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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적 논평 / 서술자의 개입

뿔란 2021. 7. 4.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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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적 논평'과 '서술자의 개입'은 흔히 거의 비슷한 말로 쓰입니다. 물론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닙니다. 단어가 다르고 뜻이 다르니까요.

'편집자적 논평'은 말 그대로, 편집자의 입장에서 논하여 비평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설에서 편집자라니? 출판사의 편집자? 그건 아니겠죠 ㅎㅎ.. 여기서의 편집자란 당연히 작품 밖의 서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 안에 논평을 집어 넣을 수 있는 편집자를 찾아보면, 결국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편집자적 논평'은 '작품 밖의 서술자가 논하여 비평하는 것'입니다.

그럼, '서술자의 개입'은 어떤 뜻일까요? 말 그대로 서술자가 이야기에 끼어든다는 말이겠죠. 음... 그런데, 1인칭 서술자라면, 굳이 서술자의 개입을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러므로 서술자의 개입도 3인칭 시점 소설에서나 나올 말입니다.

언젠가, '서술자의 논평'이라는 말이 모의고사 선지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요, '서술자의 논평' 1인칭 소설에도 적용되겠죠. 다만, 서술자의 논평이라든지, 뭐 얼마든지 설명하다보면 말은 만들어낼 수 있는 거니까요, .. 일종의 용어로 굳어진 '서술자의 개입', '편집자적 논평'과 헛갈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또 새로운 말로 설명하면, 그게 말이 되나, 안 되나만 보시면 됩니다.


자, 말 뜻 설명하고 시점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사실 말 뜻 설명했으니 다 끝난 거죠. 뭐, 별 거 있나요....


그래도, 섭섭하실테니, 항간에 널리 퍼진 더 그럴싸한 이론 한 토막 들이대 보겠습니다.

서술자의 개입

1. 편집자적 논평
2. 감정의 노출
3. 독자에게 말 걸기
4. 서사 흐름 끊기

쉽죠? 서술자의 개입에 대충 위의 네 종류가 있다. 그러니 편집자적 논평은 서술자의 개입에 속한다...... 뭐 이런 이야기 되겠습니다. 네... 그러니까, 서술자가 딱히 뭔가 평가하고, 비평하지 않아도 서술자의 개입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교과서를 만드는 신사고 출판사에서는 이렇게도 말하더군요.

서술자의 개입작품 밖 서술자가 자신의 생각을 직접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데, 대개 서술자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이질적인 부분이 나오면 서술자의 개입이라고 본다고 합니다. 편집자적 논평서술자가 진행 중인 사건이나 인물의 언행 등에 대해 의견을 밝히거나 평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엄밀하게는 서술자의 개입에 편집자적 논평이 포함되지만,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이를 굳이 구분해서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일반적입니다.


이런 내용을 뭔가 확실한 이론으로 배워서 적용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이과님들도 많습니다만, 모든 건 말이 되느냐, 이 말이 맞는 말이냐... 말뜻 위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론은 바뀝니다. 이론은 분분합니다. 이론을 세우려고 시간 낭비는 하지 맙시다.

흔히, 문장 종결 형식에 따라 서술자의 개입이다, 아니다..... 이렇게 공부해서, 내가 공부한 걸 적용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마세요. 그 얼마나 심한 에너지의 낭비입니까.... 서술자의 개입일 때 문장이 어떻다, 표현이 어떻다를 외우고, 그걸 적용하는데, 자꾸 예외만 나오고....... 그럼 이 이론이 잘못되었는가 고민하고....... 따지고.....,,, 그러지 맙시다. 그때 그때 읽고 판단하는 걸로!!!


그럼 몇 가지 예를 보고, 포스팅 끝내렵니다. ㅎㅎㅎ 아, 서술자의 개입, 편집자적 논평은 고전소설에 주로 많이 쓰이는 거 아시죠?

아래, 밑줄 그은 부분들이 서술자의 개입, 편집자적 논평입니다.

일찍이 윤 직원 영감은 그의 소싯적에, 자기 부친 윤용구가 화적의 손에 무참히 맞아죽은 시체 옆에 서서, 노적이 불타느라고 화광이 충천한 하늘을 우러러,
"이 놈의 세상, 언제나 망하려느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하고 부르짖은 적이 있겠다요.
이미 반세기 전,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나한테 불리한 세상에 대한 격분된 저주요, 겸하여 위대한 투쟁의 선언이었습니다. 해서 윤 직원 영감은 과연 승리를 했겠다요.
길동이 재배 하직하고 문을 나서니, 구름 낀 산이 첩첩하여 지향없이 행하니 어찌 가련치 아니하리오.
운봉이 반겨 듣고 필연을 내어 주니 좌중이 다 못하여 글 두 귀를 지었으되, 민정을 생각하고 본관의 정체를 생각하여 지었것다.
범을 그리매 뼈를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사귀매 그 마음을 알기 어렵다하니, 교씨 공교한 말과 아리따운 빛으로 외모 공순하매 사 부인이 교씨 안과 밖이 다름을 어찌 알리요. 예사 사람으로 알고 다만 음탕한 노래가 장부를 미혹하게 할까 염려하여 교씨를 진심으로 경계함이요, 조금도 투기함이 아니어늘, 교녀 문득 한을 품고 공교한 말을 지어 가화(家禍)를 빚어내니 교녀의 요악함이 여차하도다.


<심청전>, 일제강점기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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