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전문과 해설/김만중

김만중, 구운몽 <10> 전문, 해설 / 여장을 한 채, 정경패 보러 간 양소유...

뿔란 2021. 6. 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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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3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김만중] - !김만중, 구운몽_ 전문, 해설 <1>

 

!김만중, 구운몽_ 전문, 해설 <1>

구운몽(완판 105장본) 구운몽 목록 양소유는 초나라 양치사의 아들이니 승명(僧名)은 성진이라. 팔선녀라. 정경패는 정사도의 딸이니 영양공주라. 이소화는 황제의 딸이니 난양공주라. 전채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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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이 말하였다.

 

  “첩은 본디 초나라 천한 사람이라 외로운 자취 구름같이 동서로 다니다가 오늘날 부인을 모시니 하늘의 뜻인가 합니다.”

 

 부인이 생의 거문고를 취하여 무릎에 놓고 손으로 만지며 말하였다.

 

  “이 재목이 진실로 묘하도다.”

 

 생이 말하였다.

 

  “이 재목(材木)은 용문산(龍門山)에서 백 년 자란, 오래 된 오동나무라 천금으로 사려고 하여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장을 한 '생', 그러니까 양생(양씨), 양소유가 정사도의 부인을 만났습니다. 부인은 양소유의 거문고 연주를 듣고 난 뒤, 양소유의 거문고를 자기 무릎에 놓고 만지작댑니다. 그러면서 거문고를 만든 나무가 신기하다고 합니다. 

오동나무는 아래 그림처럼 생긴 나무라고 하네요^^

 

한 마리 개가 짖고, 두 마리 개가 짖으니/ 온 동네 개가 다 짖네.// 아이를 시켜 문밖을 살피라 했더니/ 오동나무 꼭대기에 달이 걸렸다 하네.’ 그림 왼쪽에 쓰여 있는 글. 글에 나온 대로 개 한 마리가 컹컹 짖고, 아이 하나는 대문을 열고 달을 쳐다보고 있어. 바로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문을 나서 달을 보는그림)라는 그림

 

 생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되, 이 사지(死地)에 들어오기는 소저를 보려 함인데 날이 늦어가도 소저를 보지 못하니 마음에 의심하여 부인께 고하여 말하였다.

 

  “첩이 비록 예부터 전하여 오는 곡조를 타오나 청탁을 알지 못합니다. 자청관에 와 들으니 소저가 지음(知音)을 잘 하신다 하니 한 곡조를 아뢰어 가르치는 말씀을 듣고자 하였는데 소저가 안에 계시니 마음이 섭섭합니다.”

 

부인이 시비를 시켜 즉시 소저를 불렀다. 한참 후에 소저가 비단 장막을 잠깐 걷고 나와 부인 앞에 앉으니 생이 일어나 절하고 앉으며 눈을 들어 바라보니 태양이 처음으로 붉은 안개 속에서 비취는 듯, 아리따운 연꽃이 물 가운데 피였는 듯 심신이 황홀하여 안정치 못하였다.

생이 생각하되, 멀리 앉아 소저의 얼굴을 자세히 못 볼까하여 일어나 다시 고하여 말하였다.

 

“한 곡조를 시험하여 소저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였는데, 화당(華堂)이 멀어 소리가 흩어지면 소저의 귀에 자세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부인이 즉시 시비를 명하여 자리를 옮겼다. 생이 고쳐 앉으며 거문고를 무릎 위에 놓고 줄을 고른 후에 한 곡조를 타니 소저가 말하였다.

 

“아름답다, 곡조여! 이 곡조는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이다. 도인의 수법은 신통하나 음난한 곡조니 들음직 하지 아니하다. 예부터 전해오는 다른 곡조를 듣고자 한다.”

 

✔ 사지, 그러니까 죽을 곳, 양소유가 여장을 하고 대가집 귀한 따님을 보러 왔으니 걸리면 죽을 판이긴 합니다.
✔ 청탁 : 맑고 탁함. 음악을 연주하지만 청탁을 모른다는 것은, 연주는 하는데 이게 잘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 : 당나라 현종이 꿈에 달나라에 가서 선녀들의 춤과 노래를 즐겼다. 돌아와 그 노래를 옮겨 예상우의곡을 만들고, 그 춤을 옮겨 예상우의무를 만들어 양귀비에게 공연하게 했다. 
✔ 도인 : 양소유를 도교의 여도사로 알고 있는 부인이, 양소유를 도인, 도 닦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

 

 

지음(知音)에 대한 내용은 아래 링크 클릭!

2021.06.03 - [이것은 상식인가 잡소리인가] - 지음, 백아절현, 백아와 종자기 / 예술과 우정

 

지음, 백아절현, 백아와 종자기 / 예술과 우정

춘추시대 초나라에 유백아라는 거문고 명인이 살았다. 어느 날, 백아가 홀로 거문고를 타고 있는데, 문득 줄이 끊어졌다. 그의 경험 상, 이것은 누군가 음악을 훔쳐듣고 있다는 징조였다.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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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또 한 곡조를 타니 소저가 말하였다.

 

“이 곡조는 진후주(陳後主)의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다. 망국조(亡國調)니 들음직 하지 아니하구나. 다른 곡조가 있으나?”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 : 남북조 시대에 陳(진)나라의 마지막 왕 후주가 사치하고 놀기를 좋아 하여 항상 연회를 베풀고 빈객을 청하여 주색에 빠져 불렀던 음란한 노래.

✔망국조 : 후주가 마지막 왕입니다... 흥겹게 놀다가 나라가 그만 ㅜㅜ

✔<옥수후정화> 내용이 이렇습니다. 
화려한 집 꽃숲은 높은 누각을 대하고 새로 단장한 아름다운 몸매는 성을 기울게 할 지경이로다.
문을 비친 엉긴 교태에 짐짓 움직이지 않으니 휘장을 나와 머금은 교태를 보내며 서로 맞이하네.
아름다운 여인의 뺨은 꽃이 이슬을 머금음과 같고 아름다운 나무는 빛을 흘리어 뒤 정원을 비추네

 

생이 또 한 곡조를 타니 소저가 말하였다.

 

“이는 채문희(蔡文姬)가 오랑캐에게 잡혀가 두 자식을 생각한 곡조라. 절개를 잃었으니 어찌 들음직 하겠는가?”

 

채문희(채염), 흉노에게 잡혀갔다 돌아오는데, 그때 흉노에서 낳은 쌍둥이를 두고 와야했다.

 


“이는
왕소군(王昭君)<출새곡(出塞曲)>이다. 오랑캐 땅의 곡조니 어찌 들음직 하겠는가?”

 

✔왕소군 :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힌다. 한나라 궁녀였으나 흉노 왕에게 시집을 갔다. 
✔출새곡 : 왕소군이 흉노로 가며 부른 노래. '출새'가 '변방을 나서다'라는 뜻. 노래가 몹시 슬퍼 당시 왕소군이 이 노래를 부르자 날아가는 새가 떨어졌다고 한다. 

왕소군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740441)

 

또 한 곡조를 타니 소저가 말하였다.

 

“이 곡조를 듣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여관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옛날 혜숙야(嵇叔夜)의 <광릉산(廣陵散)>이라 하는 곡조다. 혜숙야가 도적을 쳐 파하고 천하를 맑게 하고자 하다가 뜻밖에 참소를 만남에 분을 이기지 못하여 이 곡조를 지었거니와 후세에 전할 사람이 없었는데 여관은 어디서 배웠느냐?”

 

✔혜숙야 : 진나라와 위나라의 정권 교체기에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죽림에 모여 학문을 논하고 청담(淸淡)을 추구한 7명의 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죽림칠현(죽림의 일곱 현자)이라고 불렸다. 그 중의 한 명이 혜강이다. 자를 '숙야'라고 한다. 
✔여관 : 여자 관리. 여기서는 물론 도교의 여관을 말한다. 양소유를 '도사'라고도 부르고 '여관'이라고도 부른다. 고전소설의 호칭, 지칭을 잘 따라가셔라.

혜강 By 미상 - http://www.silkqin.com/09hist/qinshi/xikang.htm,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4885261

 

생이 일어나 절하고 사례하여 말하였다.

 

“소저의 총명은 세상에 없습니다. 소첩의 스승 말씀도 그러하였습니다.”

 

또 한 곡조를 타니 소저가 말하였다.

 

“이는 백아(佰牙)의 <수선조(水仙操)>다. 도인이 천백 년 후에 백아(佰牙)의 지음(知音)이구나.”

 

✔'백아'는 위의 '지음' 링크 참조!
✔ 여기선 다시 양소유를 '도인'이라고 부름. '도인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백아의 음악을 이해하는구나', 이 정도의 말을 하고 있음.

 

 

또 한 곡조를 타니 옷깃을 여미고 꿇어앉아 말하였다.

 

“이는 공부자(孔夫子)의 <의란조(倚蘭操)>다. 우뚝 높아서 어찌 이름을 붙이겠는가. 아름다움이여! 이에 지날 것이 없으니 어찌 다른 곡조를 원하겠는가?”

 

✔ 공부자 : 공자. 
공자의 '의란조'를 연주하니 '옷깃을 여미고 꿇어앉아 말하'는 정소저... 이건 김만중 생각인 거지... 아 진짜 조선시대 사람들 유학에 미친 듯.
 
공자의 '의란조' : 30년간 세상을 떠돌던 공자가 쓸쓸히 고향인 노나라로 돌아가는데, 길에 우거진 잡초 속에 향기로운 난초가 피어 있더란다. 공자가 그 난초를 자기 자신에 빗대어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는데, 그 노래가 바로 '의란조'이다. 
'이에 지날 것이 없다' : '지나다'를 옛날 글에서는 이런 식으로 많이 쓴다. '이보다 훌륭한 것이 없다.',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뭐 이런 말이다.  

 

 공자(B.C.551~ B.C.479)  confucius, gouache on paper, c. 1770. Encyclopedia Britannica.,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318964

 

생이 말하였다.

 

첩이 듣자오니 아홉 곡조를 이루면 천신이 내린다 하는데, 이미 여덟 곡조를 탔고 또 한 곡조가 남았으니 마저 탈까 합니다.”

 

줄을 고쳐 다스려 타니 그 소리가 청량하여 사람의 마음을 방탕케 하였다. 소저가 눈썹을 나직이 하고 말하지 아니하니 생이 곡조를 더욱 빠르게 몰아 쳐 소리가 호탕하였다.

 

“봉(鳳)이여, 봉이여.”

 

그 황(凰)을 구하는 곡조에 이르러 소저가 눈을 들어 생을 자주 돌아보며 옥같이 아름다운 얼굴에 부끄러운 빛을 띠고 즉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자, 생이 놀라 거문고를 밀치고 소저가 가는 데만 보니, 부인이 말하였다.

 

✔ 양소유가 자기 자신을 '첩'이라고 하는데 아... 닭살... 적응이 안된다. 아홉 곡조를 이루면 천신이 내린다는 이야기는 나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원래 9라는 숫자가 완벽한 숫자라 그런 것이다. 10이 완벽한 숫자이지만 그것은 인간이 이루는 것이 아닌 것이고, 인간은 9까지, 10은 신의 영역.
✔ 양소유 진짜.... 아, 이 사람, 과거는 안중에도 없고 연애질에 미쳐 있다. 여장하고 남의 집에 가서 여자 꼬시는 거 봐라, 여기서 '봉구황'을 연주할 줄이야!!!! '봉구황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도 '탁문군' 때문에 다루었지만, 다시 밑에 링크를 붙였다.
✔'봉구황' 노래의 의미를 아는 정소저가 부끄러워하며 도망가니, 양소유 깜짝 놀라, 악기를 팽개치고 정소저의 뒷모습만 바라본다니... 이건 완전 막장 드라마가 아니더냐!!!

 

 

2021.05.12 - [이것은 상식인가 잡소리인가] - 탁문군과 사마상여의 사랑이야기, 봉구황, 백두음

 

탁문군과 사마상여의 사랑이야기, 봉구황, 백두음

 이것은 일종의 러브스토리이며, 때이른 혁명적 자유연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소설에서도 자유연애는 많이 나온다. 궁녀의 연애라는 금기의 영역을 다룬 소설도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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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이 아까 탄 곡조는 무슨 곡조냐?”

 

생이 말하였다.

 

“선생께 배웠지만 곡조 이름은 알지 못하기에 소저의 가르치심을 듣고자 하였는데 소저는 아니 오십니까?”

 

부인이 시비를 명하여 소저를 부르시니 시녀가 돌아와 고하였다.

 

“소저가 반나절을 바람을 쏘여 기운이 편치 아니하다 합니다.”

 

생이 이 말을 듣고 소저가 아는가 하여 크게 놀라, ‘오래 머물지 못하겠구나.’하고, 즉시 일어나 재배하여 말하였다.

 

“듣자오니 소저가 옥체 불평하시다 하오니, 생각건대 부인이 진맥하실것 같아 소첩은 물러 가겠습니다.”

 

부인이 상으로 비단을 많이 주었지만 사양하며,

 

“첩이 천한 재주를 배웠으니 어찌 값을 받겠습니까?”

 

라 말하고 갔다.

 

✔ 부인이 곡명을 묻자 '곡조 이름은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는 뻔뻔한 양소유!!! You're a liar!!! 
바로 세 줄 아래를 보셔라! '소저가 아는가 하여 크게 놀'랐단다! 음흉한 녀석!
재배 : 두 번 절함.

 

이어지는 스토리, 아래 링크타고 고고!!!

2021.06.16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김만중] - 김만중, 구운몽 <11> / 장원급제, 정경패와 혼담 / 전문, 해설

 

김만중, 구운몽 <11> / 장원급제, 정경패와 혼담 / 전문, 해설

처음부터 보실 분은 링크 클릭! 2021.05.03 - [문학작품 읽고 뜯고 씹고 즐기기/김만중] - !김만중, 구운몽_ 전문, 해설 " data-og-description="구운몽(완판 105장본) 구운몽 목록 양소유는 초나라 양치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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