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전문

지하련, 체향초

뿔란 2021. 7. 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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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향초(滯鄕抄)

 

 삼히(三熙)가 친가엘 갈 때면 심지어 이웃사람들까지 더 할 수 없이 반가히 맞어 주었다.

 

 물론 여기엔, 아직 어머니가 살어 게시는 욋딸이란 것도 있을지 모르고, 또 그의 시집이 그리 초라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튼 이러한 대우가, 그의 모든 어렷을 적 기억과 더불어, 고향에 대한 다사로움을 언제까지나 그에게서 가시지 않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랬는데, 이번엔 어머니를 비롯해서, 어린 족하들까지,

 

  「아지머니 ─」

 

하고는 그냥 말이 없을 정도다.

 

 이럴 때마다, 삼히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홀죽해짐 뺌에나 턱에 손을 가저가지 않으면, 빠지지하고 진땀이 솟는 이마를 쓰담고 애매한 우슴을 지어 보거나, 또 공연히 무색해 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이래서 그가 친가로 온 후 수일 동안은 그를 너무 알른 사람으로 극진히 해주는 고마운 마음들이, 되려 그를 중병자로 만든 세음이다.

 

  「이게 웬일이냐 글세 ─」

 

하고는 미기 우름을 참는 시늉으로 손을 잡는 숙모(叔母)들이라든가,

 

  「어 그 젊은 애들이 무슨 병이람 ─」

 

하고, 연상 한약을 권하는 숙부(叔父)들이라든가, 이밖에 연일 문병차로 드나드는 친척 지지들, 또 조석으로 곁에 와서 울멍 울멍 간호하려 드는 어머니의 얼골, 이러한 것에 삼히는 거반 지친 바 되어, 사흘재 되든 날 아츰, 끝내 산호리(山湖里)로 옴기게 했든 것이다.

 

 어머니께는 결코 이처럼 중병이 아니라는 것, 너무 알는 사람 대접하는 것이 되려 나뿌다는 것, 산호리는 조용해서 거처하기 가장 적당하다는, 이러한 것을 말슴 드린 후, 곳 산호리 오라버니께 의논하려 했든 것인데, 오라버니께서는 삼히가 말하기 전, 자기가 먼저 권하려 했다고 하면서, 대단히 기뻐하였다.

 

 산호리에 있는 오라버니는 삼히가 어렸을 적 유난히 따르든 오라버니일 뿐 아니라, 형제들 중 제일 몸이 약한 분인데다가 한때 불행(不幸)한 일로 해서, 등을 상우고,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시가지(市街地)와 떠러진 산 밑에서 나무와 김생들을 기르고 날을 보내는 셈이다. 이러고 보니 어쩐지 이 오라버니에게 대해서는 상구도 그의 감상벽(感傷癖)이 가시지를 않고, 그 어덴지 차고 잠잠한 것 같은 생활표정(生活表情)이 이상하게 그의 마음에 언잖음을 가저다 줄 뿐 아니라, 그 언잖은 마음은 또한 어렸을 적 그가 따르든 것과는 달리, 별다른 의미의 관심을 가지게 해서, 이래서 이제는 그의 다정한 고향 바다와, 산과 들을 생각할 때마다, 먼저 나무와 꽃이 욱어지고, 양(羊)과 도야지와 닭들이 살고 있는 양지바른 산호리, 그 축사(畜舍)와 같은 적은 집에 살고 있는 얼골 흰 오라버니를 잊을 수는 없게 되었다.

 

 아무튼 그의 마음이 이러했기에 그랬든지, 그가 이리로 옴겨 왔을 때 오라버니 뿐 아니라, 올케까지도 그를 즐겁힐 것이면 무었이든지 하려구 하였다. 가든 날로 도배를 말장히 했고, 뜰에 놓인 나무토막이라든가, 철사나부랭이도 죄다 치이게 하고, 또 삼히를 위해서 광선(光線)의 드라듦이 가장 알맞고, 바다가 잘 보히고 하는 이러한 좋은 조건을 가진 방을 그에게 주었

었다.

 

 처음 이 방에서 삼히는 정말 즐거웠다. 어쩌면 오월(五月)이 이처럼 오월다울 수가 있고, 어쩌면 구름이 이처럼 한가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하나 이상한 것은, 이리로 온 후 날이 갈스록 그는 웬일인지, 점점 오라버니의 마음이 알 수 없어졌다. 전에 그렇게 상냥하든 오라버니가, 어쩐 일로 몹시 까다롭고, 서먹서먹해 갔다.

 

 생각하면 두 남매는 퍽 어렸을 때 난호인 세음이다. 그때 오라버니가 수물넷 나든 해였으니까, 삼히가 사뭇 소녀시절이다.

 

 그 후 오라버니가 없는 동안 삼히는 자라서 시집을 온 폭이고, 오라버니가 다시 도라왔을 때 그는 애기를 가진 셈이다. 물론 그 동안 친가에를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유코 아버지 제사ㅅ 때라든가, 동생이 장가갈 때라든가, 하는 이러한 때 왔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그동안 수년을 격(隔)한 세월(歲月)을, 서로 말하고 알려줄 기회는 없었든 것이다. 그래서 보지 못한 그 동안의 오라버니와 누이가 서로 알려지는 형태가 이러한 것인지도, 특히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렇게 까다롭게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나 ─ 아무튼 삼히로 앉어 생각하면 몹시 유감되고 섭섭할 일이었다. 오라버니는 지금도 어렸을 때 오라버니어서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따금 역부러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오라버니에게 말을 건너 볼 때도 있었지만 암만해도 전날 오라버니 같지는 않었다.

 

 

 

 어느 날 오후였다.

 

 삼히는 뒤곁 층층대를 올라, 축사에를 들러서, 멋모르고 도야지ㅅ물 주는 박아지를 들었다가, 별안간 꽥꽥 소리를 치고 덤비려는 돼지들에게 혼을 떼우고 쪼껴 내려오니까 오라버니가 온실(溫室)옆에서 배차ㅅ닢 같은 선인장(仙人掌)을 모래판에 심고 있다가,

 

  「너 돼지헌테 혼난 게로구나 ─」

 

하고, 여전 모래판을 본 채 말을 했다.

 

 삼히는 겁을 먹은 그대로

 

  「오라버니 그 웨 그래요? 왜 돼지가 나보구 야단이래요?」

 

하고 무렀다.

 

그랬드니

 

  「돼지ㄴ 본대 하이칼라를 보면 그렇게 덤비는 거란다 ─」

 

하고는 역시 모래판을 본 채 말을 했다.

 

 마츰 그 옆 샘가에서 물을 긷고 있든 올케가 듯다가 우스면서, 돼지는 사람이 옆에 가면 먹을 것을 달라고 그렇게 야단이란 것과,

 

  「그 박아지를 건듸렸다니 여북했을라구 ─」

 

하는 말을 듯고,

 

  「응 ─ 그래?」

 

하고 일방 신기해 하면서도, 삼히는 어쩐지 조금 전 저를 하이칼라 라고 하든 말이 깨림직하니 불쾌한 감정을 이르켰다.

 

 그는 오라버니 바로 옆, 온실 유리창에 기대어 선 채, 제법 눈을 간조롬이 하고는, 무수한 상녹수와 백일홍과, 또 그 우이를 날러 단이는 새들과, 바다와 산과 들을 바라보면서,

 

  「오라버니 자랑스러 하네 ─」

 

하고 말을 해봤다.

 

  「뭘루?」

 

  「이렇게 사는 걸루요 ─」

 

  「그런 걸까?」

 

  「내 보니께 그렇데요. 괘니 남이 해도 될 걸 손수 허고, 헐 땐 지나치게 열중해 뵈구…」

 

  「그게 자랑이란 말이지?」

 

  「그러믄요 ─」

 

 오라버니는 모래판으로부터 손을 떼고 삼히를 보았다.

 

 삼히는 전부터 곳잘 말을 하다가도 남이 저를 바라보면은 괘니 귀가 먹먹한 것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죄다 이저버리기가 십상이었다. 이래서 그는 모르는 결에 얼굴을 돌리고 머뭇거렸으나, 그러나 또 한편 속으로,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을만치 먹은 어른이라는 생각이 용기를 주기도 해서,

 

  「자기가 하는 일에 열중한다는 것은, 남의 간섭(干涉)이나 침범(侵犯)을 거절하는 것이고, 또 이것이 생활태도라면, 거기엔 반다시 어떤 긍지가 있을 것 같애서요 ─」

 

하고는 무슨 연설이나 하듯 딱딱한 태도로 된 둥 만 둥 말을 했다.

 

 그랬드니, 오라버니는 웬일인지 제법 소리를 내고 우섰다.

 

 이래서 삼히는, 제가 한 말이 오라버니의 우슴꺼리가 되었다는 불쾌감보다도, 오히려 제가 한 말이, 오라버니가 평소에 자긍하든 그 무었의 급소를 찔른 것이라고, 즉 방금 오라버니가 웃은 것은 말하자면 뭐라고 헐 말이 없어 웃은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이 들고 보니, 오라버니가 웃은 것이라든지, 또 저를 하이칼라라고 하던 그 태도라든지가 새삼스럽게 비위를 상해주었

다.

 

 그래서

 

  「그건 일종의 「태」라는 거에요, 오라버니든 누구든, 아무리 훌륭한 분이래도 그 생활에서 태를 부리기 시작하면, 보는 사람이 얼굴을 찡기는 법예요 ─」

 

하고는 발칵했다.

 

  「그래 네가 말하는 그 태라는 게 나도 싫어서 이렇게 일을 허는데도, 말성이니 그럼 어떻게야 헌담 ─」

 

 오라버니는 혼자ㅅ말처럼 중얼거리며 여전 일을 계속했다.

 

  「그것도 별게 아니거든요 ─ 불쾌하다니께요 ─」

 

하고, 삼히도 여전 대거리를 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사뭇 훗 ─ 둑 해서

 

 한참 누이를 보고 있었다. 그리드니, 거반 싱거우리만치 쉽사리

 

  「그래 마젔다, 네 말이 ─」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삼히는 제가 꺼낸 말이면서도, 오라버니가 정말 불쾌한 생활을 한다고는 어느 모로 보든지, 위선 제 마음이 허락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왜요?」

 

하고는, 아니라는 말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처럼, 오라버니를 보았다. 그러나 오라버니는 다시 모래판으로 손을 가저 가며,

 

  「나는 네가 보는 것처럼 내 생활에 자랑을 느낄 수도 없고, 또 태일군(泰日君)처럼 내 생활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

 

 물론 삼히는 지금 오라버니가 말하는 태일군이 누구인지, 웨 이 사람이 오라버니 생활을 무시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을 오라버니도 알었든지

 

  「태일군? 내가 요즘 아는 사람 중에선 제일 똑똑한 친구지 ─」

 

하고 혼자ㅅ말처럼 말을 했다.

 

 삼히가 처음 말을 시작기는, 오라버니의 이러한 생활태도에 오히려 존경이 가는 것을 전제로 한 후, 이를테면 저를 하이칼라라고 한, 오라버니에게 저도 한번 성미를 부려 보자는 심산에 불쾌했든 것이다. 그러나 의외에도 오라버니의 말이 그에게 뜻하지 않은 쓸쓸한 정을 가저다 주어서 한동안 말을 잃고 그대로 서 있으려니까,

 

  「태일군 같은 사람은 너허군 다르지만, 아무튼 나를 거짓으로 산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큰집 사랑에서 단지 나 혼자 누어만 있든 때와는 달러서, 이리로 와서부터는 첫재 나와 상관되는, 내가 간섭하지 않으면 안될 내 소유물(所有物), 즉 내게 따른 것들이 있으니, 내게도 생활(生活)이라는 게 있을 것 아닌가? 그래서 이 나의 “살림”의 모습이 이제 네게 “태”라는 것으로 느껴진 모양인데, 이러한 “태” 직 “자세”라는 것이 보는 사람에게 불쾌를 줄 정도라면, 아무튼 나로서는 네가 말하는 그대로를 듯고 있을 수박게 어데 다른 도리가 있니?」

 

 오라버니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심한 얼골로 삼히를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내가 태일군 말을 옳게 역이는 것은 첫재, 내게 아이가 없고, 또 흙에 소문(所聞)이 없고, 인간(人間)이 있지를 않으니까, 말하자면 이건 생활이라기보다도, 단지 내가 살어 있다는 것뿐이겠는데 본시 이러한 곳엔 아까 네가 말한 그런 “자랑”이란 건 있지 않을 게고, 또 자랑이 없는 사람이란, 흔히 마음이 헛불 수도 있어서, 가령 뭘 헛부게 생각하면서도, 죽지 못해 알른격으로 그런 “태”를 부리고 산다는 건 그리 유쾌할 일이 못될 거니까, 결국 네가 한 말이 꼭 마젔지 뭐냐 ─」

 

하고 말을 마친 후 오라버니는 모래판을 들고 이러섯다.

 

 온실 안으로 드러가려는 오라버니를 발견하자, 삼히는 당황이

 

  「애기를 가지면은요?」

 

하고 말을 건넜다.

 

  「거기엔, 사람에 의한 사람의 생활이 하나 시작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에겐 그러한 길도 있을 테니 말이다.」

 

 오라버니는 곳 온실 안으로 드러갔다.

 

 그 후 사오 일 동안 삼히는 오라버니와 이야기 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삼히가 식 후, 모종밭에 서 있을 때라든가, 또 종일 방에 누어 있을 때라든가, 이러한 때에 오라버니가 삼히의 거취를 모를 리 없을 것인데도, 오라버니는 대체로 무심하였다.

 

 기껏 해서

 

  「열이 있니?」

 

라든가,

 

  「거기서 뭘 허니?」

 

가, 고작이였다.

 

 물론 삼히도 이러한 무름으로 해서 쉬 이야기가 이루워질 수 없으리만치, 차차 오라버니에게 무심하려 하였지만,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오라버니의 일거 일동을 노치지 않고 바라보았다기보다도, 점점 이상한 흥미를 가지게 꺼럼 되었다.

 

 볼라치면 오라버니는 종일 일을 하는 때도 있었다. 진흙이 말러서 다시 몬지가 되어, 누른 빛깔을 한층 더 짙으게 한, 염천(炎天)에서는 보기만 하여도 숨이 맥힐 것 같은, 노동복을 입고는, 김매고, 모종하고, 또 식목을 분으로 옴기고, 순 잘르고, 돼지ㅅ물 닭의 모이까지 챙긴 후, 물통을 들고 온실 식물에 물을 줄 때면은, 거반 하로해가 다 가는 때이다.

 

 이렇게 일을 몹시 하는 날이면 오라버니는 더욱 말이 적었다.

 

 쉴새 없이 손등으로 떨어지는 땀을 수건으로 한번 씻는 법도 없고, 애를 써 그늘을 찾이려구도 않았다. 또 이러한 때는, 삼히가 일즉이 보지 못했든 이마 복판에 일자로 내리벋은 어데난 혈맥이 서 있어, 이것이 무서운 인내(忍耐)나 아집(我執)을 말할 때처럼 일종 이상하게 섬직한 인상까지 주었다.

 

 삼히가 이상한 적의(敵意)를 느끼고 제 방으로 도라올 때가 흔히 이러한 때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러한 때의 오라버니는 어듼지 횡폭한 데가 있었다. ─ 이상한 자기 주장이 반다시 남을 해ㅅ치거나 남을 간섭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삼히는 흔히 하는 버릇으로 저녁을 마치자, 곳 모기를 내어 쫓고는 얼른 철망을 친 창문을 닫었다. 그리고는 팔을 베인 채 그냥 누어 있었다.

 

 그랬는데,

 

  「뭘 허니?」

 

하고, 의외에 오라버니가 문을 열었다. 삼히는 이날 낮부터 또 하나 이상한감정을 오라버니에게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전에라도 이렇게 자리에 든 후 오라버니가 온 적은 통이 없었기에, 그는 좀 당황해서 이러났다.

 

 삼히가 이러라는 것을 보자, 오라버니는

 

  「누었었구나 ─」

 

하고는 별루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었다.

 

 인해 오라버니 방에서는 낫선 음성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고, 오라버니의 낮은 우슴소리도 들려오고 하였다.

 

 삼히는 다시 자리에 누으며

 

  「손님이 온 모양인데… 무슨 일로 왔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서도, 한편 머리ㅅ속에는 문듯 낮엣 일이 떠올랐다.

 

 이날도 오라버니는 종일 일을 하였다. 일이 거반 끝날 무렵, 오라버니는 사무실 옆에 의자를 놓고 앉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몹시 파아란 얼골을 하고는, 전신에 맥이 확 풀렸을 때처럼, 아무 표정 없는 얼골인데, 일즉이 삼히가 잘 보지 못하든 얼골에 하나였다.

 

 이 때 웬 청년 둘이, 젊은 녀자들을 대리고, 마즌 편 백일홍 나무께서, 머뭇 머뭇 하며 이리로 왔다.

 

 삼히는 그 중에 한 청년이 그년에 죽은 동무의 동생이요, 이 시가지에서는 제일 큰 지주(地主)의 아들인 것을 곳 알었다. 그리고 젊은 여자들도 여염집 여자들인 것을 곳 알었을 뿐 아니라, 또 그는 속으로

 

 (저 여잔, 저 사람의 부인인 게고, 또 저 여자는 고대 혼인한 사촌이거나, 일가ㅅ집 동생일 게고, 저 흰 저고리 입은 여자는 그 여자의 동생일 게고, 그리고 저 남자는 새 실랑인 게다 ─)

 

하고, 객적은 생각을 해 보고 있는데, 그리자, 오라버니도 담배를 문채, 별루 이렇다 할 아무 것도 없이 그저 인사를 받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웨 그리도 못나게 수접어하는 것인지, 오기는 무슨 화초를 사려 온 모양인데, 무었을 사려 왔다는 말도 잘 못할 정도로 주변이 없었다.

 

 오라버니는 한참 동안 멀 ─ 건이 앉어서, 흡사 청년의 거동에 미기 실소(失笑)라도 할 듯한 얼골이드니, 또 무슨 마음에서인지, 곳 몹시 상냥한 얼골을 하고 이러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연상 무슨 설명을 하고, 또 함께 온실 안으로 드러가고 하였다. 얼마 후에 청년은 분에 심은 화초를 꽤 여러 개 산 모양인데, 엇재, 그것을 또, 손수 들고라도 가겠다는 것인지, 오라버니가 뭘 궂이 말유를 했고, 그리고는, 또 오라는 말,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는 것이었다. ─ 오라버니는 일즉이 어떠한 훌륭한 사람이 왔을 때에도 이러한 전예가 없었다.

 

 오라버니가 다시 의자에 와 앉었을 때는 역시 아까와 같은 짓친 표정으로 도라갔으나 엇전지 삼히 눈에는 그것이 우수운 피에로의 모습 같었다기보다도, 하낫 음침한 인간에게서 받는 일종 흉물스런 인상을 엇지 할 수가 없었다.

 

 (오라버니는 자기가 완전히 주장될 때 비로서 양보(讓步)하는 거다 ─)

 

 삼히의 이러한 것은 꽤 노골적(露骨的)인 적의(敵意)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는 곳 자긔 방으로 도라오고 말었다. ─

 

 삼히가 이러한 생각을 되씹고 있을 동안 심부름하는 아이가, 등잔에 석유를 넣어 왔다. 불을 켜지 않은 것을 아이는 석유가 없는 것으로 알고 드러온 모양이었다.

 

  그는 물론 아이가 드나드는 것을 아득히 몰랐다.

 

  「불을 켜요?」

 

하고 무렀을 때 비로서 그만 두라고 한 후, 무슨 마음에서인지 그는 곳 올케 방으로 건너갔다.

 

 올케는 무슨 책인지 들고 누어 있었다. 그러나, 었전지 그에겐 시방 올케도 책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양 뒤적이고만 있는 것처럼 생각이 되는 것을, 역부러

 

 「성 공부 허우?」

 

하고, 무러봤다.

 

 둘이는 한참 동안 나란히 누어 있었으나 별반 말은 없었다. 만일 이때 삼히로서 말을 건넜다면

 

  「성 쓸쓸하지 않우?」

 

하고, 뭇고 싶은, 꽤 주책 없는 말이었을지도 모르나, 삼히가 이런 말을 하면 올케가 몹시 불쾌히 녁일 것 같어서, 그는 그저 잠작고 있었다.

 

 올케도 이러한 침묵이 거북했든지,

 

  「저이 누군 줄 알우?」

 

하고, 오라버니 방에 있는 이를 가르켜 말을 했다.

 

 이래서 삼히는 그 사람이 바로 전일 오라버니가 말하던 태일(泰日)이란 분인 것을 알었고, 삼히는 새로히 이분에 대한 궁금한 생각이 더해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사람 뭘 허는 사람이우?」

 

하고, 무러도 보고, 또

 

  「아직 젊은이래지?」

 

하고, 말을 건너도 보았으나, 올케가 전하는 바, 촌(村)에서 이사온 부자ㅅ집 아들이라는 것, 또는 학교를 나온 후 별반 하는 일이 없다는 것, 보기에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겠드라는 ─ 이러한 이야기로서는 삼히의 방금 죽순처럼 벋어 나가는 맹낭한 호기심을 만족식힐 수는 없었다.

 

  「그분 얘기 오라버니헌테서도 들었다우?」

 

  「뭐라구?」

 

  「분명한 사람이라구… 그리면서 이 댐 오거든 한번 보라나 ─」

 

 삼히는 말을 마치자 엇전지 제풀에 얼골이 붉어지려구 해서, 힐끗 올케를 보았다.

 

 다행이 올케는 벌루 아무런 표정도 없이,

 

  「보라구 했지만 어떻게 봐? 문구멍을 찢고 보나?」

 

하고 우섯다.

 

 삼히도 따라 우스며, 속으로 ─ 아까 오라버니가 온 것이 혹 이분과 인사를 식히려고 왔든 것인지도 모른다는, 이렇게 생각이 드니까, 또 영낙 없이 이래서 온 것 같기도 하였다. 이래서 그는 이상 더 무었을 헤아릴 것 없이, 곳 오라버니 방으로 갔다.

 

 문밖에 서서는 서문 없이

 

  「오라버니 무슨 일로 왔댓서요?」

 

하고, 시침이를 떼고 무러보았다.

 

  「무슨 일로 오셨나, 해서…」

 

 한번 더, 그 온 이유를 밝히려니까,

 

 그제사

 

  「응 ─ 별 것 아니다 ─」

 

하고 대답을 했다.

 

 삼히가 갑잭이 몹시 얼울한 정이 들어 뒤도 도라보지 않고 도라서려구 했을 때다. 별안간 문이 열리며,

 

  「놀다 가렴 ─」

 

하고, 오라버니가 말을 했다.

 

 삼히는 웬일인지 더 뭐라구 말도 하기 싫어저서,

 

  「일 없어요 ─」

 

하고는 그냥 도라섯다. 그랬는데 또 모를 일은,

 

  「놀다 가래도 ─」

 

하고 오라버니가 거듭 잡는 것이었다.

 

 삼히는 덥처서 난처하기까지 하였으나, 또 한편, 이러한 때 이런 얄궂은 제 기분만 쫒는 것이 더 쑥스러울 것도 같어서, 그는 끝내 오라버니가 하라는 대로 조금 후에 올케와 같이 오라버니 방으로 건너갔다.

 

 

 

 삼히가 태일이라는 사람에게서 처음 느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분에 비하여, 오라버니는 훨신 편협(偏狹)하다는 것이었고, 또 이것은 삼히의, 그리 사람 좋치 못한 눈으로 본다면, 이분에 비하여 오라버니는 훨신 설양(善良)하다는 것도 되는 것이었다.

 

 처음 삼히는 저보다 나이 적을지도 모르고, 또 남편과도 면식이 있다기에, 제법 애기 어머니연 의젓하게 대했섰다. 그랬는데, 무슨 자기보다는 나이 사뭇 어린 녀학생을 대하 듯, 외람이 구는 폭이란 도모지 가당치도 않었다.

 

 궂이 바라다 볼 배도, 말을 건널 배도 없이, 오라버니와의 이야기를 계속하는 모양인데, 이따금 오라버니보다도 훨신 나이 들어 보였다.

 

 조금 후에 청년은 삼히에게 온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삼히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드니, 청년은 우섰다.

오라버니와의 이야기는 다시 청년의 친구되는 김군이란 사람에게로 옮겨갔다.

 

 이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자, 오라버니는

 

  「당신 그 김군이란 사람과 친한 것은 난 암만 생각해 봐두 모르겠읍듸다─」

 

하고, 거반 신경질적으로, 말을 가로채었다.

 

 청년이 우스며,

 

  「왜요?」

 

하고, 도로 무르니까,

 

  「어떻게 친해지냐 말요. 아무튼 불쾌하게 된 사람인 것이, 하낫 부량자거던 파렴치했으면 그뿐이지, 그렇게 비굴할 건 또 뭐겠오?」

 

하고, 오라버니는 청년을 보았다.

 

 이야기를 듯고 있든 청년은 여전 별루 이렇다 할 표정도 없이

 

  「그 비굴이란 것이 대체 어떤 것이요?」

 

하고 무렀다.

 

 오라버니는 잠간 피우든 담배 토막을 부빈 후

 

  「글세, 그렇게 말하면 또 별거겠지만 아무튼 옳은 건 옳고, 글른 건 글른 것 아니겠오 ─」


하고, 말을 받었다.

 

 잠깐 침묵이 있은 후, 청년은 다시 말을 이었다.

 

  「비굴한 사람보다도, 사람을 비굴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더 비굴할 것이요─」

 

하고, 비교적 “사람”이란 말에 억양을 넣어 말을 하면서, 이번엔 훨신 롱쪼로,

 

  「형이 그 사람을 몰라 그렇지,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요. 제일 본받기 쉬운 어린애의 마음이 제일 아름답다는 크리스도의 말에 빛처 본다면, 그 사람 천사 같은 사람일 거요」

 

하고 우섰다.

 

 오라버니도 끝내 따라 웃고 말었으나, 대체로 청년의 말이 맛당찮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청년도 이것을 알었든지,

 

  「형이 어느 의미로선 고인(古人)일지 모르나, 그러나 형 같은 좀 이상한 고인보다는 우리 김군이 솔직하기로나, 설양한 폭으로나 훨신 우일 것이요 ─」

 

하고, 여전 우스며 말을 하였다.

 

 마츰내 오라버니도 손을 젓고 우스며,

 

  「그만 둡시다. 당신 험구(險口)아니요?… 우리 그만 둡시다 ─」

 

하고, 말은 하면서도, 일종 불쾌한 감정을 없애든 않었다. 그러나 이번엔 청년이 제법 낙궈채는 형식으로

 

  「날 험구란 것은 편벽된 말인 것이, 형이 이군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기나, 내가 김군과 친하기나 일반인 것 아니겠오?」

 

하고, 오라버니를 건너다보았다.

 

 이군이 바로 오늘 꽃을 사 간 청년인 것을 삼히는 곧 알었다.

 

 오라버니가 약간 후ㅅ둑해서

 

  「내가 이군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 말이지?」

 

하고 말을 했을 때,

 

  「이군이 못낫기 때문이요?」

 

하고, 청년이 물었다. ─ 청년은 이마가 드높은 꽤 이뿐 얼골을 한 사람이라고 삼히는 생각했다. 웃지 않으면 꽤 엄숙한 얼골이면서도, 우스면 퍽 순결해 보이는 것이 거반 얼골에 특증이었다.

 

 

 

 청년이 도라간 후, 야심해서까지, 삼히는 청년을 두고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볼수록 청년이 꼭 겹으로 된 사람 같었다. 한 겹을 벳기면 또 속이 있고, 또 벳기면 속이 있어 어떠한 사람이고, 사태(事態)이고 간에 그 겹겹에서, 능히 허용(許容) 될 수 있고 받어드릴 수 있는 ─ 또 달리는 어떠한 사람과도 어떠한 사태와도 그 스스로가 허하지 않는 한, 결코 타협(妥協)할 수 없는 ─ 가장 독닙(獨立)한 인간(人間)으로 생각되였다.

 

 그래서, 이것이 이중성격이니, 표리부동이니, 하는 상식적인 어의(語意)의 한게(限界)를 넘어서, 진정한 사람의 “깊이”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 청년은 장차 제법 걸물(傑物)일 거라고까지 생각을 해 보았으나,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제 모양이 어째 수다한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해서, 삼히는 곧 벽을 향하여 도라눞고 말었다.

 

 

 

 어느 듯 오월도 지나, 유월이 제격으로 드러섯다. 산호리엔 일로부터 비교적 일이 적어졌다. 아츰에 밭에 심었든 화초를 끊고, 청대콩 오이 이런 것들을 따서 저자로 내어 보내는 것, 봄에 이식해 둔 식목에 조석으로 물을 주는 것, 또 온실에 있는 식물을 태양에 조절식혀 주는 것, 봄에 꽃을 본 초화의 구근(球根)을 말리는 것, 이밖에 가축(家畜)을 살피는, 그리 힘들지 않는 일 뿐이였다.

 

 그런데 삼히가 이리로 온 후부터는, 그리고 삼히의 병이 그리 중하지 않다는 것을 안 후부터는, 이 산호리엔 비교적 젊은 여자들의 출입이 자젔다.

 

 그의 사촌이라든가, 이해 정월에 결혼한 동생의 댁 같은 사람은 거이 격일로 오다싶이 하였고, 또 이러한 그의 동무들이 올 때만은 어쩐지 오라버니는 별루 좋아하지 않었다.

 

 오라버니가 밭에서 일을 하는 것을 여자들은 자못 이상하게, 또는 신기하게 바라다보았고, 또 오라버니는 이렇게 보아주는 것이 더 싫은지, 이따금 몹시 까다로운 얼골을 하였다. 그리든 것이 요지음에 와서는 물론 일이 적어지기도 하였지만, 설사 일이 있는 때라도, 여자들이 와 있을 때면, 밖에 잘 나오지 않었다.

 

 오라버니 방에는 숫한 책이 있었지만, ─ 또 오라버니는 이러한 때가 아니라도 종일 방에만 있는 때가 흔히 있었지만, 심히는 오라버니가 특별히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혹 이런 말이 나오면은

 

  「공부는 무슨 공부를…」

 

하고, 그냥 말을 끊어 버리었기 때문에 그는 이따금 속으로,

 

 (공부도 않으면서 종일 무었을 할까?)

 

하고, 기맥을 살핀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이렇다 할 무슨 “공부”를 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래서

 

  「오라버니가 얼마나 지독히 공부허기에 되우? 지난 겨울에도 전집(全集)한 길을 옥편 놓구 밤새어 가면서 다 떼었다우 ─」

 

하는, 올케 말을 잘 믿을 수가 없었다.

 

 이날도 낮에 끝에올케랑 사촌이랑 찾어왔섯다. 또 이날은 순재(順宰) 문주(文珠)까지 합처서, 그러니 륙칠 인의 젊은 여자들이 한곳에 뫃인 셈이었다. 그래서, 이 여자들도 처음 삼히가 이리로 왔을 때처럼, 공연이 흥분하고, 괘니 모도 신기해하였다. ─ 더러는 잣나무에 기대어 서도 보고, 더러는 맥없이 선인장에 손을 찔리고 앞어하기도 하였다. 또 삼히처럼 돼지에게 혼을 떼우고 쪼처 내려오기도 하였다.

 

 삼히는 돼지에게 혼이 난 순재가, 제가 오라버니한테 무른 말과 꼭 같은 말을 저한테 뭇는 것이 하도 우수워서,

 

  「돼진 본시 하이칼라를 보문 그런 단다 ─」

 

하고, 오라버니가 말하든 그대로 순재에게 옴겨봣다.

 

 그랬드니,

 

  「나보다 돼지가 하이칼라든데 ─」

 

하고, 말을 받어서 둘이는 우섯다.

 

 해가 떠러질 무렵해서 더러는 가고, 더러는 밤까지 남었었다. 문주는 아직 시집가지 않은 “선생님”이니, 말할 것 없고, 순재는 발서 아기가 커다란 부인네라, 저물면 도라가야 할 법도 했지만, 밥 짓는 아이도 있었고, 또 단 살림이라, 삼히에게 왔다가 하로 저녁 느젓다기로 그리 야단할 것 같은 남편도 아닐 상 싶어서 삼히가 궂이 잡은 셈이다.

 

 여자들은 달이 하늘 복판에 올 때까지 밖앝 문께서 놀앗다. 밤에 찬이슬을 맞으면 몸에 해롭다고 해서, 그는, 한번도 밤늣게는 밖을 나오지 않었었다.

 

  ─ 얼마나 곻은 밤인가? 산은 아련하고, 바다는 호수처럼 다정하였다.

 

 삼히는 거반 변으로 황홀해 하였다.

 

  「순재야, 너 오래 살구 싶니?」

 

 삼히는 순재에게 말을 건넛다.

 

 고, 강감우레 하니 이뿐 눈을 아래로 내리뜨고는, 풀닢으로다 무었인지 손작난을 치고 있는, 순재가 삼히는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서, 오래 살면서 이러한 밤을 맞어 주어야 할 사람 같은, 우서운 생각이 들기도 해서, 무러본 말이었는데,

 

  「오래 살구 싶지 않어 ─」

 

하고, 정갈하게 우스며 순재는 삼히를 보았다.

 

 삼히는 어쩐지 쓸쓸하였다.

 

  「넌 오래 살구 싶니?」

 

 조금 후 순재가 도로 물었다.

 

  「난? 그래 오래 살었으면 싶다 ─」

 

하고 삼히가 대답을 하려니까,

 

  「나두 오래 살었으면 해, 뭐니뭐니 해도 살고 볼 일이지, 죽으면 그 뭐야!」

 

하고, 짜장 문주가 삼히 말을 옳다고 하는 것이다. 삼히는 이 만년을 명낭하기만 한 귀여운 “선생님”의 말에 어쩐지, 우슴이 나서,

 

  「그래 네 말이 맞었다 맞었어 ─」

 

하고, 우섯다.

 

  「넌 네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을 꼭 아니?」

 

하고, 순재가 제 말을 게속하였다.

 

  「웨 뭇니?」

 

  「오래 살어 봤으면 싶다니 말이다 ─」

 

 삼히는 얼골에 남은 우슴을 지우고 잠간 순재를 건너다보았으나, 어쩐지 이러한 말이 가저오는 분위기가 그는 싫었다. 그래서,

 

  「네가 오래 살기 싫다니 헌 말이지 뭐 ─」

 

하고, 말하면서도

 

 (사람이 누구에게나, 무엇에나, 가장 성실해 보구 싶은 순간이 있다면, 그건 가장 성실할 수 없는 것을 안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러서, 어쩐지 외로웠다.

 

  「문주 노래 하나 하렴. 있지 웨, 네가 잘하는 거 ─」

 

 삼히는 짐짓 우스며, 말끝을 돌렸다.

 

 이래서 문주가 노래를 하고, 또 가치들 따라 하기도 하면서, 여자들은 이슬에 축축해진 얼골을 샘가에서 씻고, 훨신 이식해서야 헤어진 셈이다.

 

 동무들을 보낸 후, 삼히가 자기 방으로 드러오니까, 뜻밖에 오라버니가, 마치 삼히를 기대리고나 있은 것처럼, 댓듬,

 

  「내일 월영으로 가거라 ─」

 

하고, 말을 했다.

 

 월영이란 어머니가 게시는 월영동 큰집을 말함이다.

 

 삼히는 오라버니의 너무 돌연한 말에 멀 ─ 숙해서, 더욱 서먹서먹 자리에 앉었다.

 

  「넌 알른 사람이 아니니까, 놀템 월영동 집이 훨신 좋을 거다 ─」

 

하고, 오라버니가 다시 말을 했다.

 

 삼히는 조금 전 샘가에서부터, 코 밑이 확확하고, 몸이 오슬오슬하던 것이, 방 안에 드러오자 갑잭이 떨려 오기도 하였지만, 사실은 이것보다도, 이러한 오라버니의 말이 몹시 섧고, 또 한편 야속하기도 해서,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도모지 잘 생각이 나지를 않고, 별루 얼골에 찬 기운이 쏴─ 하고 오는 것 같아서, 벽에 기대어 앉인 채, 그는 잠간 머리를 뒤우로 떠러트렸다.

 

 이때 오라버니가 좀 당황해 하면서 가까히 오는 것을 그는 알었으나, 역시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삼히는 이상 더 정신을 일었으나, 자리에 누어서도 오래도록 그는 영문 없이 울었다.

 

 이래서 그후 오륙 일 동안 그는 감기로 누었었고, 이러는 통에 두 남매는 이상하게도 비교적 정다워진 셈이다.

 

 어느 날 삼히가 안마당 등나무께다 의자를 놓고 앉어 있으려니까, 오라버니가 사무실 바로 앞에서, 밖앝 문께다가 백묵으로 동그램이를 그리고는 새총으로다 그걸 맟치노라고, 아주 정신이 없었다. 수없이 되푸리하는 총알이 우이고 아래로 또 옆으로 헛터저서 좀체 동그램이를 맟칠 상 싶지 않었으나, 오라버니는 그저 견우기에 정신이 없었다.

 

 대낮이 납뎅이처럼 내려앉어, 바람 한 점 새 한마리 얼신하지 않었다. 이상한 정적(靜寂)이 마치 준령(峻嶺)을 넘을 때처럼 괴로웠다.

 

 삼히는 끝내 오라버니에게로 달려가며,

 

  「오라버니 그 뭐예요?」

 

하고 무러봤다.

 

 오라버니는 부자연할 정도로 얼골의 긴장을 풀며

 

  「응 ─ 심심해서…」

 

하고 말을 했다.

 

 심심해서 하는 노릇이라는 바에야, 삼히로서도, 더 뭘 무러볼 말도 없고 해서, 그냥 잠작고 뒤우로 가 서려니까.

 

  「너두 한번 놔 바라. 재미있을 테니 ─」

 

하고, 알을 재운 채, 총을 삼히 앞으로 내밀었다.

 

 삼히는 얼결에 총을 받으면서도, 오라버니의 기색을 살피었으나, 역시 이 날도 전에 달리 몹시 단순한 그저 유쾌한 얼골이었기에, 삼히도 지극 가벼운 마음으로, 오라버니가 시키는 대로 견양을 조심해서 쇠를 다렸다.

 

 이 모양으로 몇 번을 거듭했으나, 물론 맟처질 리가 없었다. 나종에는 의자를 가저다 놓고 그 우에다 총때를 걸친 후 놔 봤다. 그랬드니 훨신 힘이 들지 않었다. 그랬는데, 참 히한한 일은, 어쩐 일로, 그 동그램이를 삼히가 마친 것이다.

 

 이래서 오라버니도 용타고 칭찬했거니와, 삼히는 그만 신기해서, 당장 날포수가 된 것처럼, 이번에는 정말 새를 잡어 보겠다고, 식목 밭으로 갔다.

 

 오라버니도 우스며 곁으로 와서 그가 하는 양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의자를 놓치 않고는 도저히 새를 잡을 가망이 없음을 곳 알었음으로, 뒤곁 감나무에 까치가 앉은 것을 보고는 그는 종내 오라버니게 총ㅅ대를 돌리고 말었다.

 

 파아란 매실(梅實)이 올망졸망한 매화나무 밑에 서서, 까치와 총 끝을 번갈라 보며 이마에 듯는 땀을 씻으려니까, 그제사 숨이 맥힐 것 같은 더위와, 팔이 후둘후둘하는 피곤을 깨다렀다.

 

 조금 후 하도 더워서 잣나무께로 나와 볼까하고, 돌아섰을 때다. 마츰 그 뒤에 태일이라는 오라버니 친구가, 언제 왔는지, 멍 ─ 하니 서 있었다. 삼히는 가슴이 철석하도록 깜짝 놀랐으나, 지나칠 정도로 공손히 절을 한 후 태연히 앞을 지나려구 하였다. 그랬는데, 청년은 거반 삼히가 면목 없을 정도로 그의 인사를 받는지 마는지, 그저 번 ─ 히 보구만 있었다. 또한 그 태도가 한가닭으로만 보혀지지가 않어서, 이 편을 힘껏 무시한 것도 같은 ─ 또는 한껏 신뢰(信賴)한 것도 같은 ─ 또 달리는, 무엇에 몹시 항거(抗拒)하는 것도 같은 ─ 이상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튼 어느 것이든 삼히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고 좌우간 거슬렸다.

 

 삼히가 잣나무 께로 나와, 숨을 내쉴 때쯤 해서, 핏득 머리ㅅ속에 청년의 얼골이 지나갔다. 그의 자존심은 또 한번 발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모지 되지 않었다 ─)

 

고, 거듭 마음에 이르는 것이었다.

 

 인해 오라버니가 청년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이리로 왔다.

 

 삼히는 한 번도 그 편을 보지 않었으나,

 

  「뭐든 적중(適中)한다는 것은 ─ 마친다는 것은 ─ 분명히 유쾌하리다─」

 

하는, 청년의 말을, 조금 전,

 

  「좋은 작난입니다 ─」

 

하든 말과 함께, 한 마듸도 놓치든 않었다.

 

 오라버니는 삼히와 가까워지자,

 

  「네가 저걸 마첫다니까, 이분이 거짓말이랜다 ─」

 

하고, 우섰다.

 

 삼히는 잠잣고 오라버니 편을 향하여 돌아섰으나, 좀 당돌하리만큼 정면으로 잠간 청년을 바라다보았다.

 

 청년은 조금 전 삼히가 가젔든 총을 집고 서서, 역시 무표정한 얼골로 시선을 받으며

 

  「다시 한번 놔 보십시오 ─」

 

하고, 가마니 총을 내밀었다.

 

 조금 후 오라버니가 낙시질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니까 청년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시, 장기나 바둑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니까, 청년은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럼 낙시질도 좋아할 거요.」

 

하고, 오라버니가 말을 하니까,

 

  「그 온 각갑해서…」

 

하고, 청년이 말을 받었다.

 

  「재미를 몰라 그렇지, 아무튼 일등 가는, 도박입넨다. ─ 아 ─ 주 홀린다니까,」

 

  「그럼 강태공이 노름꾼이 된 셈이게?」

 

 두리는 제법 소리를 내고 우섯다.

 

 삼히는 저도 모르게 얼골을 찡겼다.

 

 무슨 “징”이 울릴 때처럼 소란하고, 이상하게 일종 송구한 정이 들어서, 후지 부지 인사를 한 후 곳 제 방으로 도라오고 말었다.

 

 이날 저녁 삼히는 오라버니와 오래도록 이야기를 하고 놀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두 남매는 삼히가 수일을 알른 동안 훨신 의가 좋아진 셈이어서, 아무튼 요지음 오라버니는 조금도 까다롭지 않었다. 언젠가 삼히가 이것을 오라버니께 무러보았드니,

 

  「가사 너”라는 “녀자”를 “내”가 이제 처음 맛나는 거라고 한대도, 너는 역시 내 동생일 게고, 또 이제 너는 단지 병을 알을 재주밖에는 없으니까 말이다 ─」

 

하고 우섰다.

 

 이날 저녁에도 오라버니는 삼히의 뭇는 말이 자기의 내면(內面)과 상관되지 않는 한 다 받어 주었을 뿐 아니라, 조만간 지금의 생활을 그만 둘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역시 태일군 같은 사람이 살어 있는 사람일지두 몰라 ─」

 

하고 말하였다.

 

 삼히는 이분의 말이 나오자 거반 까닭 없이 역해오는 감정을 경험하면서도,

 

  「살어 있는 사람이라니요?」

 

하고, 제법 무심하게 물어보았다.

 

  「“자랑”을 가젔으니까. 생명과, 육체와, 또 훌륭한 “사나히”란 자랑을 가젔으니까 ─」

 

하고, 오라버니는 혼자ㅅ말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삼히는 오라버니의 이러한 말에 진작 대척이 없이, 속으로 “사나이”, “생명”“육체”하고, 되푸리해 보았으나, 그렇다고 이것이 그에게 별다른 감동을 주지는 않었다.

 

 오라버니는 다시

 

  「그는 저와 상관되는 일체의 것을 자긔 의지(意志)아래 두고 싶은 야심을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위해 조금도 비열하지도 않고, 아무 것과도 배타(排他)하지 않는, 이를테면 풍족(豊足)한 성격일 뿐 아니라, 이러한 성격이란 본시 “남성”의 세게(世界)이니까 ─」

 

하고, 말하면서

 

  「그러기에 이러한 사나이의 세게란, 가령 어떠한 사정(事情)이나 환경에서 패(敗)하는 경위라도 결코 “비참”한 형태는 아닐 거다 ─」

 

하였다.

 

 삼히는 오라버니의 이러한 말이 전부 맛당하게도, 그렇다고 전연 맛당찮게도 들리지 않었으나, 또 한편 그 분을 두고 오라버니가 너무 두둔하는 것도 같고, 또 이것은 오라버니로서, 자기 약점에 대한 일종의 반발 같기도 해서,

 

  「내 생각엔 너무 과장해서 생각는 것 같은데…아무튼 난 잘 모르겠서요─」

 

하고 말을 끈었다.

 

 그랬드니, 오라버니는

 

  「잘 몰라?」

 

하고 되집흐면서,

 

  「모르겠으면, 알구 싶지 않니?」

 

하고, 이번에는 제법 놀리듯 바라보는 것이었다.

 

 물론 삼히로선 이러한 오라버니의 말이나 태도가 저로서 조금도 당황해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이것을 알면 알스록 거반 성미가 나도록 얼골이 확확했다.

 

 그래서,

 

  「과장이란 본시 유치한 감정일 것 같애요 ─」

 

하고는, 정말 성미를 부리고 만 셈이다.

 

 어느 날 오라버니는 낙시질을 간다고 했다. 삼히도 올케도 그의 동무들도 다 좋아하는 낙시질이다. 섬에 나가 조개를 잡고 멱을 뜻고 고기를 낙는 것은, 바다ㅅ가 사람들의 고향처럼 그리운 노리다. 달마다 보름이 되면, 바다ㅅ물은 만조가 되고 이것을 “한시”라고 해서 한시가 되면 조개도 고기도 잘 잽힌다.

 

 이날 삼히도 동무들과 함께 포구 앞 방파제로 낙시질을 갔다. 고기가 더 잘 잽히고 더 신명이 나는 섬을 버리고 이곳을 정하기는, 물론 삼히를 위해서이지만, 고기 낙기에는 본시 “날물”과 “들물”이 있어, 이들 일행도 오정이 지나자 달려온 셈이다.

 

 삼히는 물을 대하자 괘니 숭얼대고, 바다처럼 활작 자유로우려는 마음을 간신이 걷어잡은 채, 낙시ㅅ대를 던젔다. 바다ㅅ물이 사뭇 줄어, 길길이 뻗은 미역 풀 사이로 고기들이 놀고, 그것이 거울 속처럼 드려다 보이고 하면, 사람들은 그만 애들처럼 즐겁기만 하고, 한껏 천진해진다. 그러기에 아무리 모르는 사이라도, 크고 묘한 고기를 낙그면 마치 형제간이나 된 것처럼, 머리를 맞대이고 즐기는 것이 낙시터에 풍속이다.

 

 오라버니도 삼히 편에서 고기를 낙거 올리면, 쫓어와서, 낙시도 빼어 주고,

 

  「얼마나 큰가?」

 

고, 무러도 주고 하였다. 또 오라버니 친구되는 분도 이러하였고, 삼히 편에서도 이러해서, 큰 고기ㄹ때에는, 물에 담거도 보고 하였다.

 

 일행은 날이 거반 저물고 또 비도 올 것 같은 날세였지만, 끝내 도라가지 않고, 선창 가에 있는 조그마한 음식점에서 생선국을 먹고는 다시 물가로 나왔다. 하늘이 흐려서 충충하고 시ㅅ꺼먼 바다가 기선이 지날 때마다, 비눌이 도쳐서, 괴물처럼 꿈틀거렸으나, 사람들은 조금도 무서운 줄을 몰랐다.

 

 밤이 점점 제 격으로 들어설수록 고기는 작구 물렸다. 주위는 낮에 말이 많은 것과는 달리 점점 말이 없어지고 이상하게 긴장해 갔다. 밤에는 떠들면 고기가 오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겟지만, 또한 사람들이 제풀로 말이 없어지기도 하였다.

 

 삼히는 진작부터, 오라버니가 준 웃옷을 입고 앉었는데도, 차차 바람이 싫고, 자꾸 피곤해지려구 해서, 한번도 자리를 갈지 않은 때문인지, 그의 가까이는 아무도 사람이 있지 않었다. 그는 끝내 낙시질을 그만두고, 방파제가 문허진 움텍이를 찾어 가 앉었다.

 

 삼히가 이렇게 얼마를 앉어 있는데 누가 뒤에서

 

  「차지 않아요?」

 

하고, 말을 건너는 사람이 있었다. ─ 태일이라는 청년이었다.

 

 그가 추운 것이 아니라는 듯이, 조금 풍성히 앉으면서 괜찮다고 말을 했드니, 청년은 삼히의 이러한 말에는 별루 대답도 없이, 그와 조금 떠러진 축대로 와 앉었다. 그러드니

 

  「바다를 좋아합니까?」

 

하고, 불숙 무러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삼히가 좋아한다고 했드니, 자기는 별루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는 산을 더 좋아합니다」

 

하고, 말을 했다.

 

 조금 후에 청년은 역시 서문 없는 태도로,

 

  「내가 어떻게 뵈요?」

 

하고, 다시 말을 건넸다. 대단히 난처한 질문이었다. 이때 삼히는 정말 비위를 상해도 좋을 법 했다. 그러나 그는 웬일인지, 제법 친숙한 사람에게 말하듯 약간 롱쪼로,

 

  「좋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고, 대답했다. 그랬드니, 청년은 그저 멍뚱이 앉인 채 가마니 우슬뿐이었다.

 

 얼마 후에 청년은 다시 생각난 듯이

 

  「날 어떻게 보십니까?」

 

하고, 굳이 무렀다. 이리되면 난처한 일인게 아니라, 세상에 염치없고 무레한 질문도 분수가 있다. 삼히는 뭐가 노엽다기보다도 어쩐지 우숨이 나려구 해서, 그러니까, 반 작난 삼아, 외인부대(外人部隊)같다고, 했드니,

 

  「오라버니는요?」

 

하고 다시 무렀다.

 

 삼히는 더욱 뭘 따저볼 배 없이,

 

  「오라버니두요…」

 

하고 대답했다. 그랬드니, 청년은 의외로 삼히의 이러한 말을 꽤 심각하게 듯는 모양이어서, 한동안 잠잫고 앉어 있기만 하드니, 별안간 머리를 들며,

 

  「싫은 일이올시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읍니까?」

 

하고 삼히를 보았다.

 

 삼히는 웬일인지, 저를 보는 청년의 시선이 거창하게 느껴젔다. 그래서 모르는 결에 얼골을 피하며, 또 한편 이러한 곳에서 남의 사람보고 “외인부대”니 뭐니 하고는 힛득 퍽득 번거롭게 구는 제 모양에 스스로 싫은 생각을 이르키며 가마니 이러섰다. 청년도 따라 이러났다.

 

 이때, 마진 편 등대의 불빛이 청년의 힌 이마에 싸늘히 쏟아젔다. ─ 청년은 곳 바다를 향해 돌아섰다. 머리를 숙인 채, 언제까지나 다시 돌아서지는 않었다. 순간 상히는 그가 몹시 훌륭해 보였다. 불현듯 한껏 보드라운 마음으로 그 도라 선 얼골이 보고 싶어졌으나, 그는 끝내 오라버니가 있음즉한 왼편 쪽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문듯 바다가 설레고 바람이 거치러진 것처럼 가슴에 오는 야릇한 위압을 느끼며, 삼히는 역부러 소리를 내어

 

 (그만 돌아갔으면 좋겠다 ─)

 

고 중얼거렸다.

 

 

 

 어느 날 아츰이었다.

 

 삼히가 채 이러나기도 전에, 오라버니 방에는 진작부터 태일이라는 청년이 와 있었다.

 

 두 사람은 아츰을 먹은 후, 오정이 되도록 오라버니 방에서 이야기를 하고 놀았고 겸심을 치른 후에도 뒤ㅅ산 잔디밭에서, 해가 떠러질 무렵까지 있었으나, 청년도 삼히도 오라버니도 아무도 아른 척 하지는 않었다.

 

 청년이 도라간 후 저녁을 먹은 후에도 오라버니는 이날 따라 자기 방에만 있었다.

 

 삼히는 끝내 오라버니 방에를 가 보앗다. 오라버니는 책상에 턱을 고이고 앉인 채 연필로다 뭘 정신없이 껀직대고 있었다. 그 앉은 모양이라든가, 얼골 표정으로 보아, 시방 오라버니가 뭘 마음드려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곳 알었다.

 

 미닫이를 닫고 드러서면서 삼히는 한번 더

 

  「오라버니 뭐 허우?」

 

하고, 짐짓 속삭이듯 물어보았다.

 

 오라버니는 연신

 

  「응? 어 ─」

 

하고, 그저 입으로만 대답했을 뿐, 통이 이리로는 정신이 없었다. 삼히는 고개를 길다랗게 하고 책상 우에 있는 조이쪽과, 오라버니가 끈적이고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조이쪽은 연필로 그린 누구의 초상인 듯 해서, 자세히 보니까 어느 강물을 빗겨 비옥한 평야를 배경으로 아무렇게나 앉어 있는 거창한 청년이, 바로 태일이었다. 청년은 머리칼이 거칠고 수염이 짙어 눈이 더

욱 빛나 있었다. 그러나 힘없이 거두어저 있는 얼마나 징한 조화를 잃은 큰손인가?

 

 삼히는 얼골을 찡기며, 다시 오라버니 앞에 놓인 조이쪽을 보았다. 이번에는 아무 배경도 없이 그냥 백판에다가 지독히 안정(安定)을 잃은, 초라한 남자를 앉혀 놓았다.

 

 그는 볼수록 초라한 이 청년을 꼭 어데서이고 본 것만 같어서 찬찬히 바라다 보노라니까, 과연 이 머리ㅅ박이 유난이 크고 수족이 병신처럼 말라빠진 우서운 사나이가 영낙 없는 오라버니가 아닌가?

 

 삼히는 한편 놀라면서도, 웬일인지 터저 나오는 우슴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래서 삼히가 소리를 내고 우섯을 때, 놀라 도라다보든 오라버니도 그만 소리를 내고 따라 우슨 셈이다.

 

 얼마를 이렇게 웃고 낫는데도

 

  「오라버니 그 나 온 참……」

 

하고, 삼히는 작구 우섯다.

 

 조금 후에 두 그림을 나란히 하여 일부러 멀직암치 들고는

 

  「그래, 어떠냐? 잘 그렸지?」

 

하고, 오라버니는 물었다.

 

  「잘 그리구 뭐구 무슨 사람들이 그렇대요?」

 

하고, 삼히가 여전 웃고 있으려니까

 

  「내 것은 내가 그린 거고, 이것은 태일군이 그린 건데, 태일군 다시 동경(東京) 가겠다구 그래서, 말하자면 그 자화상(自畵像)을 내게 준 셈이다.」

 

 오라버니는 그림을 든 채 약간 작난 쪼로 설명을 했다.

 

 삼히가 오라버니를 잠깐 흘겨보면서

 

  「이따금 오라버니들은 꼭 어린애 같어 ─」

 

하고 말을 했드니, 오라버니는 그림을 놓고, 삼히 편을 보고 도라앉으며

 

  「어린애? 그래 어린애지. 하지만 그 어린애인 곳이, 혹은 어리석다는 곳이, 이를테면 지극히 넓은 것, 완전이 풍족한 것과 통하는 것이라면?」

 

하고, 말하면서

 

  「이런 건 다 ─ 너이들 “적은 창조물”들이 알 수는 없을 거다 ─」

 

하고, 여전 롱쪼로 우섯다.

 

 삼히는 어쩐지 싫은 생각이 들었다. 무슨 모역을 당했을 때처럼 불쾌하였다기보다도 오라버니에 대한 이상한 의심이 일종 야릇한 불쾌를 가저왔다.

 

 그르려니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째 얼골이 히고 몸이 간 얊인 거라든지, 손발이 이뿐 것까지 모두가 의심쩍었다.

 

 그래서

 

  「지극히 어진 이가, 그 어진 바를 모르듯 오라버니도 응당 몰라야 할 것을 이미 안다는 것은 어찌된 일예요?」

 

하고, 그도 짐짓 롱쪼로 말을 해 보았다. 그랬드니, 오라버니는 거반 싱거울 정도로 쉽사리

 

  「그럼 나도 그 “적은 창조물”의 하나란 말이지?」

 

하면서

 

  「그럴지도 몰라 ─」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조금 후에 삼히가 자기 방으로 도라오려니까 머리ㅅ속에 핏득, 오라버니의 이상한 모습이 떠올랐다. ─ 이른바, 거인(巨人)도 죽고 천사(天使)도 가고 없는 소란한 시장(市場)의 아들로 태어나 한 올에도 능히 인색한 ─ 그러면서도 상기 고향(故鄕)을 딴데 두어 더욱 몰꼴이 사나운 형상으로 나타낫다.

 

 

 

 어느 날 오후였다.

 

 그 동안 태일이라는 청년은 일절 오지 않었기 때문에, 오라버니도 이따금

 

  「떠나기 전, 한번은 들릴 텐데……」

 

하고, 기대리었고, 삼히도 어쩐지 궁금했었다. 그랬는데, 이날 족하 아이를 통해서 태일이란 청년이 어느 싸흠을 말리다가 머리에 중상을 내고 방금 입원해 있다는 것을 알었다.

 

 족하는 오라버니가 뭇는 말에

 

  「총순집 아들이 술에 취해서 권투선수하고 싸우는 것을 말리다가 얻어 마젓대요 ─」

 

하고 대답했다. 총순집 아들이란 일전에 말하든 그 “김군”이란 사람인 것을 삼히는 곧 알었다.

 

 오라버니가 다시

 

  「태일이란 사람도 같이 먹다 그랬다듸?」

 

하고, 물으니까, 족하는

 

  「네 ─」

 

하고, 대답을 했다.

 

 마츰 고 옆에서 올케가 듯다가

 

  「되잖은 군들하고 몰려다니다가 예사지 ─」

 

하면서

 

  「그 챙피하게, 피하지 못하구, 모양이 뭐람 ─」

 

하고는

 

  「당신도 그 사람 쪼처다니다간 큰코다치리다 ─」

 

하는 것처럼, 이번엔 오라버니를 건너다보았다. 이 얌전하고 초졸한 부인네가 적잖이 불쾌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오라버니는 잠잖고 곳 밖으로 나갔다. 오라버니가 병원으로 가는 게라고, 생각을 하면서 삼히는, 또 한편으로

 

 (오라버니는 올케에게 무심하다 ─)

 

는, 이런 것을 생각하고 서 있노라니까

 

  「그저께 동무 집에 들렸드니, 그 사람 보구들, 그만한 학식과 그만한 인물 가지고 웨 일즉암치 자리 잡어 앉지 못하고 괘니 흥청 벙청 다니느냐고 말들입듸다 ─」

 

하고, 올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삼히는 잠잖고 들으면서도

 

 (어저께까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겠드라고 칭찬하든 올케 마음과, 지금의 것을 어떻게 얽어 봐야 하누?)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드러서, 짐짓

 

  「옛날부터 남의 싸흠 가로채면 의리 있는 사람이라는데 ─」

 

하고, 말을 해 보았다. 그랬드니

 

  「그따위 의린지 뭔지 나 같음 돈 주고 허래도 안 하겠네 ─」

 

하고, 여전 왼 고개를 치는 것이었다.

 

 오라버니가 도라오기는 훨신 저물어서였지만 의외에도 오라버니와 함께 태일이란 청년도 왔었다. 어저께 퇴원했다는 것이었다.

 

 청년은 머리에 붕대를 동인 채, 얼골이 조금 수척했을 뿐, 여전 한 모양이었다. 삼히도 전에와 달리 좀 어리둥절해서 바라다보았고, 올케도 얄궂이 맨숭 맨숭 처다 보았으나 청년은 비교적 예사였다.

 

 오라버니가

 

  「그 아무튼 일수 사나웠서……」

 

하고, 말을 하니까, 청년은 좀 어색한 우슴을 지으며, 천천이 말을 시작했다.

 

  「그만 돌아왔을 건대, 뒤에서 김군이 작구 부르니, 그 혼자 죽어라고 그냥 두고 올 수도 없고, 그래서……」

 

  「그래서, 한판 첫단 말이지?」

 

  「판이나 첬음 좋게 ─」

 

 두 사람은 소리를 내어 우섰다.

 

 삼히 역시 우슴을 참고 도라서면서

 

 (어리석은 사람이 저분이라면, 그럼 약은 사람은 올케 같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다시금 실소하려는 마음을 걷어잡은 채 얼른 자기 방 미닫이를 닫었다.

 

 그 후 삼히는 오라버니를 통하여, 청년이 떠낫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느 날 삼히가 제 방에 놓았든 종여죽 대신, 다른 것을 가저올 양으로, 온실 앞으로 갔을 때다. 오라버니가 사무실에 앉어서 꽤 길다란 편지를 읽고 있다가

 

  「태일군이 너헌테 안부하랬다 ─」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삼히는 맥없이 무안을 탓다기보다도, 정말 턱없이 가슴이 철석해서, 그대로 온실 안으로 드러가고 말었으나, 그러나 곧 그는 이러한 제가 도무지 되잖은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 뭐보다도 역역한 것은 궁금한 생각이여서,

 

결국

 

  「그분 뭘 헌대요?」

 

하고,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라버니는 삼히의 묻는 말에, 별루 싱글 싱글 웃으면

 

  「그분? 아직은 놀고 있지 ─」

 

하였다.

 

  「그럼 장차는요?」

 

  「장차는? 연구실로 드러가든지, 그게 맛당찮으면 사관학교(士官學校)를 다니겠대 ─」

 

  「그렇게 잘 들어갈 수 있어요?」

 

  「들어갈 수야 있겠지 허지만 웨 그렇게 꼬추 묻니?」

 

 이번엔 정말 놀리듯 건너다보는 것이었다.

 

  「사관학교는 좀 걸작인데요 ─」

 

 심히는 짐짓 피식이 말하면서, 되도록 무심한 낫빛을 하였다.

 

 그랬드니 오라버니는 까닭 없이 벌컥해서

 

  「너 그런 태도가 하이칼라라는 거다. 모든데 어떻게 그렇게 조소적(嘲笑的)이고, 방관적(傍觀的)일 수가 있니?」

 

하고 나무라는 것이었다. 삼히는 첫재 억울하기도 하였지만 너무도 의외 꾸지람이라 한동안 말을 않고 서 있었으나

 

 (자기의 약점을 남에게서 발견하고, 노한다는 것은, 너무 부도덕(不道德)하지 않은가?)

 

싶어저서, 삼히야말로 노여웠다. 그래서, 그는 오라버니가 뒤에서 부르는 것을 못 들은 척 곳 자기 방으로 돌아오고 말었다.

 

 조금 후에 오라버니가 와서

 

  「노했니?」

 

하고, 묻는 것을 삼히가 별 대척을 않으니까

 

  「너 이렇게 노하기를 잘 하는 것도 하이칼라라는 거다 ─」

 

하고, 농을 하면서

 

  「그래 내 잘못했으니 관 두자 ─」

 

하였다. 삼히가 다시 빨큰해저서

 

  「오라버니만 조소적이요, 방관적일 수 있고 남은 그렇거면 못쓴단 거지요?」

 

하고, 말을 하니까, 오라버니는 잠잫고 있드니, 한참만에서야

 

  「그게 좋은 거면 모르지만 나뿌니 말이다 난 내게 있는 약점을 남에게서 발견하면 아주 우울허다 ─」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삼히는 오라버니의 심정이 잘 알 수 있는 것 같었다. 그래서 어쩐지 마음이 언잖었다. 역시 오라버니는 몰꼴이 사나웠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방황(彷徨)하는 오라버니의 모습에 오히려 동정이 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칠월 잡아들면서부터, 조석으로 서늘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이, 요지음은 제법 나뭇잎이 바시락거렸다.

 

 삼히는 진작부터 가을이 오면 도라갈 것을 생각고 있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는 날로 아이가 보구 싶고, 집이 그리웟다. 이따금 아츰에 일즉이 이러나 얼골을 정갈이 씻고는 크림을 바르고, 연지도 찍어 보고 하였다. 생각하면 어머니가 있고, 오라버니가 있고, 그가 자라난 하늘과 바다와 산과 들이 저와 함께 있는데도, 삼히는 대체 무엇을 그려, 어느 고향을 따르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삼히가 샘물 가에 그저 망연이 앉어 있으려니까, 오라버니가 옆으로 오면서

 

  「너 언제 가니?」

 

하고, 물었다.

 

  「쉬 가거라 ─」

 

  「왜요?」

 

  「이제 가을이 왔으니 가야지 ─」

 

 두 남매는 우섰다.

 

 삼히는 끝내 추석 전에 따나기로 하였다. 마중을 가도 좋타고 하는, 남편의 호의를, 가서 만나면 더 반가울 거라고, 그만두게 한 후 그 대신 삼포령까지 오라버니가 배웅해 주기로 하였다. 떠나기 전 몇일 동안을 어머니가 게시는 월영동 집에 와 있었기 때문에 이날은 가족을 한테 뫃은 단락한 오찬이 있은 후 삼히는 오후 네 시차로 고향을 떠났다.

 

 차가 서면을 지나 진포를 잡어들 때까지 두 남매는 별루 말이 없었다. 이때 마츰 오라버니와 삼히가 앉어 있는 마진 편에 젊은 여자 한 사람과, 한 육십 남짓해 보이는 노인 한 사람이 와서 앉었다. 두 사람은 무슨 송사엘 갔다 오는 것인지, 앉기가 바뿌게 젊은 여자가 노인을 모라 세웠다. 그 말하는 거취를 보아서 분명히 여자는 노인의 딸인 모양인데, 아무리 보아도

딸치고는 참 기가 차게 망난이었다.

 

  「그리 축구 노릇 하믄 사람값만 못 가지지, 글시 웃지한다꼬 오늘도 돈을 못 받았노?」

 

  「그렇기 말이다, 참 무서운 놈의 세상도 있제 ─」

 

  「와 세상이 우섭노? 이녘이 축구지 ─」

 

하고 딸이 골을 내어도, 노인은 그저

 

  「그렇기 말이다 ─」

 

하고만 하였다.

 

 삼히는 속으로

 

 (이 노인이 “그렇기 말이다”라는 말밖에는 할 줄 모르는 게 아닌가?)

 

하면서, 보고 있으려니까, 과연 딸은 똑똑하게 생겼다. 그 얼골하고 옷 입은 맵시랑, 아주 조약돌처럼 달아서 반드랍기 할량이 없었다.

 

 (저렇게 똑똑하게 되자면, 그 “마음”이 얼마나 해ㅅ침을 입었을까?)

 

고 생각을 하니, 어쩐지 그 일거일동, 그 말하는 내용까지가 모도 폐해(弊害)받은 상처 같기도 해서, 그는 모르는 결에 얼골을 숙였다.

 

 노인은 다음 역에서

 

  「어서 오라캉께!」

 

하고, 주정질을 치는 딸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두 남매는 뭐라고 말을 건너려구 했으나, 여전 잠잫고 있었다.

 

 어느듯 어둠이 짙어 왔다. 마침 차가 지나는 서쪽으로 멀 ─ 리 낙동강(洛東江)이 흐르고 있었다. ─ 강물이라기에는 너무 망망한 물결이었다.

 

  「너 강물을 좋아하니?」

 

 오라버니는 누이의 대답을 기다릴 것 없이

 

  「나는 참 좋다 ─」

 

하고 말을 했다.

 

 강물은 점점 가까이 와 드듸어 안전에서 늠실거렸다.

 

 강물은 징하고 끔직했다. 그러나 질펀한 평야를 뚫고 잠잠히 흐르는 강물은 또한 얼마나 장한 풍족(豊足)한 모습인가?

 

 두 남매는 차가 삼포령을 지날 때까지 아득히 머러지는 강물을 보고 있었다.

 

(《文章[문장]》, 1941. 3)

 

 

우리나라 최초로 심리묘사를 시도한 지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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