삼돌이를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대관절 어떻게 할 셈이냐? 이놈 안협집만 건드려 보아라. 정강마루를 두 토막에다 내놀 테니. 오늘밤에는 내것이던 걸 그랬지. 어디 좀 가까이 좀 가 볼까?」
이제는 단판씨름이라 주먹이 시비판단을 하는 때이다. 다시 철망을 넘어서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이곳 저곳 귀를 기울이며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돌아다녀 보았다.
저쪽에서 인기척이 웅얼웅얼하더니 아무 말이 없다. 한 두서너 시간 그 넓은 뽕밭을 헤매고, 또 거기 닿은 과목밭, 채마전, 나중에는 그 옆 원두막까지가 보았다. 놈이 뽕나무밭 가운데 부풀덤불을 보지 못한 까닭이다. 그는 입맛만 다시면서 집으로 와서 주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노파의 눈이 등잔만해 지더니 두 손 두 다리가 사시나무 떨 듯했다.
『어거 일 났구나. 어쩌면 좋단 말이냐?』
좌불안석을 할 제 삼돌이란 녀석은 분한 생각에 곰방대만 똑똑 떨고 앉았다.
5
그날 새벽에 안협집은 무사히 왔다. 머리에 지푸라기가 묻고 몸매무새가 말이 아니다.
『에그, 어떻게 왔어! 응?』
주인은 눈에 눈물이 괴어서 어루만진다.
『무얼 어떻게 와요? 밤새도록 놈하고 승강이를 하다가 그대로 왔지.』
『그대로 놓아 주던가?』
『놓아 주지 않고 붙잡아 두면 어찌헐 테야!』
일이 너무 싱겁다. 삼돌이란 놈만 혼잣말처럼,
『내가 잡혔더면 콩밥을 먹었을 걸. 여편네니까 무사했지.』
주인은 그래도 미진해서,
『그래, 잘 놓아 주었으니 다행이지. 그러나저러나 뽕은 어떻게 되었노?』
『아! 뺏겼죠!』
『인제는 아무 일 없겠소?』
『일이 무슨 일예요.』
그날 밤에 삼돌이란 놈은 혼자 앉아서 생각하기를,
「복 없는 놈은 하는 수가 없거든. 그러나 내가 다 눈치를 채었으니까, 노름꾼놈이 오거든 이르겠다고 위협을 하면 그년도 발이 저려서 그대로는 못 있지. 내 입을 안 씻기고 될 줄 아는 게로구먼.」
그로부터는 삼돌이란 놈이 안협집을 보고는,
『뽕지기놈을 보고 싶지 않습나?』
하고 오며가며 맞대놓고 빈정대기도 하고 빗대놓고도 비웃는다.
『뽕이나 또 따러 가소.』
이러는 바람에 온 동리에서 다 알았다. 안협집은 분해서 죽겠는데, 하루는 삼돌이란 놈이 막 안협집이 이불을 펴고 누우려는데 찾아와서 추근추근 가지도 않고,
『삼보 김서방이 올 때도 되었읍네그려』
하며 눈치를 본다. 안협집은 졸음이 와서 눈까풀이 뻣뻣하여 오는데 삼돌이란 놈이 가지도 않는 것이 귀찮아서,
『누가 아누.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겠지』
하고 담벼락에 비스듬히 기대앉는다.
삼돌이의 눈에는 그 고단해 하면서 비스듬히 누워서 눈을 감을락말락한 안협집이 목덜미 살쩍 밑이며 불그레한 두 볼이 몹시 정욕을 일으켰다.
그래서 차츰차츰 말소리가 음흉해 간다.
『임자는 사람을 너무 가려 봅디다! 그러지 마슈. 나도 지금은 남의 집 머슴이지마는 집안 지체라든지, 젊었을 적에는 그래도 행세하는 집에서 났더라우. 지금은 그놈의 원수스런 돈 때문에 이렇게 되었지마는…』
하고 말을 건네려 하는데 안협집은 별시러베자식 다 보겠다는 듯이 대답이 없다.
『자! 그럴 것 있소. 내 청을 한 번 들어 주소그려』
하고 바싹 달려드는 바람에 반쯤 감았던 안협집의 눈은 똥그래지며 어느 곁에 삼돌의 뺨에 손뼉이 올라가 정월에 떡치듯 철썩한다.
『이놈! 아무리 쌍녀석이기로 이게 무슨 버르장머리냐. 냉큼 나가거라』
하고 호령이 추상 같다. 삼돌이란 놈은 따귀를 비비면서 성이 꼭두까지 일어나서,
『무엇이 어쩌고 어째. 휫! 어디 또 한 번 때려 봐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자기가 하려던 것은 이루고마는 것이 상책이다. 이래도 소문은 날 것이요 저래도 소문은 날 것이니 이왕이면 만족이나 채우고 소문이 나더라도 나는 것이 자기에게는 이로울 것 같았다.
더구나 안협집으로 말을 하면, 온 동리에서 판 박아 놓은 화냥년이니 한 번 화냥년이나 두 번 화냥년이나 남이나 내나 무엇이 다를 것이 있으랴 하는 생각이 났다.
도리어 자기의 만족을 한 번 얻는 것이 사내자식으로서 일종의 자랑인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는 두 팔로 안협집을 힘껏 끌어안고,
『내가 호랑이 삼돌이다! 네가 만일 내 말을 들으면 무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두지는 않을 테야! 너 네 남편이 오기만 하면 모조리 꼬아바칠 테야! 뽕 따러 갔던 날 일까지 모조리!』
무식한 놈이라 야비한 곳이 있다. 안협집은 그 소리가 얼마나 사내답지 못 하였는지 알 수 없었다. 쇠 같은 팔이 자기 허리를 누를 때 눈을 감고 한 번만 허락할까 하려다가 그 말을 듣고서 그만 침을 얼굴에 뱉았다.
『이 더러운 녀석! 네가 그까짓 것으로 나를 위협한다고 말을 들을 줄 아니?』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삼돌이는 손으로 안협집 입을 막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마치 마을을 다녀오던 이장의 동생이 이 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다. 삼돌이란 놈은 무안해서 얼굴이 붉어지며 안협집을 놓았다. 안협집은 분해서 색색거리며,
『저놈 보시소. 아닌 밤중에 혼자 자는 데 와서 귀찮게 굽니다. 저 죽일 놈이요. 좀 끌어내다 중치를 좀 해 주시오.』
이장의 동생은 안협집의 행실을 아는 고로 삼돌이만 보내려고,
『이놈이 할 일이 없거든 자빠져 자기나 하지, 왜 아닌 밤중에 남의 계집의 방에서 지랄야? 냉큼 네 집으로 가거라!』
두 눈이 등잔만하여진다.
『네, 그런 게 아니라 실없이 기롱을 좀 했삽더니…』
『듣기 싫어. 공연히 어름어름하면서. 이놈아! 너는 사람을 죽여도 기롱으로 아느냐?』
삼돌이는 쫓겨났다. 이장의 동생은 포달을 부리며 푸념을 하는 안협집을향하여,
『젊은 것이 늦도록 사내녀석들을 방에다 붙이니까 그런 꼴을 당하지.』
『누가요?』
『그만둬. 어서 잠이나 자.』
하며 문을 닫아 주고 가 버렸다.
6
삼돌이는 앙심을 먹었다. 안협집을 어떻게 해서는지 한 번 곯리리라는 생각이 가슴속에 탱중하였다. 안협집은 독이 났다. 삼돌이란 놈 분풀이를 하려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올라왔다.
이튿날 동리에 소문이 났다.
『삼돌이란 놈이 뺨을 맞았다지! 녀석이 음침하니까!』
『그렇지만 계집년이 단정하면 감히 그런 맘을 먹을라구!』
『그렇구말구! 제 행실야 판에 박은 행실이니까.』
『지가 먼저 꼬리를 쳤던 게지.』
이 소리가 바람에 떠 들어오자 안협집은 분했다. 요조숙녀보다도 빙설(氷雪)같은 여자인데 이런 누추한 소문을 듣는 것 같았다. 맘에 드는 서방질은 부정한 일이 아니요, 죄가 아니요, 모욕이 아니나, 맘에 없는 놈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당하는 것은 무서운 모욕 같았다.
그는 그 길로 삼돌이 주인 마누라에게로 갔다.
『삼돌이란 녀석을 내쫓으소.』
주인은 벌써 알아채었으나 안협집 편은 안 들었다. 다만 어루만지는 수작으로,
『무얼 내쫓을 것까지 있소. 그만 일에… 그저 눈감아 두지.』
『왜 눈을 감는단 말이요?』
주인은 속으로 웃었다. 「소 한 필을 달라면 줄지언정 삼돌이를 내놔?」하였다.
『내쫓아선 무얼 하우, 또?』
「어림없는 년! 네가 떠들면 떠들수록 네 밑구멍 들춰서 남 보이는 것이다」
는 듯이 쳐다보며 맨 나중으로 아주 잘라 말을 해 버렸다.
『나는 못 내보내겠소.』
안협집은 분해서 집에 와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었다.
그리고 또 결심했다.
「두고 봐라. 너희들까지 삼돌이를 싸고 도니! 영감만 와 봐라.」
하루는, 딴은 영감이 왔다. 안협집은 곤두박질을 하면서 맞았다.
『에그, 어서 오슈.』
노름꾼 김삼보는 눈이 뚱그래졌다. 무슨 큰 좋은 일이나 생긴 것 같았다. 다른 때와 유달리 반가와하는 것이 의심스럽고 이상하였다. 방에 들어앉자마자 얼마나 땄느냐는 말도 물어 보지 않고 삼돌이란 놈에게 욕당할 뻔하였다는 말을 넋두리하듯 이야기하였다.
『사람이 분해서 죽겠구료. 이것도 모두 영감 잘못둔 탓이야. 오죽 영감이 위엄이 없어 보이면 그따위 녀석이 그런 짓을 하려고…영감이라고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지, 일 년 열 두 달 계집이 죽거나 살거나 내버려두고 돌아만 다니니까.』
영감은 픽 웃었다.
『왜 내 잘못인가? 오죽 행실을 잘 가지면 그따위 녀석에게 그 꼴을 당한담.』
김삼보는 분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계집의 소행을 짐작도 하려니와 그놈의 주먹도 아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계집이 먹여 살리라는 말이 없고 이혼하자는 말만 없는 것이 다행해서 서방질을 해도 눈을 감아 주고 무슨 짓을 하든지 그저 코대답만 하여 주던 터이라 그런 소리가 귓전으로 들릴 뿐이다.
『내가 행실 잘못 가진 게 무어요?』
안협집은 분풀이라도 하여 줄 줄 알았더니 도리어 타박을 주므로 분한 데 악이 났다.
『글쎄 무어야! 무엇? 어디 대 봐요. 임자가 내 행실 그른 것을 보았소? 어디 보았거든 본 대로 말을 하시우.』
딴은, 김삼보는 집에서 말할 것이 없었다. 그는 그저 그런 눈치만 채었지 반박할 증거는 잡은 것이 없다.
『본 거나 다름없지.』
『무엇이 본 거나 다름없어? 일 년 열 두 달 계집이 죽거나 살거나 내버려 두었다가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것밖에 없어? 살기가 싫거든 그대로 살기 싫다고 그래, 사내답게. 왜 그만 냄새가 나지? 또 어디다가 계집을 얻어논 게지.』
『이년이 뒈지지를 못해서 기를 쓰나?』
『그렇다, 이놈아! 네까짓 녀석 아니면 서방 없을까봐 그러니, 더러운 녀석!』
김삼보의 주먹은 안협집의 등줄기를 우렸다.
『이년, 그래도 잔소리야. 주둥이 좀 덮치지 못하겠니...』
이렇게 서로 툭탁거리며 싸우는 판에 뒷집에서 삼돌이란 놈이 이 소리를 듣고서 가장 긴한 체하고 달려왔다.
『삼보 김서방 언제 오셨소?』
하고 마당에 들어섰다. 김삼보는 그놈의 상판을 보자 참았던 분이 꼭두까지 올라온다. 삼돌이는 제법 웃음을 띠고,
『허허, 오래간만에 만났대서 내외분 싸움이 웬일이시우?』
어디서 한 잔을 하였는지 얼굴이 불콰하다.
김삼보는 눈을 홀겨 뚫어지도록 삼돌이를 쳐다보았다.
『이놈아! 남이사 내외 싸움을 하든 말든 참견이 무어야?』
삼돌이란 놈은 주춤하였다. 그는 비지 같은 눈꼽이 낀 눈을 꿈벅꿈벅하더니,
『그렇게 역정 내실 것 무엇 있수. 말 좀 했기로…』
『이놈아, 네가 아랑곳할 게 무어야?』
『아랑곳은 할 것 없어도 흥정을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으니까 말이요. 나는 싸움 좀 못 말린단 말이요?』
하고 술냄새를 풍기며 다가앉는다.
『이놈아, 술을 먹었거든 곱게 삭여!』
이번에는 삼돌이란 놈이 빌붙는다.
『나 술 먹고 어찌하든 김서방이 관계할 게 무어요.』
『이놈아, 남의 내외 싸움에 참견을 하니까 그렇지.』
주고 받다가 삼돌이의 멱살을 김삼보가 쥐었다.
『이 녀석, 네가 무슨 뻔뻔으로 이따위 수작이냐? 내 계집 이놈 왜 건드렸니?』
삼돌이가 조금 발이 저렸으나 속으로 흥하고 웃었다.
『요까짓 게 누구 멱살을 쥐어? 앙징하게…』
하더니 김삼보의 팔을 잡아 마당에다가 내려갈기니 개구리 터지듯 캑한다.
『요놈의 자식아! 내 말을 좀 들어 보고 말을 해! 네 계집 험절은 모르고 덤비기만 하면 강산이냐? 이 동리 반반한 사내양반 쳐 놓고 네 계집 건드리지 않은 놈이 없다. 이놈! 꼭 집어 말을 하라면 위에서 아래로 내리 섬기마. 이놈, 너도 계집 덕분에 노잣냥, 노름 밑천푼 좋이 얻어 썼지. 그래 집이라고 오면서 볼받은 것이나마 옥양목 버선벌이나 얻어 가지고 가는 것은 모두 어디서 나온 것으로 아니? 요 땅딸보 오리궁둥아! 아무리 속이 밴댕이 같기로… 그리고 또 들어봐라. 나중에는 주워먹다 주워먹다 못해서 뽕지기까지 주워먹었다.』
안협집은 파래서 달려든다.
『이놈, 네가 보았니?』
『보나 안 보나 일반이지.』
『이 녀석, 네 말을 듣지 않으니까 된 말 안 된 말 주둥이질을 하는구나.』
동리 사람이 모여들었다. 안협집은 삼돌이에게 발악을 하고 김삼보는 듣고만 있다.
한참 있더니 듣다듣다 못하는 듯이 삼돌이란 놈이 안협집에게로 달려들며,
『이년이 뒈지려고 기를 쓰나?』
하고 주먹을 들었다. 동리 사람이 호령을 하고 말렸다.
『이놈! 저리 얼른 가거라.』
이놈은 변명을 하며 뻗퉁겼다. 그러나 여러 사람에게 끌려 저리로 가 버렸다.
사람이 헤어지자 노름꾼은 계집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는 삼돌이에게 태질을 당한 것이 분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까지 계집년의 행실을 온 동리에서 아는 것이 분하였다.
『이년! 더러운 년, 뽕밭에는 몇 번이나 갔니?』
발길로 지르고 주먹으로 패고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땅에다 질질 끌었다.
그는 이를 갈고 어쩔 줄을 몰랐다. 계집은 울고 발버둥을 쳤다.
『죽여라! 죽여!』
『그럼 살려 줄 줄 아니? 이년! 들어앉아서 하는게 그런 짓밖에는 없어?』
김삼보는 자기의 무딘 팔다리가 계집의 따뜻하고 연한 몸에 닿을 때에 적지 않은 쾌감을 느끼었다. 그는 그럴수록 더욱 힘을 주어 때리도록 속에 숨겨 있던 잔인성이 북받쳐 올라왔다. 맞는 안협집은 당장에 죽을 것 같았다. 그는 생각하기를, 이왕 이리 된 바에 모두 말해 버리고 저하고 갈라서면 그만이지 언제는 귀밑거리 풀고 사주단자 보내고 사당에 예배드린 내외냐. 저는 저고, 나는 난데 왜 이렇게 때리노? 하는 맘이 나며,
『이것 놔라! 내 말하마!』
하고 머리를 붙잡았다.
『뽕밭에는 한 번밖에 안 갔다. 어쩔 테냐?』
삼보는 더욱 머리채를 잡아챘다.
『이년, 한 번?』
이번에는 더 때렸다. 안협집은 말한 것이 후회가 났다. 삼보는 그래도 거짓말을 한다고 그대로 엎어 놓고 짓밟았다. 안협집은 기절을 하였다. 삼보는 귀로 안협집의 숨소리를 들어 보았다. 그러나 숨소리가 없다. 그는 기겁을 하여 약국으로 갔다. 그의 팔다리는 떨렸다. 그가 의원에게서 약을 지어 가지고 왔을 때 안협집은 일어나 앉아 있었다. 삼보는 반갑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약을 마당에 팽개쳤다. 그리고 밤새도록 서로 말이 없었다. 이튿날은 벙어리들 모양으로 말이 없이 서로 앉아 밥을 먹고, 서로 앉아 쳐다보고, 서로 말만 없이 옷도 주고 받아 갈아입고, 하루를 더 묵어 삼보는 또 가 버렸다. 안협집은 여전히 동릿집 공청 사랑에서 잠을 잤다. 누에는 따서 삼십 원씩 나눠 먹었다.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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