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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국어/국어 용어들

구도 / 구도적 / 구도자 / 求道

by 뿔란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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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전적인 뜻부터 알아봅시다.

 

구할 '구', 길 '도'를 써서 '구도'입니다. 주로 불교적인 문맥에서 많이 쓰이지만 실은 종교에 상관없이 쓸 수 있는 단어입니다. 

 

불교에서의 '정도', 즉 바른 길은 결국 깨달음을 얻는 것, 참나를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도입니다. 하여 깨달음을 얻으려 노력하는 자, 참나를 찾고 있는 자가 바로 구도자이고 구도자는 구도의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 그런 상황, 그런 마음이 드러나 있는 작품의 성격을 일컬어 구도적이라고 합니다.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시집 님의 침묵, 1926)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인 한용운님의 '알 수 없어요'는 구도적인 시입니다.

 글세, 저 '누구의 발자취', '누구의 얼굴', '누구의 입김', '누구의 노래', '누구의 시' 할 때의 누구란 과연 누구란 말입니까. 그것은 바로 신神, God입니다.

 아무리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영향을 받았다지만(타고르는 힌두교인!) 불교 승려였던 한용운이 갑자기 신을 찾는다고?

 

놀라지 마시죠들. 놀람 금지! 

 불교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곧 참나를 바로 알았다,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만, 실로 참나란 누구일까요? 진짜 나, 근원의 나는 결국 자연이고 우주이며 신이고 진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신을 믿는 종교와 불교가 만날 수 있는 것이죠. 신이란 진리이고 우주, 나의 진짜 근원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알 수 없어요'의 마지막 행에서 우리의 참나, 신, 대우주인 '누구'의 또 다른 정체가 드러납니다.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 그 대단한 '누구'는 결국 우리가 지켜줘야 할 약한 누구이기도 한 것. 모든 이를 부처로 보아라, 모든 이를 예수로 보아라, 이런 말은 결코 종교적 기술, 스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진리에 따른 행동을 권유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구도적인 다른 시도 보십시다. 일단 좀 구도의 길을 걷고 싶은데 걷고 있는데 아아!!!! 공부가 안 되는 수험생의 마음과도 같은 구도자의 마음!!! 깨달음이가 잘 안됨!!! 이런 시입니다. 

 

승무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에서는 구도자의 구도가 안되는 고뇌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며 '번뇌는 별빛'이라는 말로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것임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인짜 구도적 그 잡채!!! 지인짜 깨달음 얻으려고 허덕허덕, 아이고 힘들어 하는 시를 보고 가시죠.

바라춤

        신석초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

티없는 꽃잎으로 살어 여러 했건만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

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

어이할까나.

 

청산 깊은 절에 울어 끊인

종소리는 아마 이슷하여이다.

경경(耿耿)히 밝은 달은

빈 절을 덧없이 비초이고

뒤안 이슥한 꽃가지에

잠 못 이루는 두견조차

저리 슬피 우는다.

 

아아, 어이 하리, 내 홀로,

다만 내 홀로 지닐 즐거운

무상한 열반(涅槃)을

나는 꿈꾸었노라.

그러나 나도 모르는 어지러운 티끌이

내 맘의 맑은 거울을 흐레노라.

 

몸은 설워라.

허물 많은 사바(娑婆)의 몸이여.

현세의 어지러운 번뇌가

짐승처럼 내 몸을 몰고

오오, 형체, 이 아리따움과

내 보석 수풀 속에

비밀한 뱀이 꿈어리는 형역(形役)의

끝없는 갈림길이여.

 

구름으로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 소리

지는 꽃잎도 띄워

둥둥 떠내려가것다

부서지는 주옥의 여울이여.

너울너울 흘러서

창해(滄海)에 미치기 전에야

끊일 줄이 있으리.

저절로 흘러가는 널조차

부러워라.

 

한용운,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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